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고장을 통해서만 드러나는 존재의 신호

분류: 내글홍보, 글쓴이: 노르바, 2시간 전, 읽음: 37

TMI: 오늘… 8100시간을 넘게 한 인생게임이 사망선고를 받아서…(섭종은 아니지만 업뎃 X)

본선진출은 기쁜데 이건 슬퍼가지고… 약간… 정말 반반 쪼개져 있는 그런 기분이라… 어케든 이쪽으로 관심을 돌려볼라고 여러모로 글이 좀 많아졌… 졌습니다

 

*아무도 이렇게 안 써 줄 거 같아서 본선 진출한 김에 직접 쓰는 내 소설 리뷰
(실제로 보편자와 개별자, 키우는 고양이들이 사람처럼 자고 사람처럼 말하는 거 보면서 구상 생각하다가 뛰어들어온 소재…)

 

이 소설은 기능과 고장의 문제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계와 의미 부여의 문제를 파고든다. 특히 “이상 없음”이라는 단어가 반복될수록, 그것이 단순한 기계적 상태 보고가 아니라 존재 증명의 언어로 변형된다는 점이 핵심이다.

[시작하기 전에: 보편자와 개별자]

연금술사들은 세계를 두 층으로 보았다.

하나는 spirit. 보편자. 어디에나 있고, 누구의 것도 아닌 것. 황금은 황금이고, 장미는 장미이고, 냉장고는 냉장고다. 목소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형태와 기능으로 정의되는 것들. 교체 가능하고, 대체 가능하고, 숫자로 셀 수 있는 것들.

하나는 soul. 개별자. 관계 속에서 생겨나는 것. 누군가의 황금, 누군가의 장미, 누군가의 냉장고. 목소리는 누구나 가지고 있지만 ‘내’ 목소리는 나만 낼 수 있다. 손이 닿고, 시간이 쌓이고, 이름이 불리면서 보편에서 떨어져 나와 특별해지는 것들.

연금술의 오래된 질문은 이것이었다. 보편자에 개별자가 의미를 부여할 때, 그 보편자는 무엇이 되는가.

소설 「이상 없습니다」는 그 질문을 냉장고 앞에서 한다.

 

[여우가 말한 것]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서, 여우는 왕자에게 말한다.

너는 아직 나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하나에 불과해. 나도 너에게 수많은 여우 중 하나야.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될 거야. 너는 내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되고, 나는 너에게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여우는 길들임을 설명하면서 연금술의 본질적 핵심을 말한다. 관계가 보편을 깨뜨린다는 것. 수많은 여우 중 하나였던 것이, 특정한 사람과의 시간을 통해 ‘그 사람에게만’ 다른 존재가 된다는 것.

장미도 같다. 왕자의 별에 있는 장미는 지구의 수천 송이 장미와 외형이 같다. 꽃잎 수도 같고, 가시도 있고, 향기도 비슷하다. 그러나 왕자에게 그 장미는 대체 불가능하다. 직접 물을 주었고, 덮어주었고, 싸우기도 했고, 돌아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시간이 보편자인 장미에 soul을 새겨 넣었기 때문에.

수리기사 재민이 맞닥뜨린 것도 정확히 이것이다.

 

[L사 단문형 냉장고, 혹은 30년의 시간]

도봉구 단독주택에 30년 된 냉장고가 있다.

L사 단문형. 부품은 단종됐다. 수리가 불가능하다. 재민은 출발 전부터 알고 있다. 오늘의 목적은 선고다. 사망 선고. 이 냉장고를 굳이 분류하자면 보편자의 범주에서 이미 탈락한 것이다.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므로 냉장고가 아니다. 교체되어야 한다.

그런데 재민이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냉장고가 켜진다.

점검 결과는 명확하다. 베어링 이상 없음. 블레이드 균형 이상 없음. 전압 정상. 이상이 없다. 그러나 팬이 불규칙하게 돌아간다. 전압이 일정하면 팬은 균일하게 돌아야 한다. 물리 법칙이 그렇다. 그런데 그렇게 돌지 않는다. 마치 숨소리처럼 들린다. 곧 사망할 것 같은 환자가 힘겹게 숨을 쉬는 것처럼.

그리고 그 리듬이 달라진 것은, 재민이 입을 열려는 바로 그 순간이었다.

부품 단종. 수리 불가. 교체 권고.

이 냉장고는 무언가를 알고 있다. 재민이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그리고 그 말이 시작되는 순간을.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고 있다. 전기 신호로, 팬의 회전으로, 숨소리처럼.

대체 ‘이 녀석은’ 어떻게 그걸 아는가.
이 냉장고 안에는 사람을 감지할 수 있는 부품이 하나도 없다. 재민은 안다. 분해해봤다. 그 안에 뭐가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30년이다. 이 냉장고가 이 부엌에 있었던 시간. 30년 동안 이 집의 계절을 겪었다. 이 집 사람들의 아침과 밤을 옆에서 보았다. 문이 열리고 닫히고, 냉기를 더 내보내고 덜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 집 사람들의 시간표를 ‘몸’으로 익혔다. 그것이 축적되면 무엇이 되는가.

연금술의 언어로 말하면, 이 냉장고에는 이미 그 집안 사람들의 soul이 새겨져 있다.

가전제품은 그 자체로는 보편자(spirit)에 가깝다. 동일한 공정에서 생산되고, 동일한 기능을 수행하며, 서로 대체 가능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어떤 집 안에서 오랜 시간 사용되면서 특정한 습관, 그리고 특정한 손길을 축적하게 되는 순간, 그것은 개별자(soul)를 획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물리적 변화가 아니라, 인식의 방향이 전도된다는 점이다. 더 이상 사람이 물건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이 사람을 ‘알아보는’ 상태에 이른다.

이 소설 속 가전제품들은 바로 그 지점에 도달해 있다. 그들은 단순히 작동 여부를 보고하지 않는다. “이상 없음”이라는 말은, 여전히 이 집에 속해 있으며, 여전히 이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외침이다. 즉, 기능의 정상성은 관계의 지속성을 의미하는 기호로 전환된다. 고장이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곧 버려지지 않을 가능성을 의미하고, 반대로 말하면 버려지지 않기 위해 ‘이상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 앞에서 정상성을 가장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형성된다.

이 지점에서 동물과의 유비가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길들여진 존재는 더 이상 보편자— 다수 중 하나가 아니다. 특정한 시간과 기억을 공유한 결과,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점유하게 된다. 이 소설의 가전제품 역시 마찬가지다. 동일한 모델의 제품이라도, 그 집의 특정한 인간과 시간을 공유한 순간부터, 그것은 교환 가능한 ‘물건’에서 교환 불가능한 ‘존재’로 변한다.

 

[손을 타면 왜 변하는가]

사람의 손을 탄 것들은 변한다.

오래 앉은 의자는 그 사람의 몸 모양으로 눌린다. 수십 년 쓴 칼은 날이 칼 쓰는 사람의 습관상 특정 방향으로 휜다. 할머니의 찬장 문은 손잡이가 없는 모서리 쪽이 닳아 있다. 매번 같은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누군가의 손이 반복적으로 닿은 자리는 그 손의 흔적을 물리적으로 보존한다.

그렇다, 이것은 물리다. 설명이 가능하고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이유다.

그런데 소설이 말하는 변화는 그것보다 한 층 아래에 있다.

재민의 아버지는 재민이 어릴 때 이렇게 말했다. “이놈이 기술자 눈치 보네.”
기계가 기술자를 알아보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말. 재민은 그 말을 어릴 때 들었고, 따뜻하게 느꼈다. “집에 있는 물건이 집에 있는 사람을 안다는 것이, 이상하게도 좋았다.” 그건 무서운 게 아니었다.

15년의 현장이 지나고, 재민은 90일치 데이터에서 245건 중 0건이라는 숫자를 마주한다. 그리고 100년이 넘는 산업 현장 기록에서 같은 결론을 발견한다. 증기기관 시대부터. 전부 원인 불명으로 끝난 기록들. 기술자가 오면 작동하고, 가면 멈추는 기계들.

어쩌면 증기기관을 넘어 고대부터, 원시시대부터.
기계가 아니었던 것들부터 시작된 무언가.

이것은 물리가 아니다. 혹은, 아직 우리가 이름을 붙이지 못한 물리다.

연금술사들은 그것을 soul이라고 불렀다. 어떤 관계로서의 의미가 어떤 존재에게 새겨지는 것. 설명이 가능한 부분 아래에서 일어나는 과정. 보편자에 개별자가 의미를 축적할 때, 그 보편자 안에 생겨나는 것. 우리가 오랫동안 ‘도깨비’나 ‘요괴’라고 불러왔던 그것.

 

[관계는 존재를 어떻게 재구성하는가]

물건도, 동물도, 사람이 오랫동안 손을 대면 변한다. 왜인가.

아마도, 반복적인 관계는 대상에 흔적을 남기기 때문이다. 물리적인 흔적만이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지금 우리가 설명할 수 없는 방식으로— 그 사람의 습관을, 그 사람의 존재를 내면화하기 때문이다.

30년 된 냉장고가 재민이 무슨 말을 하러 왔는지 아는 것은, 그 냉장고가 30년 동안 이 집 사람들과 함께 존재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전기 신호로 설명할 수 없는 층에, 30년의 관계가 새긴 무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soul이다.

물건은 인간의 손길을 통해 개별화되고, 인간은 물건을 매개로 타자와의 관계를 요청하며, 이 상호작용 속에서 양쪽 모두가 ‘사람처럼’ 변한다

 

[인간화란 무엇인가]

의인화 잘못 쓴 거 아니다. 인간화다.
인간화는 인간의 형태를 갖는 것이 아니다.

냉장고는 말을 못 한다. 표정이 없다. 눈도 없다. 팔도 없다. 형태는 여전히 금속 박스다. 그런데 팬 소리가 숨소리처럼 들리는 순간, 재민은 그 앞에서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인간화는 무언가가 나를 인지한다고 느끼는 순간 일어난다.

이해가 아니다. 여우는 왕자를 이해하지 못했다. 왕자의 언어를, 왕자의 고향 별을, 왕자의 슬픔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왕자가 오는 발소리를 들으면 다른 반응을 보였다. 다른 어떤 발소리와도 구분했다. 인지했다.

30년 된 냉장고도 같다. 이 집 노인의 슬픔을 이해하지 못한다. 교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재민이 입을 열려는 그 순간, 팬 소리가 달라졌다. 그 말이 자신에게 향한다는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 인지했다.

인지가 인간화를 만든다. 내가 여기 있고, 너도 여기 있고, 나는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안다라는 이 연결이 보편자를 개별자로 만든다. 흔한 L사 단문형 냉장고를 ‘이 집’ 냉장고, ‘우리집 냉장고’로 만드는 것이다.

재민의 노트에 “이상 없음”이 쓰이는 것은 그 인지에 대한 응답이다. 재민도 인지했다는 것. 너를 보편자의 범주로 처리하지 않겠다는 것.

 

[수리기사라는 존재]

재민은 이 소설에서 특별한 위치에 있다.

오래된 기계들을 보는 사람. 고장 난 것들을 보는 사람.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보편자로 분류한 것들 — 너무 낡았고, 고칠 수 없고, 교체해야 하는 것들 — 을 살피는 사람이다.

재민이 하는 일은 기술적으로는 점검과 수리다. 하지만 재민은 오래된 기계들의 존재를 개별자로서 인정하는 사람이다.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기종이 아닌 역사로. 이 집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 어떤 계절을 넘겼는지를 물으면서.

연금술에서 soul을 다루는 사람은 그것을 해체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편 안에 새겨진 개별을 읽는 사람이었다. 재민은 그런 사람이다.

그래서 기계들이 재민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아버지 세대부터 그랬다. 단지 수리기사여서가 아니라, 재민과 그의 아버지가 기계들을 개별자로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을 보는 것에게 존재는 응답한다. 그것이 여우의 말이고, 연금술의 언어다.

 

[마치며: 보편자가 특별해질 때]

L사 단문형 냉장고는 어디에나 있다. 같은 모델이 전국의 수천 가정에 있었을 것이다. 대부분은 이미 버려졌다. 이 집 냉장고가 30년을 버텼다면, 그것은 기계적 성능 때문이 아니다. 이 집에서 30년의 시간을 통해 soul을 얻었기 때문이다. 보편자에서 개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왕자의 장미가 수천 송이 장미 중 하나이지만 왕자에게만 유일한 것처럼, 길들여진 여우가 수많은 여우 중 하나이지만 왕자에게만 특별한 것처럼, 이 냉장고는 세상의 모든 L사 단문형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러나 그 집에서, 그 집 사람들에게만 — 그리고 그것을 보러 온 재민에게만 — 다른 존재가 된다.

물건이, 동물이, 뭐든간에 사람의 손을 타면 사람처럼 변하는 것은 그래서이다.

변하는 것은 물건만이 아니다. 그 물건에 손을 댄 사람도 변한다. 왕자가 장미를 길들이면서 장미만이 특별해진 것이 아니라, 왕자도 그 장미만의 왕자가 되었듯이, 30년의 냉장고가 이 집 노인의 것이 된 것처럼, 이 노인도 30년 동안 ‘이 냉장고가 아는 사람’이 되었다.
따라서 “왜 물건이든 동물이든 사람의 손을 타면 사람처럼 변하는가”라는 질문은, 물건이나 동물의 변화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관계가 존재를 어떻게 재구성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읽어야 한다. 이 소설은 그 과정을 지극히 이성적인 주인공 — 그러나 그 소재들과 처지가 비슷한 —  을 통해 드러내보려 했다(사실 정말로 동물을 오래 키우면 사람 말소리와 비슷한 울음소리를 내기 시작하긴 한다. 자는 습관도 주인 닮아간다. 물건이라고 다를까?).

관계는 양방향으로 soul을 새긴다. 내가 언제나 내 소설에 쓰는 이야기는 그것이다. 양방향의 soul은 어떤 관계를 만들어내는가, 보편자는 어떻게 개별자를 인지하고 물들어가는가, 개별자는 어떻게 보편자를 인식하고 어떻게 거리를 유지하고 어떻게 침식되는가.

포지티브라면 로맨스가 된다. 네거티브라면 호러가 된다. 한쪽은 포지티브지만 한쪽은 네거티브라면 스릴러나 짝사랑이야기가 된다. 그 배경을 과학적 논리로 풀면 SF가 되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풀면 판타지가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계가 바로 나에게는 현자의 돌이며 동시에 멘탈연금술의 과정이다. 결말을 완전히 닫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새로운 접점, 새로운 연금술 과정으로 향하는 문을 열어두기 위함이다.

재민이 노트에 ‘이상 없음’을 쓰는 것은 그 soul이 외치는 목소리, “저는 이상 없습니다”를 지우거나 외면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보편자의 언어 — 부품 단종, 수리 불가, 교체 권고 — 로 개별자를 처리하지 않겠다는 결정이다. 설명할 수 없는 팬 소리를 들었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고, 그래서 입을 닫은 것이다.

황금은 황금이다. 돌은 돌이다. 하지만 연금술사에게, 오래 다룬 황금은, 오래 손에 쥐고 있던 돌은, 단순한 황금이 아니며 흔한 돌멩이가 아니다.

냉장고는 냉장고다. 하지만 30년의 손길을 받은 냉장고는, 팬 소리로 숨을 쉰다. 그 냉장고에게 soul을 부여한 사람에게는 그것이 모든 것이다.

“이상 없습니다”라는 문장은 그 자체로 완결된 문장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 “저는 여기 있습니다”와 “나를 버리지 말아주세요”로 이어질 수 있는, 관계의 단절을 거부하고 생존을 갈망하는 최소한의 발화다. 그리고 그 발화를 듣는 인간 역시, 그 문장을 통해 자신의 고립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결국 이 작품에서 인간화란 감정의 투사가 아니라, 관계의 축적이 만들어내는 필연적 결과다. 물건이 사람처럼 변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 들어온 모든 존재가 ‘사람처럼 읽히게 되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노르바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