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악셀을 생략해도 금메달 단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수상한 소설가의 수상한 연애일기 (작가: 사피엔스, 작품정보)
리뷰어: 이채윤, 20년 5월, 조회 60

이 장편은 로맨스를 기반으로 추리/스릴러를 진행하면서 타임 리프 소재를 첨가한 작품이다. 로맨틱한 분위기, 촘촘한 사건 전개와 묘사, 우아한 음악취향과 유럽 감성, 타임리프를 미뤄둔 플롯까지, 밸런스가 무척 좋다. 기술 5점, 동작 연결 5점, 연기 5점, 안무 5점, 해석 5점.(피겨 채점 상한 6점) 그러나 로맨스를 기반으로 하는 만큼, 독자가 나이들고 병들어, ‘그까이꺼 연애 다 그 때뿐이다’, 혹은 ‘세상에 별 남자 없다’ 싶다면 읽을 수 없다.

언젠가부터 로맨스 소설이나 드라마의 교과서로  ‘티격태격하는 연인’이 자리 잡았다. 2000년을 전후로, 한국 영화 산업이 전세계적으로 이례적일 정도로 자국에서 부흥하기 시작하면서, 드라마의 퀄리티도 급격히 상승한 시점이 있었다. 겨울연가, 파리의 연인,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의 드라마가 히트를 치면서 ‘B형 남자, 나쁜 남자’ 이슈가 있었다. 그 때는 그게 일시적인 유행일 거라고들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아직도 ‘까칠한 미남 부자’와 ‘똘똘하고 다부진 평범녀’의 티격태격 로맨스가 기본이다.

돈 많고, 잘 생기고,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이고, 다재다능하고, 나이 많은 남자와, 가난하고, 평범하고, 착하고, 이타적이고, 역시 다재다능하고, 나이 어린 여자의 로맨스. 가끔 이 중에 몇 가지 성분을 교묘하게 반전시킴으로서 신선한 맛을 더하는 것이 비결이다.

그런데 왜 꼭 ‘까칠해야’ 할까? 대놓고 까칠하지 못하면, 직업이 군인이라서 교묘하게 까칠하다는 식으로라도 가야 한다. 도대체 왜? 물론 이 로맨스들은 다분히 판타지적인 로맨스다. 실제로는 누구나 ‘까칠한’ 사람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아무리 능력이 출중해도, 툭툭 뱉는 말이 재수 없고 까칠한 사람은, 남녀 불문 싫은게 정상이다.

그런 성격을 보상해주는 게 사랑, 외모와 목소리이다. 그리고 드라마와 소설 속의 미남 정도면(배우는 실재하지만 환상이기도 하다) 성격이 그래도 용서가 된다. 이 로맨스들은, 까칠하고 자기중심적인 남주가, 억지로 싫다는데도 독단적인 방식으로 여주를 도와주는 패턴을 반복한다. 아마 이 패턴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이 판타지는, 21세기 열악한 직업 환경에 놓인, 한국 사회 젊은 여성들의 혼란스러운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바로 어려운 현실 앞에, 자기의 진로와 미래에 대한 혼란 말이다. 이 부분에는 치명적일 정도로 남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간격이 있다. 남자들은 살면서, 직업을 갖고 가장이 되는 것이 기본이라고 배운다. 성인이 되어 결국 어느 정도의 직장을 갖던, 실직하거나 결혼을 안 하던 어쨌든 그것이 상식적인 인생의 정답의 이미지다. 하지만 여자들은, 살면서 배운 것들이, 실제 보고 겪는 것들 특히 성인이 되고 나서 접하는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부조리를 깨닫게 된다. 분명 학교에서는 분명히 나 자신의 꿈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라고 했는데. 여자도 할 수 있다라고 배웠는데. 성인이 되고보니,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상식적인 인생 코스이고, 정상적인 옵션으로 권장되고 있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에서 오는 육아와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이 필수다. 싫으면 결혼하지마 싫으면 낳지마라고 쉽게 말할 것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를 생각한다. 사랑을 하면 연애를 하고 연애 하다보면 결혼하고 결혼하면 출산하는게 일반적이다. 최근 이렇게 안 하는 용기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그래도 마음 속에서는 모두 은근히 ‘그것이 평범하다’라고 믿고 있다.

누구나 자기 일을 하고 싶다. 아무리 힘들더라도 내가 내 자동차의 운전대를 잡고 싶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결혼을 한다는 것은, 내 일을 그만두고 내 인생이 남편의 경제생활에 완전히 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의존한다는 것, 자신의 미래를 맡긴다는 것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한다. 어찌보면 인생을 건 도박이다. 사랑하는 남자를 믿고 내 일을 그만둔다는 것은, 알라딘의 손을 붙잡고(Do you trust me?) 아랫층으로 뛰어내리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까칠하게 굴면서 감정적인 거리를 두고,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해주는 남성상은, 실제로 여자들이 바라는 배우자상이 아니라, 의존하기 싫고 독립하고픈 욕구를 반영한, 여자들의 아니무스, 즉 자신의 내적 인격이다. 그러므로 한국이 만성적인 경제 불황으로 빠져들어가고, 모든 여성들의 생활이 팍팍해질수록, 현실 도피처인 로맨스에서는 이런 포맷이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마치 남자들의 이세계물과 히어로물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다시 작품 얘기로 돌아가면, 그렇기 때문에 로맨스를 읽고자 한다면, 이 작품은 로맨스 라인업의 최신품이라고 볼 수 있다. 폰을 바꿔야겠는데, 애플의 소비자라면 아이폰 최신품, 갤럭시 사용자라면 갤럭시 최신품을 고르듯이, 로맨스 소설을 읽고자 한다면 마음 놓고 시작할 수 있다. 물론, 제품의 퀄리티보다 가성비를 생각하는 독자라면 어려울 수 있다. 이 작품은 장편이니까.

마지막으로 한가지가 아쉽다면, 아마도 독자 연령을 고려한 수위조절 때문에, 여러 사랑 장면과 사건 사고 장면에서 트리플 악셀을 삭제하고 트리플 토룹, 더블 악셀만 남긴 흔적이 있다. 개인적으로 작가님에게 부탁해서라도 원본을 얻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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