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개…두 고개…스무 고개를 넘어간다

대상작품: <악마의 장난> 외 4개 작품
큐레이터: 한켠, 18년 9월, 조회 203

매년 명절마다 궁금해집니다왜 평소엔 관심 1도 없던 친척들이 명절만 되면 갑자기 애정과 염려가 생겨서폭풍질문을 하시는지공부 잘 하니대학 붙었니어디 취직했니, 너는 뭐 하고 살 거니언제 결혼하니언제 애 낳을 거니하나는 외롭다는데 언제 둘째 낳을 거니이럴 때는 부엌칼이라도 들이대며 큰아버지는 평소에 조카에게 용돈을 주지 않았죠자 이제 게임을 시작할까요라고 하고 싶지만대신 조용히 구석에 숨어서 딱 스무 개만 물어보는’ 스무고개 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읽어 볼까요?

 

여친도 없고 공강시간에 비디오룸카페(DVD방을 떠올리면 될 듯 합니다.)에서 스릴러영화를 보는 건전한 남대생에게 닥친 불운! 좁고 밀폐된 룸 안에서 정말로 영화만 보고 있었을 뿐인데 갑자기 빨간 등산점퍼입은 패션 테러리스트…아니 살인마가 권총을 들이대며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합니다.산장 안에서 총성이 울렸는데, 한 남자는 죽어 있고, 죽은 남자 옆에는 총이 있고, 그 옆엔 빨간 등산점퍼 입은 남자가 서 있는데, 스무고개 안에 등산점퍼남의 살인을 증명하라는.

스무고개가 진행될수록, 남은 질문이 하나하나 줄어들때마다 심장이 쫄깃해 집니다. 고개는 점점 높아지고 긴장이 고조되고 숨이 가빠집니다. 두 명의 인물은 좁은 공간 안에서 한정된 소품을 영리하게 이용하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가 마지막 반전에서 작품 전체를 확 뒤집지요. 독자는 마치 도끼로 찍힌 듯 한 충격을 받게 됩니다. 작가님 특유의 외국 고딕소설을 번역한 듯한 문체도 진술서 형식과 묘하게 어울리는 매력을 발산합니다. 영화로 치면 폰부스+친절한 금자씨+악마를 보았다 가 될까요? 단편으로는 다소 긴, 200매가 넘는 분량인데도 ‘총 맞은 것처럼’ 강렬한 작품입니다.

한평생 성실하게 일해서 맘에 쏙 드는 중고차를 저렴하게 구입한 택시기사. 비가 억수로 오는 날, 오늘은 손님없이 공치는 날인가 했는데, 마침 여자손님을 태우게 됩니다. 어쩐지 운수가 좋더라니. 여자손님은 라디오를 틀지 말라며 점점 기사의 신경을 긁기 시작하더니 사시미칼을 들이대며 옆자리에 둔 봉지의 내용물을 스무고개 안에 알아내라고 합니다.  과연 손님의 정체는, 기사의 과거는 어땠을까요?

기사가 어떤 사람일 지, 승객이 선인일지 악인일지 알 수 없다는 공포를 소재로 한 ‘스무고개’처럼 고속버스에서 누가 내 옆자리에 앉을 지 알 수 없다는 공포를 소재로 한 ‘고속버스’도 읽어부세요. 작가님은 이외에 ‘지하철’도 쓰셨는데, KTX나 비행기를 소재로 한 ‘교통호러’ 연작을 써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PC통신 시절을 기억하십니까…영화퀴즈라던가…각종 퀴즈방이 훈훈했던…그 ‘좋았던 시절’에 스무고개 퀴즈방에서 즐거운 추억을 쌓았던…그러나 지금은 반백수인 이들이 다시 뭉쳤습니다. 자기 핸드폰으로 어떤여자를 협박하는 메시지가 계속 온다는 ‘로매’를 따라 오지랖 넓게도 모르는 여자를 도와주려고 했는데…여자는 시체가 되어 있고, 로매마저 행방불명. ‘나’는 그 시절 여섯고개를 넘기지 않고 정답을 ‘클리어’하던 ‘여고 형’에게 도움을 요청하는데…

십 년 전 홀연히 사라졌던 여고 형의 비밀은 무엇이었을까요. 스무고개로 갈고 닦은, ‘아직 죽지 않았어’ 란 응원이 절로 나오는 이들의 청출어람 추리능력으로 여고 형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을까요. 사실 스무고개보다는  ‘3각 신문’ 게임이 더 재미있어 보이는군요 ㅎㅎㅎ

친척어른들이 바라는 정답은 좋은 대학 나와서 이름 들어본 대기업이나 공무원으로 취직해서 월급 따박따박 잘 받고,결혼해서 애 둘 낳고아파트도 사고부모님께 효도하는데내 자식보다는 못난 조카겠지만 내 인생인데 친척 어른들의 정답에 맞춰 살 필요 있나요그러니 만약 올 추석 때 친척들이 질문을 하면 “(영혼없이몰라요” “모르겠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내일 일도 모르는데 미래를 어떻게 알겠어요로만 대답해 볼까요…(“걱정할 거면 돈으로 주세요라고 사이다 답변을 하면 현실에선혼나니까요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