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을 쓰신 임 가비 작가님은 최근에 제가 홀딱 반한 분입니다. 뇌리를 콕콕 찌르는 강렬한 글을 쓰시는데, 특히 이 작품 ‘혐오스러운 방관자’는 제목부터 눈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어서 언제 후편이 나오나 기대하고 있었는데 한편으로 묶어서 발표하셨더군요.
일단 제목에서 모든걸 말해줍니다.
글의 주인공 선미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불의에 철저하게 방관자의 자세로 일관해온 여성입니다. 글을 읽어보시면 방관 이상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겁니다. 환자의 은밀한 부위를 찍고 그걸 보면서 즐기는 의사를 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물론 그것을 폭로한 동료간호사에 대한 증오의 마음까지 품는 건 일반적인 방관자에서 1레벨 성장한 중급 개인주의자 정도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네요.
그녀의 방관자적인 성향은 모든걸 잃고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와서도 크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녀의 곁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점차 그 크기와 심각성을 더해가는 과정을 보면 왠지 신이 그녀에게 내리는 시험같기도 해서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게 되더라구요. 독특한 점은 철저하게 선미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지만 독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지적인 제3자의 관점으로 지켜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선미라는 여자가 어떻게 되는지 한번 들어봐’라고 작가님이 얘기해주는 걸 듣는 기분으로 글을 읽다가 생각지도 못한 급격한 방향전환이 한번 와서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만, 결국 제목에서 다 보여준 것처럼 이 이야기는 혐오스러운 삶을 살던 방관자의 결말인 거죠. 권선징악에 가까운 결말이 방관자에게는 너무 가혹한게 아닌가 싶다가도 최근 우리에게 방관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가를 곱씹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걸 ‘공격적인 방관’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8,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저는 그 당시 방관이라는 단어의 뜻이 지금과는 조금 달랐다고 기억합니다. 그 때의 방관은 지금보다 좁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어떤 행동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현재의 방관은 행동 뿐 아니라 사회적 태도를 포함하지요. 당연히 자신의 윤리관이나 성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고, 그저 접촉을 피하고 타인의 삶에 관여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방관과 충분히 외부에 영향을 주는 언행을 하면서 자신이 받는 부정적인 영향만을 피하려 하는 적극적, 공격적인 방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작품에서 선미는 선의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에 깊게 개입했지요. 그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된 선미의 소회[ 所懷 ]는 이렇습니다.
‘괜한 오지랖을 부린 동료간호사 때문에 나까지 모든 걸 잃게 되었다.’
자신은 실행자가 아니니 피해자의 범주에 들어가보겠다는 생각이죠. 가해자와 피해자의 교집합에서 오묘하게 발을 담그고 있는 자신의 입장을 이용해보고 싶은 얄팍한 심리가 글 전반에 묘사가 되어있는데, 주변에 그런 지인이 있으신 건지 작가님이 묘사를 너무 잘 해놓으셔서 보다가 울컥할 뻔 했습니다.
특히나 결말에서의 끔찍한 칼부림을 보고 있노라면 ‘분명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신 게 분명하다.’라고 다시한번 확신을 해보게 되는데, 쓸데없는 소리는 이쯤하고 이 글에 대한 감상을 정리하자면
1. 이 작품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제목부터 마지막 문장까지 버릴데가 없네요.
2.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는 다수의 방관에 대한 문제를 한 개인의 상황에 대입해서 생각해볼만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개인의 선택에 대한 문제라고 하기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두려움에 대한 독자분들의 생각을 이끌어볼만한 훌륭한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3. 글에서 선미는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그렇게 보일만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왜 결말을 보는 마음이 그리 편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 인정? 그래 인정!하는 최후를 맞았는데도요? 우리가 최근의 사회현상을 보면서 ‘저 사람은 그래도 싸지!’하고 받아들이는 관점은 언제부터 굳어졌을까요?
누가 우리의 윤리적, 도덕적 선을 규정해주기 시작했을까요?
임 가비 작가님은 가독성 높은 훌륭한 글 속에 우리가 앞으로 생각해 봐야 할만한 이야기를 던져두고 독자들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답은 브릿G의 훌륭한 독자분들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오랜 시간 고민해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