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어떻게 죽는 게 좋을까 여러 번 공상해 본 일이 있었다. 그땐 잠이 들듯 죽으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요즘 같은 시대야 뭐, 그저 유병장수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요즘도 가끔 죽음을 떠올려본다. 나는 인간 삶의 끝이 ‘무’라고 믿는다. 그건 내게 별다른 종교가 없어서라든지 미신을 크게는 믿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나는 현생과 사후 세계가 얽힌 괴담 읽기를 좋아하고 영가의 존재를 어렴풋이 믿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내 삶의 끝은 그냥 아무것도 없음(Void)의 상태가 믿게 된다. 글쎄, 그 외의 것들은 너무나도 그냥 삶과 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살아만 본 탓인지 죽음이 사실은 삶과 별 다를 바가 없다고 해도 그걸 내가 직접 겪기 전까지는 쉽사리 믿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이 이야기에서 가장 믿고 싶지 않은 부분을 꼽아보자면, 내 죽음을 내가 온전히 책임져야한다는 전개가 될 것이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이 세계에서는 가버린 이를 두고 ‘남은 사람은 어떡하냐’는 원망을 자주 쏟아내는데, 사실 죽은 후 그런 원망뿐 아니라 내 자신의 죽음까지 온전히 내 어깨에 진 채로 또 다른 삶을 기다려야한다면 인간 개체의 삶이 너무나 길게 느껴질 것만 같다. 지금도 수명이 너무 긴 게 아닌가 이따금 푸념하는 사람으로서는 그런 기분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인간이 죽은 후 기다렸다 동물이 된다는 설정은, 영화 <더 랍스터>보다는 훨씬 온기가 있어서 좋았다. 이 이야기처럼 인간이 죽어서 동물이 된다, 혹은 영화 설정처럼 인간끼리 ‘짝’을 찾지 않으면 동물이 된다, 이 둘 중 한쪽을 고른다면 역시 전자가 더 인간적이고 핍진성 면에서도 훨씬 그럴듯하다고 생각한다.
성인이 된 이후 나는 안 아프게 죽고 싶어서 운동이나 식단 관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웬만해선 유병장수의 삶을 피할 길이 요원해진 요즘은 그냥 혹시 죽은 후에도 그 죽음을 어깨에 지고 끙끙거릴지 모를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다시 건강 관리에 좀 더 매진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보게 된다. ‘잘 죽기 위해서 하는 건강 관리’ 같은 다짐을 하기에 한 해가 저물어가는 12월 31일만큼 적절한 날이 또 있을까?
그리고 죽어서 만일 내가 동물이 된다면 나는…
역시 죽어서의 일까지는 그냥 죽은 후의 내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