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새해가 밝은지도 며칠이 되었다. 초등학생 때 숙제로 그려 간 과학 상상화와는 그 풍경이 퍽 다르기는 하지만 숫자의 자릿수가 하나 달라지니 그 당시 막연하게 상상한 미래가 어느새 훌쩍 다가와 있는 기분이 든다. 이 단편은 아마 내가 현 시점에서 과학 상상화 그리기 숙제를 받는다면 재미 삼아 그려볼 법한(솔직히 이렇게까지 쫀쫀하고 재밌는 설정과 서술을 할 수 있을지에는 의심이 들지만) 이야기에 흥미진진한 핍진성을 멋들어지게 걸쳐 입었단 인상을 받았다.
어딘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주석(물론 2020년의 내가 읽기엔 더글러스 애덤스보다는 이쪽이 훨씬 더 재밌다. SF에서 맡게 되는 과거의 향취란 웬만해서는 그다지 플러스 점수로 작용하진 않는다고 생각하는 편이라서 그런가)에, 23세기라는 숫자를 볼 때면 으레 연관지어 떠올려보게 되는 <스타트렉> 시리즈 속 인류의 제법 희망차고도 용감무쌍한 모습과 달리 조금은 씁쓸하게 이주 행성을 찾아헤매는 지구 대표단의 모습과 생활상은 현 21세기의 우리들과 지나치게 많은 접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등골이 자못 서늘해진다.
우리 같은 지구 촌놈들에게 소우주 그 자체로 기능하던 이 행성은 몇 백 년 후 전 은하의 무시를 받으며 어떻게든 팔아치우려 애쓰는 헌집으로 전락하고 만다. 인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새집이 아니라 비교적 더 버틸만한 헌집이 되었고, 저 잘난 맛에 살던 이들은 사실 드넓은 우주를 통틀자면 주류의 축에도 끼지 못한다는 설정이 그동안 많은 이들이 어깨에 힘주고 써내려간 휘황찬란한 SF 저작과 다소 노선을 달리해 재밌었다.
또, 인류가 지구를 떠나 새로운 행성에 보금자리를 트는 방식이, 소수의 힘 있고 능력 되는 이들만의 이주가 아니라 그나마 행성 단위로 인류 전반에 걸쳐 진행된다는 데 다소 마음이 놓였다. 아마 그러지 않았으면 나 같은 류의 인간들은 23세기까지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 행성에 발을 붙이고 미적지근하게 살아남아, 무감해지려 애쓰는 얼굴을 가장하고 하나 둘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이나 보는 게 고작이었을 테니까.
그런데 왜 하필 맥도날드일까? 그러고는 나의 맥도날드는 어디일까를 잠시 고민해보았다.
결론은, 내 생각에도 역시, 뭐 하나 지구에서 익숙해진 존재를 타 행성에서 만나게 해준다면 맥도날드인 편이 좋을 것 같다. 문득 창 밖으로 올려다 본 달의 모습이 오늘따라 조금 심상치 않다. 이윽고 은은한 달빛을 닮은 선율이 머릿속으로 울려퍼진다. 참깨빵 위에 순살고기 패티 두 장, 특별한 소스, 양상추, 치즈 피클 양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