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의 일이다. 평소와 크게 다를 것 없이 인터넷을 뒤지던 나는 [여군지옥]이란 만화를 발견했다. 만화라기보단 설정에 가까울 것이다. ㄱㄱㅊㄹ(초성 처리)라는 닉네임을 쓰던 한 사람의 그림이었다. 나는 그 만화의 설정이 참신하긴 하지만 권장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포르노나 야망가를 즐기지는 않지만 꺼리지도 않는 그런 사람이었으므로. 하지만 그 만화는 최근에 이르러 그야말로 大조명을 받고 집중포화를 받아 너덜너덜하게 까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이 글을 보게 되었다.
여자의 복무에 대해 다룬 매체는 적지 않다. 나는 뷰티풀 ㄱㅂㄹ부터 시작, 지금도 연재중인 몇몇 것들을 제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중 상당수가 성(性)적 이슈에 맞닿아 있다는 건, 거의 대부분 남자만이 복무하고 있는 현재의 군 체제에 비춰 어쩔 수 없는 일일까, 아니면 당연한 일인 것일까. 국방의 의무는 국민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신성한 의무이다. 하지만 젊은 남자들의 노동력을 부당하게 착취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현재와 연결되면 이 의무의 신성함은 빛이 바랜다. 남은 건 빼앗긴 것 같은 억울한 내 청춘과 국가가 나를 이따위로 소비했다는 억울함, 그리고 자리를 비운 나 대신 잘 나가고 있는 것 같은 다른 이들에 대한 자격지심 정도이다. 이 감정들이 뒤섞여 폭력이 된다. 군대 안에서 냄새날 정도로 잘 발효 또는 부식된 남성성에 의존한 폭력이 얼마나 악의에 악의를 물고 우로보로스마냥 잘 뒹굴고 있는지는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 다 잘 알고 계시리라- 여자만큼 입에 올려놓고 털기, 벗기기 좋은 존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느새 옮는다. 총 하나 제대로 들 줄 모르는 같잖은 여자들. 전쟁 나면 뭐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리나 벌리게 될 여자들. 제대할 쯤 무의식이 그렇게 되는 걸 막긴 상당히 힘들었음을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한다.
남자들이 페미니스트와 조금이나마 비슷한 입장을 취하게 되는 건, 역시 결혼이다. 내게 별 것이 아니었던 세상이 (아니면 약간밖에 위험을 느끼지 못했던 세상이) 내 소중한 아내에겐 형편없는 곳임을 알게 되었을 때, 아무래도 남자는 변할 수밖에 없다. 아내에게 때로는 적극적으로, 때로는 심드렁하게 동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지해질 수밖에 없는 때가 온다. 지독하게도 아빠를 닮은, 내 딸이 태어난다. 그리고 세상이 달리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나 위험한 세상이 없었다. 그 세상의 위험함을 어떻게 깨닫냐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보던 시선 그대로가 세상 다른 놈들의 시선이라고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다리 뻗고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K2 소총이라도 어디서 구해서 옆구리에 몰래 챙기고 밀착 감시, 아니 밀착 보호하고 싶어진다. 어디 감히 내 딸을-! …이게 오만한 남성성이란 사실을 최근에야 알았다. 딸이 내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벌어지는 일이라더라. 페미니즘은 아직까지도 너무 어렵다.
이 글은 페미니즘에 많은 신세를 지고 있다. 생각하기도 끔찍한 미래를 자연스럽게 엮어내면서, 역설적으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의 권리는 무엇인가/의무는 무엇인가/여자도 남자랑 동등한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는가. 하지만, 과연 가까운 일인가 먼 일인가? 대체 복무에 대한 이야기는 지금도 왕성하게 논의 중이다. 하지만 출산율과 지금의 기조를 악화시켜 연결한다면, 이런 대체 복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으란 법은 없다. 항상 현실은 사람이 만든 것을 뛰어넘는 법이므로. 이미 종군위안부라는 끔찍한 생각을 해낸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사람의 가치가 비단 번식력에만 종속된다면, 그것을 정말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1등급~3등급이라니, 걸어다니는 자궁지도라고 불리던 가임기 여성지도를 봤던 충격이 그대로 떠올랐다. 결말은 시원하다라고 믿자니 너무나도 착잡했다.
이런 미래가 오지 않길 바라며, 이 글을 권한다. 마음의 준비는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자가 봤을 때의 소감과, 미혼의 남자가 봤을 때의 소감, 딸 가진 남자가 봤을 때의 소감이 다 다를 것임을, 나는 장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