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참 오래된 이야기에요.
2008년이었던가요, 2009년이었던가요. 중학생 시절에, 노블레스 클럽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무렵이었으니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일거에요.
읽어본 판타지라고는 드래곤 레이디와 월야환담밖에 없을 시절, 그러니까,
환상문학이 순문학에 지쳤을때 아주 잠깐 만나는
‘내가 기억하는 동안만의 짧은 유희’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을때 즈음에, 이 책을 만났던 것 같아요.
아직도 그때 생각이 나요.
글을 쓰기 위해 키보드 앞에 앉으면, 무언가가 피어난다고 믿었던 시절이었어요.
지금의 저는 조금 달라졌어요.
내 삶의 길이라는 순문학은 읽지도, 쓰지도 않은지 오래되었고, 눈앞에 있는 서류를 뒤적이면서 전화를 받아요.
넘어가는 술잔 바닥에서 인생의 답을 찾아 헤매었고, 처음보는 사람들과 웃으며 커피를 마셨어요.
매일같이 퇴근길에는 핀잔을 맞아가면서, 담배를 태우게 되었어요.
이따금씩 시간이 날때면, 휴대폰으로 값싼 연재소설을 봐요.
환상문학, 아니면 판타지라는 것도, 정말 많이 변했어요.
노블레스 클럽은 무너졌어요. 많은 환상문학가들이 길을 잃었고, 우리는 점점 더 빠르고 격렬한 것을 원하게 됐어요.
이야기거리는 수십권이 쌓여갔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어요.
결국 그것들이 잠들어있는 담요를 슬며시 드러내면, 그 안에 숨쉬는 것은 모두 똑같다는 걸요.
십년새에, 우리는 지쳤어요.
다를 것이 없어졌어요. 네. 그래요.
그래서 조금은 놀랐어요. 글을 써봐야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브릿지에 들어 왔을때
얼음나무 숲을 보았을때요.
아무래도 모래선혈보다는 얼음나무 숲이 더 낫지. 라는 시시한 생각를 하면서
저는 다시 얼음나무 숲을 펼쳐들었어요.
네. 그곳엔 여전히 숨쉬고 있었어요.
십년전에 내가 보았던 고요가, 키세가, 에단이, 그리고 바옐이.
시간이 얼마나 지났던 간에, 작가님의 글은 변하지 않았어요.
그게 얼음나무 숲이었어요.
항상 감사해요.
제가 환상문학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되어주어서.
참. 미안해요. 브릿지로 보면서 어깨를 으쓱이고 싶지만
아직은 제 책장에, 라크리모사와 모래선혈 사이에 끼어있는, 겉장은 날아가버린, 테두리가 꼬깃하게 닳아가는 회색 커버의 얼음나무숲을 여는 게 더 좋네요.
그럼 전 다시 책을 읽으러 갈게요.
안녕히 계세요.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