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해외 뮤지션의 내한공연을 보러갈때면 콘서트 시작 직전에 묘한 설레임과 긴장감에 취했 있곤 한다. 어렵게 내한이 성사된 뮤지션이거나 뮤지션의 나이나 여타의 사정 등으로 앞으로 추가적인 내한 공연을 기대하기 힘든 경우일 때 더 그런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Opening은 어떤 곡일까?’, ‘오늘의 Set list는 어떻게 될까?’, ‘최근 투어의 Set list와 유사하게 진행될까?’, ‘내가 좋아하는 그 곡은 들을수 있을까?’, ‘난 최근 편곡 보다는 오리지널 편곡이 좋던데…’
좋아하는 뮤지션의 음악을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들을수 있다는 흥분 속에서 혼자 꼬리에 꼬리를 무는 즐거운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되는 것이다. 오히려 공연전 혼자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그 순간이 공연을 관람하는 순간 못지 않게 즐거웠던 놀라운 경험을 여러 번 체험한 것 같다.
음악에 대한 영화나 소설은 많이 존재한다. 클래식에서부터 락, 포크, 힙합과 같은 대중음악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는 장르도 다양하다. 어떻게 보면 음악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발전해온 만큼 강력한 컨텐츠이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음악을 모티브로 한 영화나 소설은 음악 자체에 내재된 힘 때문에 그 만큼 성공하기 힘든 것 같기도 하다.
쇼미더머니, 고등래퍼, 힙합의 민족 등 요즘 힙합은 말 그대로 핫한 장르이다. 하지만 성공한 힙합 영화를 떠올려 보면 Eminem의 일대기를 그린 8마일 이외 선뜻 떠오르는 작품이 없다. 관련 작품이 없었던 것은 절대 아니다. 핫한 장르 답게 힙합신의 전설이자 슈퍼스타였던 Biggie, Tupac을 비롯하여 50Cent, Dr. Dre 등의 캐릭터와 음악을 기반으로 한 힙합 영화는 8마일 이후에도 많았다. 이 같은 현상을 지켜보며 ‘음악이 컨텐츠로서 지니고 있는 본질적인 힘을 영화나 소설이 표현하기에는 역부족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음악은 음악 자체만으로도 완결성을 가진 예술적 콘텐츠이기 때문에 팬들은 음악 자체에 열광하고 소비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고 따라서 음악을 소재로 한 영화나 소설은 역설적으로 음악이 가장 큰 라이벌인 것은 아닐까?
얼음나무숲은 이런 나의 생각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된 소설이다. 전설이 된 천재 바이올리니스트 아나토제 바옐과 그에 못지 않게 천재성을 지니고 있지만 그보다는 바옐의 음악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단 한명의 청중이 되길 원한 피아니스트 고요 드 모르페의 이야기는 가상의 도시 에단과 아름다운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음악을 소재로 하고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까지 존재하는 영화가 흥행하기 힘들다면 음악을 글로써 표현해야 하는 소설은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음악소설은 음악 자체를 소재로 하는 것이 아닌 등장인물간의 매개체로서 음악을 소비하는게 최선일 것이란 나의 생각은 이 소설을 읽으며 여지 없이 깨져버렸다. 얼음나무숲은 소설에 묘사된 음악이란 콘텐츠로 내가 콘서트 전에 느꼈던 묘한 설레임과 흥분을 느끼게 해준 소설이다.
소설을 읽으며 이 세상 어딘가 에단이라는 도시가 존재하고 그 곳에서 매일같이 음악이 흘러나오고 몬드광장에서는 고요와 바옐, 트리스탄이 아름다운 삼중주를 연주할 것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단 한명의 청중을 찾기 위해 몸부림 치거나 자신의 음악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절망하는 바옐… 바옐의 청중이 되고자 하지만 결코자신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슬퍼하고 실망하는 고요 드 모르페…
이 책을 읽는 누구라도 책장을 덮을 때면 그들이 연주하는 아름다운 음악을 느끼고 호흡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