현실을 침범하고자 하는 괴담이라는 매력적인 설정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유앤어비스 TV (작가: Insanebane, 작품정보)
리뷰어: 랜돌프23, 20년 6월, 조회 106

제가 예전에 다른 호러 소설을 리뷰할 때 (코코아드림 님의 ‘에덴브릿지 호텔 신입 직원들을 위한 행동 지침서’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호러라는 장르가 공포를 주기 위해 현실성을 추구하고 그러기 위한 장치로서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를 흐리는 기법을 쓰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한 적 있습니다. 물론 저는 전문가는 아니니 어디까지나 제가 경험하며 느낀 내용을 정리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그게 호러의 유일한 기법이라고도 할 수 없겠죠.

어쨌든 이런 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쳐내자면, 사람들은 괴담에서 ‘현실성’에 열광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괴담’이라는 게 애초에 가짜일 수밖에 없다는 걸 전제하면서도(알면서도) 현실성이 크면 클수록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실화]라는 마크가 달려있는 것만큼 ‘설마?’하면서 구미가 땡기는 게 없죠 ㅋㅋㅋ 적당히 흐릿한 증거영상, 구체적인 지명과 날짜, 뭐 아무튼 여러가지로 말이죠. 얼마 전에 제 동생이 유튜브에서 장산범의 영상이라고 링크를 보내주면서 되게 좋아하던 게 떠오르네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속아줄 준비가 되어있는 독자들’을 위해 또 적당한 허구성이 필요합니다. 이 현실성과 허구성의 균형을 맞춘다는 게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째서 어느 분야든 중용이 가장 어려운 걸까…

이런 쪽으로 성공을 거둔 것들을 떠올리라면 설정괴담의 박물관이 되어버린 SCP, 일본의 로어, 그리고 그 외 각종 네임드한 도시괴담들이 있을 겁니다. 게다가 최근(이라고 하기엔 꽤 오래되었을지도 모르지만) 유튜브의 영향력이 급상승하면서, 이런 괴담들을 라디오처럼 음산한 배경음악과 효과음으로 읽어주거나 직접 심령스팟을 찾아가거나 (잘못 찾아가면 사유지 침범으로 불법이라 잡혀갑니다) 아니면 인터넷의 유명한 크리피 파스타나 요괴들, 실제로 있었던 미제 사건이나 미스테리한 사건들을 정리해서 소개해주는 등 다양한 형태의 공포 유튜브 채널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항상 이렇게 횡설수설 장광설을 늘어놓게 되네요. Insanebane님의 ‘유앤어비스TV’는 이러한 모든 요소들을 총망라해 자연스럽게 녹여낸 흥미진진한 괴담을 다루는 괴담 소설입니다. 아무튼 유튜브에서 호러 채널을 자주 보시거나,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에서 한창 유행하던 출처 모를 괴담들을 많이 봐왔던 (일본 직수입의 번역기 돌린 엉망진창의 괴담들까지) 분들이라면 읽으면서 뭔가 연상이 되고 익숙하거나 친숙한 느낌을 군데군데에서 받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보면서 되게 반갑고 또 ‘혹시 이건가?’하고 찾는 재미에 읽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178매의 엄청나게 긴 것도 그렇다고 또 짧다고도 할 수 없는 분량이지만, 불필요한 미사여구나 수식어 없는 담백한 서술로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술술 읽힐 거라 생각됩니다. 누가 그랬는데… 사람들은 소설이 길어서 읽다가 그만두는 게 아니라 재미가 없어서 읽다가 그만두는 거라고 뼈 때리는 말을 했던 것 같은… ㅜㅜ 어쨌든 크게 보면 살짝 난해한 구석이 있는 이야기지만, 그걸 몇몇 공포 게임들처럼 이리저리 마구 꼬아놔 아카이브를 다 모아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이 복잡하게 만들어놓지 않아서 선형적으로 쭉 읽어나가는데 무리가 없습니다. 기이하고 독특한 상황이 주어지고, 주인공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왠지 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들면서도 ‘뭘까 뭘까’하는 생각에 계속 읽게 됩니다. 한 편의 짧은 공포 게임의 스토리 정리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괴담을 좋아하신다면 오늘 유앤어비스TV를 읽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스포일러 주의*

 

 

 

 

 

 

괴담을 다루면서 이야기 전체가 괴담이 되어버리고, 소설 중간 중간에 현실을 침범하고자 하는 가공의 이야기의 존재와 그 경계가 흐려지는 것에 대한 묘사가 상당히 인상적이고 좋았습니다. 후반부에 상당히 초자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에 대해선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뭔가 터무니 없는 것 같을 정도의 규모로 초자연적 상황이 확장되는 게 호러 장르의 재미 아니겠습니까? ㅋㅋㅋ

다만 조금 아쉬운 게 있다면, 괴담을 다룬 미스터리 추리의 느낌이 물씬 나는 건 좋았지만, 그 자체로서 호러의 느낌은 조금 약한 것 같았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유튜브’와 ‘호러’라는 키워드를 들었을 때 기대할 만한 것에서는 조금 벗어나는 면이 없지 않아 있다고는 생각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건 정말 개인적인 감상인데, ‘유 씨’의 성을 ‘유’로 잡은 이유는 이 이야기가 너(you)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의미로 설정한 거 아닐까요? ‘유 앤 어비스’라는 채널명 자체가 영어로만 생각하면 ‘너와 심연’이 되고, 자연스럽게 니체가 떠오르게 되는 구조라 혹시나 하는 마음에 추측해봅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쓰시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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