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첫눈이 고양이의 발처럼 내리는 날이었다. 다다다다 내려오는 냥펀치를 두들겨 맞으며 몸부림치던 나는 어떤 카페로 황급히 피신했고, 아늑한 공간 속에서 근엄하게 자리 잡은 메뉴판과의 치열한 눈싸움 끝에 바닐라라떼를 주문했다. 여러분은 상상할 수 없겠지만, 굉장히 힘든 싸움이었다는 걸 강조해두고 싶다.
지친 몸을 이끌고 푹신한 쿠션이 있는 붙박이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은 모서리가 둥글었는데, 카페의 차분한 분위기와 어울렸다. 금방 물청소를 해놓은 듯한 바닥은 당장이라도 노란 리본을 달아야만 할 것 같은 떡갈나무 색이었다. 그 바닥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벽은 새하얀 색이었는데, 빤히 보다보면 착시가 일어날 지경일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요약하자면, 조만간 나와 입맞춤할 바닐라라떼 또한 새하얀 거품이 매력적일 거라는 말이다.
그렇게 카페를 살피던 내 곁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매서운 냥펀치를 위해 손을 다듬는 중]
나는 흠칫 놀랐다. 이 카페에 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었지만, 녀석은 굉장히 심드렁한 표정으로 내 옆에 앉아 냥펀치를 장전하는 듯했다. 이윽고 테이블 위에 있던 알림벨이 목숨을 보전하고 싶으면 주의하라는 듯 빨간빛을 뿜으며 요동쳤다.
음료를 가지러 가기 위해 엉덩이를 들었다. 그 순간, 열심히 손을 핥던 고양이가 고개를 휙 들어 나를 노려봤다.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이미 밖에서 피할 수 없는 눈을 맞고 왔기에, 더 이상의 냥펀치는 이제 정중히 거절하고 싶은 것이다.
[피하는 것 같은데 맞고 있다?]
위와 같은 불상사를 피하기 위해, 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음료를 가져오면서도 그 고양이에게 눈을 떼지 못했다. 언제 냥펀치가 날아올지 모르는데 한눈을 팔 수 있겠는가? 하지만 다행히 녀석은 다른 테이블 쪽으로 어슬렁거리며 멀어졌고, 나는 깊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음료를 보는 순간, 뭔가 이상했다. 내가 생각했던 바닐라라떼가 아니었다. 나는 분명 새하얀 거품이 일품인 라떼를 생각했는데, 이 녀석은 그것과는 거리가 먼 생김새였다. 하얀 거품 주위로 갈색과 검정색 중간 사이쯤의 색이 자작자작 머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이건 초코라떼가 분명했다.
[뜻밖의 초코라떼]
그렇다. 그야말로 뜻밖의 초코라떼였다. 나는 고민했다. 지금 다시 엉덩이를 들어 바닐라라떼로 바꿔오면, 고양이는 다시 나를 주시할 것이고, 자칫 잘못하면 심기가 불편해진 녀석이 나에게 달려들어 냥펀치를 날려댈지도 모른다.
결국 그냥 초코라떼를 먹기로 스스로와 합의한 나는 ‘디저트는 눈으로 먼저 먹는다.’라는 디저트 헌법 2조 3항에 의거, 초코라떼를 면밀히 관찰했다. (참고로 1조 1항은 ‘디저트를 위한 배는 따로 남겨둔다.’이다.)
정반대의 색으로 거품을 휘감는, 차마 녹지 못한 초콜릿들이 끈적끈적해 보였다. 이 녀석을 마시면 아마 걸쭉한 목넘김이 예술일 것이다. 그렇다. 자세히 보니 이 녀석, 굉장히 맛있어 보인다!
뜻밖의 초코라떼가 맛있게 생긴 카페라! 이토록 멋진 이야기를 가진 카페가 또 있을까? 정말 내 스타일이 아닐 수가 없다. 자기합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니까……
다시 노트북으로 눈을 돌렸다. 그런데 브릿G 화면을 쳐다봄과 동시에 문득 한 가지 궁금증을 가졌다.
‘브릿G에는 어떤 카페들이 있을까? 그리고 그 카페들은 어떤 이야기를 갖고 있을까?’
그렇게 나는 바닐라라떼가 아닌 초코라떼와 함께 브릿G에 있는 카페들을 찾아다녔다. 과연 브릿G에서도 내 스타일의 카페를 찾을 수 있을까? 초코라떼의 생김새가 큐레이션을 쓰게끔 한 그 원동력은 지금도 미스터리하지만, 분명한 사실 하나가 있다면 초코라떼는 정말 맛있게 생겼다는 것이다.
미리 고백하자면, 아차 싶었다. 우선 브릿G에는 생각 외로 카페가 굉장히 많았으며(방문한 곳만 스물아홉 곳이었다.), 카페를 모두 소개하기엔 내 능력이 너무나 빈약하다는 점이었다. 너무 슬픈 나머지, 눈에서 초코라떼가 흐를 것만 같다.
이제부터 일곱 곳의 카페를 소개하려 한다. 왜 하필 일곱 곳이냐면…… 숫자 7을 좋아하고, <7맛 7작>을 즐겨 읽었다는 이유를 들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초코라떼가 맛있게 생겼기 때문으로 하자.
*본 큐레이션은 카페 선정과 관련하여 일체 금품을 요구하거나 받은 사실이 없으며, 연재물을 제외한 단편들로만 구성했음을 알립니다.
1.
우선 첫 번째로 들린 카페는 <카페인 중독자 구라파 씨>
제목부터 심상치 않다. 구라파. 무슨 뜻인지 알고 있는가? 만약 ‘구라를 잘 치는 일당’을 떠올렸다면, 혹은 포켓몬스터의 ‘구라파덕’을 떠올렸다면, 나는 기꺼이 당신에게 박수를 보낼 용의가 있다.
이곳은 의외로 초가을이 어울리는 곳이다. 바람이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햇볕이 공존하는 그런 초가을. 그런데 이곳은 소개팅이 한창이었다. 인기 있는 웹소설 작가 구라파 씨, 그리고 구라파 씨의 오랜 팬! 과연 소개팅은 어떤 결말을 맞게 될까?
이 카페를 방문하고 나면, 당신은 아포가토의 뜻을 궁금해 할 것이다. 그리고 걷고 싶을 것이다. 없던 달달함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감과 함께!
2.
두 번째 카페는 <텀블러와 인류애>
「세척하지 않은 텀블러에 음료를 담아 드리지 않아요.」라는 푯말이 인상적이다. 이 푯말에는 상당히 의미 있는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나는 이 이야기를 보고나서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에 대해 고찰했다.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는 이유가 만약 환경보호를 하고 있다는 점이 아닌, 남자들의 흔한 착각이라면, 그것은 일회용 컵만큼 인류에게 피해를 주는 것. 즉, 환경보호에도 누가 된다는 사실!
13매의 아담한 크기이지만, 이토록 커다란 메시지를 지닌 카페가 또 있을까? 깨끗하게 세척한 텀블러를 가지고 방문해보는 걸 권한다.
진정한 환경보호를 위해선 인류애를 관리하는 것이 우선!
3.
세 번째 카페는 <3지구 사피엔스 카페>
혹시 제목에 숫자 3이 들어가서 세 번째 카페로 선정했다고 생각하는가?
맞다.
3지구 구석에 위치한 이 카페는 분위기가 사뭇 밝진 않았다. 한 겨울에 팥빙수를 제조해야할 카페 알바생을 보면, 그녀의 노고가 절로 느껴져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정도. 그러나 이야기를 듣고 나면, 장담컨대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할 것이다. 급이 높건 낮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에!
이곳에서 맛볼 ‘팥을 뺀 팥빙수’는 의외로 추운 겨울에 제격일 것이다. 자, 팥빙수가 녹기 전에 이도희 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참, 테이블 위에 누군가가 두고 간 지갑은 괜히 열어 보지 말도록!
4.
네 번째 카페는 <낙서>
카페 방문의 목적 중 하나는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함일 것이다. 그 목적에 제격인 카페였다. 커튼이 있는 창가 쪽 1평 남짓의 공간. 그곳에서 반짝이는 햇빛을 받으며 취미나 과제에 집중. 게다가 그 누구도 터치하지 않는다!
심심할 것 같은가? 그렇지 않다. 벽 쪽에는 낙서들이 가득해서 지루하지 않다. 만약 내게 펜이 있었다면, 「여긴 초코라떼가 맛있게 생겼어요!」라고 썼을지도 모르겠다.
다소 정돈되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방문해볼만한 카페다. 낙서하기에 적절한 펜을 준비해올 것!
5.
다섯 번째 카페만큼 달콤한 카페는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름마저 달콤한 <케이크 원정대>
제목답게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케이크가 보인다. 수많은 케이크가 방문자를 반기는 곳. 무스, 타르트, 과일 케이크…… 게다가 과일은 제철과일에 생과일만 사용했다! 이토록 멋진 곳이 또 있을까! 뿐만 아니다. 음료도 다양하다. 얼그레이 홍차, 웨딩 임페리얼, 카페라떼……
내가 메뉴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어떤 세 명의 손님들이 모든 종류 하나 씩 주문했다. 그리고 그들은 주문한 케이크와 음료들을 맛보며 평가하기 시작했다! 그들의 진중하면서도 달콤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지 않은가?
잠 못 이루는 새벽에는 들리지 말 것! 그들의 평가를 듣다보면 배가 절로 고파질 테니까!
6.
여섯 번째 카페는 <아메리카노 랩소디>
방문한 카페들 중 제일 흥미진진한 카페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글이 써지지 않아 머리를 싸매는 주인공을 보며 괜히 동질감에 젖다보니, 뜬금없이 저쪽 어딘가에서 달달한 남녀의 고백 현장이 보인다. 그 현장을 보던 나는 흐뭇함에 당장 기립 박수를 치고 싶은 욕망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 감동적인 순간이 얼마 지나지도 않아 난데없이 슈트케이스를 휘두르는 액션이 일어났다! 그러다가 갑자기 어떤 중년 여성이 조금 전 커플에게 다가가 뭔가를 말하더니, 이윽고 감동을 파괴시키는 상황이 펼쳐졌다. 이토록 긴박한 이야기를 가진 카페라니!
정신없는 와중에 또렷이 들려온 말은 3차 세계 대전은 이미 시작됐다는 말이었다. 충격적이지 않은가? 존을 지키기 위해 나타난 터미네이터마저 식겁하고 미래로 돌아갈 것만 같다.
하지만 이곳에선 메시지를 해독하려하지 말자. 그저 멍 때린 채 아메리카노의 광시곡처럼 자유스러운 악장을 느껴볼 것!
7.
마지막으로 소개할 카페는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을 카페다. 바로 <안녕, 아킬레우스>
과연 이름난 카페는 다르다. 방문자들이 북적북적했고, 유명 리뷰어들이 이미 왔다 갔는지, 벽 쪽에 리뷰들이 가득 붙어있었다. 하나하나 읽어보는 것도 큰 재미 중 하나이리라.
아무튼 이곳의 이야기는 한번만 방문해서 듣기엔 부족하다. 두 번 세 번 방문해보는 걸 추천한다. 그만큼 매력 넘치는 카페인 것이다. 빠져드는 이야기 속에서 당신은 욕망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혹시 199매라는 거대함이 방문을 주저하게 하는가? 걱정하지 말라! 이곳에 들어오면 자신도 모르게 모든 곳을 둘러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곳에선 서두를 필요가 없다. 어차피 내일은 또 하나의 오늘이므로!
—
나의 브릿G 카페 기행은 여기까지다. 스물아홉 곳의 카페를 모두 소개하지 못해 아쉬운 감이 없잖아 있지만, 브릿G 카페들이 갖고 있는 멋진 이야기들에 즐거웠음을 고백한다.
눈이 내리는 겨울. 미세먼지 때문에 매우 빡치지만, 차분하게 카페에 들러 브릿G의 카페들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여러분도 뜻밖의 맛에 만족할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그렇게 단문응원을 남기다보면 코타츠를 받게 될지도!)
그렇다. 나는 브릿G 속의 카페들을 찾아 떠난 여정에 만족했다.
그리고, 뜻밖의 초코라떼까지!
-끝-
~여기 까지 읽어준 당신을 위한 보너스~ [카페 사장님의 고양이 낫토.] [헤이.] [퍽.] -진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