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가 들려주는 죽음 의뢰 브릿G추천

대상작품: 종말의 이름 (작가: 이다, 작품정보)
리뷰어: stelo, 17년 4월, 조회 96

요약 : 3명의 화자가 종말 이후의 한국을 이야기합니다. 3가지 이야기는 비슷한 구조로 변주되다가, 결국 편안한 자살이라는 이미지 위에 포개집니다.

 

1인칭 화자가 설명하는 종말

[종말의 이름]에는 3명의 남자들이 화자로 등장합니다. 첫번째 화자는 남자라고 직접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요. 어쨌든 들어보니 세계는 멸망했다고 합니다. 이름처럼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인 모양입니다. 배경은 한국인 것 같습니다. 유교 국가라서 무덤을 찾는 노인들이라던가, 총 물량이 없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죠. 하지만 한국이 중요하진 않습니다. 이런 묘사 몇 부분을 빼버린다면 한국이라는 걸 알아차리기 어려울 것 같아요.

왜 세계가 종말했는지는 나오지 않습니다. ‘종말 이후’ 물자는 떨어졌고, 약탈자들이 나타났으며, 3번의 집단 자살이 벌어졌다고 하죠. 뻔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설명해나갑니다. 왜 총이 없는지, 왜 핸드폰 밝기를 최저로 해놓는지, 자살한 시체들은 어떻게 되었는지,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화자들은 하나하나 설명해줍니다.

설명한다는 게 중요합니다. 설명은 묘사와는 다르거든요. 묘사는 보여주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거나 들리거나 만질 수 있죠. 밖에 나가서 칼을 휘두르고 뛰어다니는 사람들은 묘사를 합니다. 반면에 설명은 말해주는 것이고, 사색적이기도 합니다. 방 안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어울리죠. 과거를 되돌아보고 곰곰히 생각해보는 것이니까요.

설명이나 사색은 차가운 면이 있습니다.

물론 끔찍한 세상이죠.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요. 화자의 어조에는 감정이 실려 있습니다. 하지만 독자는 이입하기보다는 거리를 두고 분석하게 됩니다. 감정을 객관화하는 거죠. 죽은 건 다른 사람들이고, 누나이고, 어머니입니다. 화자는 죽지 않았지요. 화자는 지옥 바깥에 안전한 곳에 있습니다. 1인칭이지만 1인칭 관찰자나, 3인칭 시점인 것 같은 느낌도 듭니다.

  “폭력과 약탈과 살해를 비롯해 온갖 생존을 하기 위해 인간성을 버린 인간들만이 남았다.”

하지만 그 약탈자들을 눈으로 보진 못합니다. 안 나오거든요.

“그러나 누나는 대피소가 시체들에 습격당할 때 사람들에게 깔려죽었다” 던가

“그때 처음으로 방송에서 튼 영상이 아니라 눈 앞에서 달려드는 시체를 본 사람들과 사방에서 밀려드는 위협에서 사람들을 어떻게 도망치게 해야 할 지 모르던 관리자의 통솔이 곱해져 몇 배의 혼란을 만들었다.”

참 냉정하고 침착한 분석이죠.

 

 

  주사기를 든 바텐더에 대한 의문

화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지도 않고, 하물며 좀비들에게 쫓기지도 않습니다. 물자는 부족하다는데, 첫번째 화자도 두번째 화자도 식량이나 물 걱정을 하는 장면이 안나오죠. 배터리 걱정은 하는데, 어쨌든 ‘영화’를 즐길 여유는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독자가 이 소설을 읽어야할 이유가 뭘까요? 미스터리입니다.

화자도 이야기도 3가지지만, 다들 똑같은 지점으로 수렴합니다. 바로 주사기를 든 바텐더죠. ‘자살’을 도와주는 게 일인 모양입니다. 사진을 찍고, 약에 대해 설명하고, 음료를 마시고… 이야기는 갑작스럽게 끝나버리고 다음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도대체 주사기를 든 바텐더는 어떤 사람일까요? 왜 사람들을 죽여주는 걸까요? 그것이 미스터리입니다. 결말에 이르면 ‘첫 손님의 이야기’가 밝혀집니다. 미스터리가 풀리니 이야기도 끝납니다…

 

하나의 사진 – 편안한 자살

이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미지는 자살입니다. 고통스러운 세상에서 도망쳐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배경은 고통의 상징처럼 보입니다.

  건물 외벽이나 지나치는 곳마다 ‘우린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이 길을 지나갑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따위의 글들을 쓰며 다니는 것이 유행처럼 전 세계를 집어삼키기도 했다. 그러나 3년이 지나 생필품도 식수도 식량도 바닥이 나고 생활하는 게 힘들어진 사람들이 또 대량으로 자살했다.

첫 번째 화자가 설명하듯이 사람들이 죽은 이유는 구체적으로 ‘물자 부족’ 때문입니다. 두 번째 화자가 말하는 배터리나, 세 번째 화자가 말하는 분유나 탐폰…도 결국 물자 부족입니다.

하지만 화자들은 이런 상황을 바꿔보려 하진 않습니다. 물자를 독점한 군벌을 물리친다는 식의 매드맥스가 아니니까요. 앞서 말했듯 이 소설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세계는 이미 종말했습니다. 물자가 없다는 건 확고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고통에 갇혀버렸습니다. 고통에서 빠져나갈 방법은 없습니다.

그런데 바텐더가 제공하는 ‘자살’은… 정말 죽음은 아닙니다. 좀비가 되거든요. 제가 이 작품이 ZA좀비 아포칼립스 라고 이야기를 했던가요? 안한 것 같지만 누가 봐도 공모전 응모작이니 괜찮겠죠.

  어쨌든 좀비가 되면 한 줄기 희망이 남습니다. 물론 그 희망은 환상인 것 같지만요.

  그런데 이 이상한 것을 쓰면, 살아있을 때의 모습이 온전하게, 그리고 아프지도 않게 쉽게 자살할 수 있다. 그리고 별 거지 같은 희망도 품는다.

‘혹시 모르잖아’

세상이 이 지경인데도 어디엔가 에선 최후의 연구원들이 아직도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는 소문을 믿는 녀석들은 8년째인 지금까지도 있었다.

 

 

  잠시 문장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사족입니다. 제가 리뷰를 쓸 때 문장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간 적이 없네요. 가독성이 나쁜 장문이 자주 등장합니다. 읽다가 이해가 안가서 몇 번 다시 읽었어요. 초반에 나오는 문장들을 예로 들자면…

1. 먼지 위에 풀썩 쓰러진 시체는 방금 금고에 맞아 찌그러진 두개골과 튀어나온 안구를 빼고는 지나치게 상태가 온전했다.

-> 먼지 위에 풀썩 쓰러졌다. 방금 금고에 맞아 두개골이 찌그러졌고, 안구가 튀어나오긴 했지만 시체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2. 자신의 얼굴 사진 밑에 살아있을 때의 이름이 쓰인 채 목에 걸려 있는 건 목걸이보다는 인식표라고 불러야지 싶다.

-> 목걸이를 걸었는데, 자기 얼굴 사진 밑에 이름을 써놓았다. 이런 건 목걸이보다는 인식표라고 불러야지 싶다.

3. “총은 아주 꼼꼼한 관리가 필요한 장비이기에 초반에 멋모르고 총을 챙겼던 사람들은 자지도 먹지도 못하고 그 끔찍한 것들에서 도망 다니면서 그걸 분해하고 닦으며 관리할 여유가 없었다.”

-> 총은 아주 꼼꼼히 관리를 해야한다. 초반에 멋모르고 총을 챙겼던 사람들은 자지도 먹지도 못한 채 그 끔찍한 시체들에게서 도망 다닐 뿐이었다. 총을 분해하고 닦으며 관리할 여유는 없었다.

 

문장에 대한 책은 많이 나와 있으니, 책들을 보면서 스스로 윤문을 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몇 가지 아쉬움이 남습니다. 디테일한 설정들은 있지만 인물들은 단순합니다. 단순한 동기와 디테일한 고통이 갈등하죠. 예를 들어 누나가 어떤 상황을 겪었는지는 자세하지만, 누나의 반응은 전형적입니다. “망연한 표정”으로 돌아와서 “고마운 표정”으로 휴지와 물티슈를 받아들죠. 어머니도 전형적인 삶의 궤적을 따라서 결국 세 자식에 대한 집착으로 귀결됩니다.

그런데 앞서 말씀드렸듯이 화자들은 관찰자에 가깝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와 누나가 주인공이라는 거죠. 그 주인공들이 겪는 끔찍한 일들이 독자에게 감정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그런데 관찰자가 설명해주는 전형적인 주인공은 주제를 전달하기에 부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작품이 사회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괜찮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사회를 다루기엔 어려운 1인칭 시점이고, 주제 역시 인물들의 고통입니다. 사회는 자살하지 않습니다.

또 상황에 끼어드는 설명은 감정선과 어긋나기도 합니다. 설명은 잘 모르는 사람에게 들려주려 하는 것이지, 주인공의 동기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육탄전으로 들어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국에 총이 없는 이유를 설명하진 않겠죠. 화자는 이미 알고 있으니까요. 그보다는 전략적인 부분들을 파악할 겁니다. 이런 부분들이 1인칭 화자에게 몰입하는 걸 방해합니다.

전에 이영도 작가님이 브릿G에 오셨을 때 하신 말씀이 떠오르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독자는 대부분 똑똑합니다. ‘배경 이야기 안 해주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를 거야.’ 같은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결론 : 이 세상은 지옥이며, 나는 죽을 것인가?

결론에서는 주관적이고 개인적으로 글을 써보겠습니다.

현실은 누군가에게는 지옥입니다. 경제 위기 직후에는 자살률이 급증한다는 연구도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자살을 통해 편안해질 수 있다고 믿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종교를 믿는다면 자살은 죄인 경우가 많고, 사후세계를 믿지 않는다면 죽음은 그저 끝일 뿐이죠.

인간은 사회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능동적이고 사회에 휘둘리기만 하진 않습니다. 세상은 살기 좋은 곳이라던가, 문제들을 해결해줄 만병통치약이 있다고 믿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순진하니까요.

현실을 직시하면서도 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사람들은 있습니다. 약을 찾는 사람들도 그렇죠. 수 많은 전염병들이 인간을 죽이려했지만, 인간은 결국 살아남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아기들에게 백신을 맞히죠. 물론 모든 병을 정복한 건 아닙니다. 제 고모부님은 암으로 죽으셨어요. (이건 설명이죠) 할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신지 1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한 고모님은 암이 재발하셔서 투병 중이시고요. 인간은 아직 암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

그 밖에도 고통은 많죠. 경제적 불평등과, 차별과 억압들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그렇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매일 “나를 괴롭힌 녀석들을 다 죽이고, 자살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살아 있습니다. 왜? 치료제를 찾는 과학자가 되고 싶은가 봅니다. 저는 좀비가 되진 않을 것 같군요. 좀비가 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도요.

 

잘 읽었습니다.

 

리뷰 평가를 부탁드립니다.

작가만 피드백을 받을 수는 없죠. 리뷰에 피드백을 해주시면, 제가 언젠가 쓰게 될 리뷰에 참고하겠습니다. 다음 3가지를 쪽지나 이메일로(twinstae@naver.com)보내주시면 됩니다.

1. 리뷰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이나, 도움이 된 부분은 무엇인가요?

2. 리뷰에 동의하지 않거나 설명하고 싶으신 부분은 무엇인가요?

3. 리뷰에 이런 걸 써주면 좋겠다던가, 없어서 아쉬운 점은 무엇인가요?

 

참, 제가 이제 군대에 가기 때문에, 당분간 리뷰 의뢰는 받지 않을 생각입니다. 소설도 어서 완성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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