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유독 많은 별들이 졌습니다. 유독 많은 아픔들이 사회에 맴돌았죠. 누구보다 빛나고 이름을 떨친 사람들의 쓸쓸한 마지막은 외롭고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누군가는 그러죠, 젊고 살아갈 날들이 많은데. 그런데 사람들은 아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바로 살아갈 날이 많이 남았다는, 그 끝이 안 보이는 고통의 길 때문이라는 것을요. 져버린 별들은 조용히 간 것 같습니다. 지나고 나서야 우리들은 미리 우리에게 알렸다면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실 알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들이 말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하다 안쪽으로부터 썩어간 삶을 내려놓는 이유는, 그동안의 삶이 그들을 침묵하게 했기 때문이겠죠.
이 글은 슬프고 애통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자신의 마음을 모두 드러내지 못하는 그녀에게는 미안함을 느끼기까지 합니다. 그녀는 모든 사람의 초상입니다. 그녀는 우리 각자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슬픔이 있고, 누구나 한 번쯤 삶이 미워질 만큼 힘들고, 누군가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싶기도 하죠. 하지만 우리는 어쩐지 잘하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그런 이들을 나약하다고 말하고, 누군가는 남들도 겪는 일이라 하고, 자기도 힘드니 조용히 하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사회는 고통을 감내하기를 바라는 걸까요. 그렇게 살아남은 자들은 강한 걸까요 죽은 걸까요. 누군가는 명쾌하게 답을 내릴지도 모르지만, 저에게는 너무 힘든 일입니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시는 통에 외국에 나가서 사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긴 여름이 시작되는 날, 저는 아버지의 사업 투자자의 아들과 함께 유학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는 한살이 많은 형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을 3년 정도 배웠고, 방에 단둘이 있을 때면 늘 저를 때렸죠. 맞지 않은 곳이 없었습니다. 2년을 꼬박 그렇게 살았죠.
하루는 그가 자신의 친구를 데려왔습니다. 밤이었습니다. 저는 누워 있었고, 그들은 제가 자는 줄 알았나 봅니다. 형이 말했습니다.
“저 새끼 밀어서 죽여버릴까?”
“그냥 미쳐서 자기가 뛰어내렸다 그럼 되지.”
새벽의 3층 방, 두려워 숨을 쉬기조차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음날이 되었을 때 아버지에게 말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찾아간 사무실 앞에서 저는 한참을 서 있다 돌아왔습니다. 아버지의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저는 두려웠던 겁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한 아버지와 투자자의 사이를 걱정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아버지가 침묵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저를 잡아 새웠습니다. 저를 돌려보냈지요.
미처 실행하지 못했지만 잠깐 죽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때는 어쩐지 죽음은 슬픈 끝이 아닌 구원이자 탈출구로 보였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는 제가 강한 것인지, 그만 마음이 죽어버려 그런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상처받으며 살아갑니다. 상처는 치유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점차 힘들어지는 세상입니다. 이해관계, 시선, 경험들과 그로 인해 계속해서 쌓여가는 상처는 우리들을 치유하지 못하게 합니다. 다만 아물어 덤덤해 보이게 만들지요. 다만 안에서 썩어가게 만들지요. 언젠가는 모두가 자신이 아프다, 힘들다, 괴롭다 말할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저에게는 너무 힘든 일인데. 이 글의 ‘그녀’가 더는 나타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러나 그들에겐 너무 힘든 일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