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거인>에서는 미처 보지 못했던 ‘통합’에 관해. 의뢰(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장벽 (작가: 송근호, 작품정보)
리뷰어: Ello, 17년 4월, 조회 153

1.

<진격의 거인>은 등장부터 강렬했죠. 아마 이에 관한 만화나 애니를 접한 분이 꽤 많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화화까지 되었으니 그 인기야 증명되고도 남았을테고요. <진격의 거인>을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과 공포는 쉽게 가시질 않더라고요. 그 표지만 해도 큰 눈알에 기형적으로 찢어진 입과 비례가 맞지 않는 거인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으니 무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죠. 궁금한 건 한 번 씩 건들여봐야 하는 성격 덕에 몇 화는 보긴 했지만 잔인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손을 놓은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장벽>이란 소설의 리뷰 의뢰를 받게 됐습니다.

 

2.

그리하여 다시 <진격의 거인>을 봐야하는 부담감을 안고 글을 읽었지만 다행히도 원작을 보지 않아도 됐습니다. 원작의 세계관을 차용해서 글을 풀어가고 있지만 굳이 그 만화(혹은 애니, 영화)를 접하지 않았더라도 이해가 불가능 하지는 않았습니다. 작품에서 가져온 설정은 “거인이 있고, 그 거인은 인간을 사냥한다. 그래서 남은 인류를 각각 아주 높은 장벽을 세우고 그 장벽을 사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거인의 퇴치만이 인류가 살아날 길이다.” 정도 인 점을 고려하면, 게다가 그 설정 역시 C의 편지를 꼼꼼이 읽다보면 충분히 유추해낼 수 있습니다.

글은 짧습니다. 연재라고는 하지만 <진격의 거인>을 접해봤던 분이라면 과연 그 설정을 가지고 어떤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란 호기심을 가지고 한 번 읽어볼 법 하죠. 우리 주인공 C는 인류애적인 측면이 강해서 본래 세계관에서 볼 수 없는 호방한 성격이기도 하고요.

 

3.

글은 장벽 안에 있는 C가 또 다른 장벽안에 있는 ‘친구’ 진격님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친구’란 단어에 방점을 찍은 이유는 어쩌면 ‘적’일 수도 또다시 ‘친구’ 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거인과 한바탕 살기위한 전투를 치루는 과정에서 이들은 협력도 해야하고 자신의 그룹을 위해 반목도 해야합니다. 이런게 바로 정치일까요.

C는 온건파인 것처럼 보입니다. 다른 이들이 이룬 성과를 헛되게 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강하지만 그보다는 더이상 동료를 잃고 싶어하지 않은 마음이 더 강하게 드러나네요. 입체기동장치를 요구하는 것이나 완벽한 계획을 수립하길 원하는 모습이나 동료의 죽음에 비참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까지. 그에 비해 편지를 받는 진격님은 그보다 강경파입니다. [상호안전방위조약]의 체결을 원하는 것으로 보나 군대의 재창설을 요구하는 모습으로 보나 여러모로 C와는 의견차가 있습니다.

인류의 생존에만 힘 쏟고 싶어하는 우리 주인공 C 와 그보다 다른 문제에 눈을 돌리려는 진격님과의 갈등은 각각 원하는 것이 달라지면서 더욱 최고조를 향해 치닫습니다. C는 동료의 사망률을 낮추고 싶어서 ‘입체기동장치’를 원하지만 진격님은 [상호안전방위조약]에 대해서 선논의가 없다면 입체기동장치의 지원도 없다고 답신을 보낸 모양입니다. 결국 지원은 없었고 조약체결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강경파인 진격님은 결국 전쟁을 선포합니다!

 

저는 <장벽>의 3회차를 각각 ‘분리-전이-통합’의 통과의례적 성격으로 보고 싶습니다.

편지 속에 그룹이라 지칭되는 장벽 안의 새로운 집단은 아마도 소국가로 치환 가능 할 것 같은데요. 국가라고 불리기엔 미흡한 단계인 것 같습니다. 거인에 의한 그룹들의 분리, 장벽을 높이 세움으로써 이루어진 분리는 서로의 의식주를 편지를 통해 물어야만 했죠. 다음에 오는 전이는 ‘아직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규정 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사법체계와 의사결정 수단을 확립해야했고, 분리된 다른 그룹들과는 제대로 된 교류도 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미확정의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선포 당하고 통합으로 가기 위한 사건이 벌어지죠. 결국은 우리는 모두 인간 일 수 밖에 없다는 아주 거대한 통합입니다.

통합의 메세지가 거창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만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통합은 진격님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분명 진격님은 조약을 체결하지 않았다고 해서 전쟁을 선포해버리는 그룹에 속해있었으니까 말이죠.

C의 추신을 통해 제가 느꼈던 거대한 통합의 기류를 대신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4.

분명 진격님과 주고받는 편지이지만 글에서는 C의 편지만을 볼 수 있습니다. 1인칭 시점인 것을 짐작할 수 있는 신선한 형식이었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편도선 열차에 올라타 있는 것 같았지만 그다지 답답하지 않았던 것은 글의 전개가 매끄러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진격님이 어떤 답신을 했는지, 또 어떤 표현으로 C를 다독이고 혹은 화나게 했는지 상상할 여지가 있어서 더욱 즐거운 글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이탤릭체였던 처음 글이 좋았습니다. 전쟁통에서 휘갈겨 쓴 것 같은 거친 느낌이 더 잘 살아있었습니다. 가독성이 좋지는 않았지만 글 속의 전시 상황과 맞물려 급한 마음으로 읽게 된달까요.

급박하게 쓴 편지와 정중하게 쓴 편지의 글자체의 차이를 두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봤습니다. 비통한 마음으로 쓴 편지는 아무래도 글자가 와르르 무너지기 마련이니. 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하면 1인이 작성한 편지라는 것이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네요.

그러고보니 ‘진격님’ 이란 호칭에서도 강경파인 것이 드러나는게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동해가 나오고 신대동아시아가 나오는 걸 봐서도 아마 C는 우리나라의 누군가인 듯 하고요.  진격님이 주장하는 군대의 배치는 조선총독부를 떠올리게 해서 진격님에게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봤는데 독자와 진격님과의 사이를 C가 잘 중재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거인의 공포스러운 모습을 그림으로 보지 않아도 되고, 다른 그룹과의 관계를 조명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드리고 싶은 작품이었습니다.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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