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락 작가님의 레트로 호러 리뷰

대상작품: <수상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어> 외 3개 작품
큐레이터: 창궁, 2시간 전, 조회 22

천막 너머

 

오늘은 이규락 작가님의 레트로 호러 3부작을 중점으로 리뷰해볼까 합니다. 한 작품씩 리뷰하려고 했었는데, 아무래도 중간에 천막 너머가 리디 우주라이크 소설인 데다가 리뷰하기도 전에 세 작품을 다 읽어버려서 아무래도 하나씩 리뷰하기엔 제가 먼저 감질나서 못해먹겠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에 묶어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스포일러가 가득하니 미리 읽고 오시는 걸 추천합니다ㅎㅎ

 


 

가장 먼저 “수상한 게임을 플레이하고 있어”입니다. 사실 3부작 내의 연관성으로 따지면 본 작품은 프로토타입 쯤 되고, 나머지 천막 너머와 ARS 게임이 1호기, 2호기 쯤 됩니다. 물론 프로토타입이란 의미는 어디까지나 연관성에 빗댄 말이고, 개별 작품 완성도로서 본 작품이 나머지 두 작품에 비해 떨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닙니다.

레드 바스타즈란 기괴하고 잔인한 레트로 게임과 얽힌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잠깐 재미있게 했던 게임을 다시 마주하게 됐을 때, 그것과 엮인 과거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그 과거는 과연 마주할 만한 것이었을까요?

본 작품에서 주요하게 얽히는 키워드는 “죄”입니다. 죄를 저지른 개인이 그 죄를 무마하기 위해 선행을 베푸는 게 아닌, 죄책감을 타인에게 떠넘겨 죄를 죄로 덮는 일을 벌인다면, 그 죗값은 어디로 가는 걸까요?

Take responsibility for your sin

본 작품에서 반복하며 등장하는 이 문구는 읽는 독자에게마저 묻는 듯합니다. 네 죄는 어디로 갔는가? 네가 외면한 죄는 어디에 있는가? 너무 늦지 않게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죄가 스스로 찾아왔을 땐, 본 작품의 결말을 떠올리면 될 테니까요.

한편으로는 과거에 대한 왜곡된 기억이 차츰차츰 보정을 잃어가며 마침내 죄를 마주함으로써 왜곡이 붕괴되고 진실이 떠오르는 구조는 다른 작가님의 작품도 떠올랐습니다.

바로 이 작품이죠. 둘 모두 본인이 저지른 죄로부터 도망쳤고, 그 결과가 과거에 대한 왜곡이란 점, 왜곡을 유지할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다는 점 등이 주요한 공통점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주황색은 현실을 내던져서라도 왜곡을 유지하고자 한 것에 반해 본 작품에선 현실이 왜곡을 부정하고 마침내 심판을 가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피해자가 살아있느냐 마느냐로 갈리는 문제기도 하겠네요. 하하. 하지만 이규락 작가님의 레트로 호러를 다 읽으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피해자가 죽었다고 해서 방심할 순 없을 겁니다.

본 작품의 묘미는 레드 바스타즈라는 게임에 대한 묘사입니다. 패미컴을 플레이하신 분들이라면 익숙하게 여기실 그래픽 묘사들 속에서 리얼하게 구현된 게임은 실제로 플레이하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싶을 정도입니다.(저는 패미컴은 만져본 적 없지만 패미컴 게임들의 그래픽은 어느 정도 접해서 아는 바가 있으니까요.)

 

천막 너머

천막 너머는 브릿G 작품이 아니라 리디 우주라이크로 나온 천막 너머는 천막 공연이 소재로 작동합니다. 또한 천막 너머도 수상한 게임과 같이 주인공의 과거에 겪었던 일이 현재에 다시 재현되고, 과거의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 주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ARS 게임 역시 과거에 유행했던 ARS 게임을 다시 플레이하면서 끝을 본다는 점에서 수상한 게임과 맥락을 공유하는 점이 있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두 작품은 전작과 달리 작품 내적으로 완결되는 게 아닌, 좀 더 보편적인 무언가로 확장하려고 한다는 점이죠. 그리고 수상한 게임보다는 두 작품이 서로 구조와 주제의식 측면에서 더 유사하고 밀접한 연관성을 맺기도 합니다.(나쁘게 말하면 자기복제이긴 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수상한 게임이나 천막 너머, 그리고 ARS의 주인공은 과거에 약자, 소외자, 비주류, 하위 계층에 속했습니다. 그리고 현재엔 거기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 ‘평범’이랄지, ‘일반’의 삶을 취득한 것처럼 언뜻 비춰집니다.

그리고 주인공에게 있어 이러한 과거에 어떠한 추억이 존재하는데(패미컴, 천막 공연, ARS 게임), 그 추억과 연관된 인물이 현재에 다시 재등장하며 과거에 얽힌 진실이 밝혀집니다. 그리고 여기서 수상한 게임과 나머지 두 작품의 차이점이 발생합니다.

수상한 게임은 작품 내적으로 닫혀 있습니다. 친구를 배신했고, 그 죄책감 속에 파묻혀 기억을 왜곡했다가, 게임 내용처럼 어설픈 속죄 의식을 치르려 했고, 배신당했던 친구가 복수하러 돌아옴으로써 심판 받게 됩니다. 물론 그 끝이 묘사된 바는 아니지만, 쉬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닫힌 결말입니다.

따라서 수상한 게임의 주인공에게 이입할 순 있지만, 그의 서사가 닫힐 때 독자 역시 빠져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작품은 끝이 났고, 독자인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으니까요. 그러니 수상한 게임은 확장해서 해석할 순 있어도, 확장해서 받아들이긴 어렵습니다. 그걸 수용한다는 건 그 끝도 함께 수용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이니까요.(종교인이 아니고서야 자신이 과거에 그런 무시무시한 죄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심판을 필연적으로 받게 되리란 걸 현대인이 쉽게 “자기 이야기”로 수용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천막 너머와 ARS 게임은요? 그렇지 않습니다. 두 작품 모두 작품 끝에 다다랐으나 서사가 완전히 닫히지 않았습니다. 작품을 읽어나가다 보면 익히 A or B 의 결말을 예상하게 되지만, 정작 작품이 내놓는 것은 둘 모두 아닌 더 절망스러운 C라는 트위스트입니다.(구체적으로 ABC가 무얼 가리키는지는 곧 다루겠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결말은 서사를 현재진행형으로 남겨둠으로써 확장 가능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은 곧 수상한 게임과 달리 독자가 확장해서 받아들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를 위해 천막 너머나 ARS 게임이나 주인공의 과거가 주목하는 초점을 달리 잡습니다. 거부감을 느낄 죄의식보다는 동질감을 느낄 다른 요소들을 통해서요.

선망, 열등감, 부러움, 부끄러움, 잘남, 못남, 주류, 비주류의 대조군 속에서 주인공은 늘 못난이에 속합니다. 주인공은 그렇기에 변화를 갈망하고, 변화하고자 합니다.(그러나 이런 갈망과 소망이 꼭 긍정적인 형태의 노력으로만 이뤄지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마치 이뤄주는 듯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작품들 장르가 호러란 점을 잊으면 안 되겠죠. 그 노력들은 좌절됩니다.

좌절도 보통 좌절이 아니라, 천막 너머나 ARS 게임이나 모두 ‘구제불능’의 낙인을 찍는 좌절을 선사합니다. 돌이킬 수 없는 변화(A)나 현재 상태의 실존적 수용(B)이 아닌, “뭘 해도 안 될 존재”라는 낙인(C)이란 결말은 분명 호러이기에 더욱 살아나는 좌절입니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그런 좌절을 ‘호러로서’ 전달하기에 두 작품이 확장되는 것이기도 하죠. 호러는 일어나지 않는 공포에 대한 간접 체험인 만큼, 구제불능의 낙인을 “일어나지 않는 공포”로서 간접 체험하는 독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곧 주인공에 대한 연민과 동정으로 이어지게 되고, 더 나아가 “이들이 변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라는 질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수상한 게임 역시 이런 식의 독해가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죄’라는 키워드가 가진 중력이 워낙 강한 탓에 두 작품처럼 확장성 있는 독해가 쉬운 것은 아닙니다. 무리해서 확장하면 조금 억지스럽다고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또한 두 작품 모두 자기 존재를 타인(인형의 혼, ‘우리’)에게 내어줌으로써 변화의 기회를 쟁취한단 점에서 바디호러스러운 면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바디호러마저도 구제불능의 낙인을 찍기 위한 빌드업에 불과하니, 두 작품이 주는 결말의 좌절감은 상당히 묵직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주제의식에 대한 얘기는 잘 안 하는 편인 만큼 ‘구제불능이 정녕 아니라면 이러한 주인공들이 변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이것만큼은 독자들이 각자 생각해볼 만한 것이겠고요.

개인적으로는 천막 너머보다는 ARS 게임이 좀 더 관전 포인트가 많았습니다. 천막 너머에서는 인형 공연과 마지막 진상이 밝혀지는 순간 정도가 인상에 남았다면, ARS 게임은 가능할 리 없는 ARS 게임을 아주 구체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독자를 순식간에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었거든요. 그리고 마지막에 나타난 고딕 건물에서의 일 역시 인상적이었고요.

 

레트로 호러만이 아니라 코즈믹호러도 잠깐 다루자면(이미 리뷰로 다루긴 했지만), 아기황제 역시 과거가 주요하게 다뤄진다고 볼 수 있겠네요. 설영촌의 원한은 과거에서 비롯되었고, 과거로부터 비롯된 숙원을 이뤄줄 아기황제의 강림을 간절히 바랐던 것이니까요.

작중 배경도 조선시대니까 에이션트 레트로(?)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농담입니다.

 

이상으로 이규락 작가님 작품을 4편이나 빠르게 읽게 됐습니다. 과거가 주요한 키워드로서 다뤄지고, 과거를 다루는 방식에서 생각해볼 거리가 참 많았습니다. 재미있게 읽었던 만큼 기회가 되면 작가님의 호러가 아닌 다른 작품들도 접해볼까 합니다.

좋은 작품들이니 여러분들도 기꺼이 마일리지와 골드를 써서 일독하는 걸 추천합니다. 천막 너머는 리디 셀렉트에서도 읽을 수 있으니 부담없이 읽으실 수 있고요ㅎㅎ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 나올 호러 작품들도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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