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은 높은 하늘 아래 너른 들판에서 황금빛 곡식이 무르익는 추수철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내 변덕스런 날씨와 싸워가며 가꾼 결실을 드디어 수확하는 계절이지요. 장르 소설에서 ‘수확’이 연결되는 지점은 무얼까 고민해 봤어요. 소년 만화처럼 주인공이 점차 성장해서 목표를 쟁취하는 스토리? 글 초반에 뿌린 떡밥을 후반부에 회수하는 것?
호러 소설의 비중이 높은 편인 브릿G에서는 빨갛게 익은 사과를 똑 똑 따는 것처럼 뎅겅 뎅겅 머리를 자르는 장면을 수확의 느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머리와 몸이 분리되는 소설들을 선물세트로 모았습니다. 감사한 분에게 마음을 전하세요.
잘린 머리의 쓸모 by 위래
8매 분량 엽편이긴 하지만 주인공은 시작하자마자 사고로 머리가 잘려 나갑니다. 그런데 어째 그 사실이 별로 대수롭지 않네요. 애초에 머리를 달고 다니는 게 젊은 날의 고집일 뿐일까요?
머리 달린 여자 by
머리 없는 시체가 발견된 사건으로 시작한 소설은 어느 날부터 사람들의 머리가 안 보이게 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인터넷 게시판의 활용, 화자의 교체 등으로 독자에게 부분적인 정보를 제공해서 스토리를 쫓아가는 재미도 있어요. 나 보다 더 나쁜 놈이 있지 않느냐고, 나 정도면 괜찮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남자의 모습이 역겹습니다.
수상한 한의원 by 배명은
말이 필요 없는 한방 호러 픽쳐 쇼쇼쇼! 귀신 고치는 한의사 이야기예요. 우당탕탕 소동극 끝에 코끝 찡한 감동과 함께 주인공 승범의 인간적인 성장을 보여주는가 싶더니 30화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몸과 머리가 분리된 귀신이 환자로 찾아왔는데, 이거 안 맞아요!?
머리 by 00
단순한 스토리와 삽입된 일러스트를 통해 소름 끼치는 공포로 후려 갈기는 엽편입니다.
앞집의 개 by 엄성용
슬금슬금 쾅! 호러 장인 엄성용 작가님의 단편이에요. 갓난 아기가 있어서 조심스러운 나와 달리 동물 애호가인 아내는 강아지를 기르자고 조릅니다. 철 없게 느껴져 질책성 대답으로 대화를 끝냈지만 자꾸만 미안한 기분이 들던 중에 현관에서 앞집 강아지를 만나요. 귀여운 강아지를 우선 집에 들이고 다음날 앞집의 우유 투입구를 열어 봤더니…
머리 사냥꾼 by SF환상문학
광전자 두뇌를 이용해 사람의 기억을 칩에 저장해서 의체에 연결할 수 있는 테크놀로지가 발달한 미래의 서울. 13건째 연쇄 살인을 저지르고 매번 시체의 머리를 잘라가는 머리 사냥꾼이 있어요. 1년전 딸을 잃은 주인공에게 이 악마가 연락을 해서 딸의 칩과 빈 의체를 교환하자고 제안을 합니다. 긴장감을 유지하며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스토리가 압권이에요.
잘린 머리들 by 바젤호러스토리
성벽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두 나라의 이야기를 담은 7매 분량 엽편이에요. 성을 포위하고 수비측을 굶겨 죽이려던 공격측에게 날아든 게 화살만이 아니었으니…
위 소설들을 모두 읽으셨다면, 이제 영화 <슬리피 할로우>를 보시는 건 어떨까요? 주연 배우가 가정 폭력범인 점이 기분 나쁘긴 하지만, 개봉 당시 광고 카피가 “Heads Will Roll” 이었고 머리 없는 기사가 말을 타고 다니는 영화랍니다. 이게 올라간 스트리밍 서비스가 있나 모르겠네요. 아, 저희 집에 비디오 테이프가 있긴 한데. 보러 오실래요? 영화가 끝나고 나가실 땐 머리를 두고 가셔야 할 수도 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