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로맨스] 다이아몬드 채굴 큐레이션

대상작품: <두사람 들> 외 6개 작품
큐레이터: 은율, 18년 6월, 조회 57

안녕하세요, 은율/모로입니다. (닉네임을 통일하고 싶은데 귀찮네요 T_T)

리뷰어 작품 큐레이션 공간이 생긴 기념으로, 예전 활동 초기에 했던 로맨스 큐레이션을 가져왔어요.

그동안 쌓인 구독글들을 더 추가하고도 싶었는데, 장르가 통일되지 않아 보류하고 예전 글을 그대로 붙입니다.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지고 싶은 분들은 마음껏 누려주세요.

 

(+이 글의 제목이 ‘다이아몬드 채굴’인 건,

‘일하기 싫은 날 장르: 로맨스/랜덤을 찍어놓고 목록들을 3p까지 쭉 읽은 후

작성한 큐레이션이기 때문이라는 ^^ 후일담이 있네요)

 

 

제 주관적인 취향을 100% 기준으로…

발굴한 빛나는 원석, 다양한 매력과 장점을 지닌 글들을 공유합니다!

 

 

1. 

“철중아.”
“응.”
“농담해줘.”

 

전쟁과 피폭 속, 사람들을 묻어주려 여행을 떠났다가 이미 무덤이 된 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지는 한나, 그 집에 살았던 수희와 철중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글을 읽는 내내 대화는 정말 일상적이고 따뜻한데도, 자꾸 쓸쓸한 빗소리가 내리는 것 같은 작품이에요. 연재작과 연결되는 내용이라는데, 장편글은 아직 읽지 않아 인물 설정을 다 파악하지 못했지만, 스산하고 먹먹한 정서는 분명히 전달된답니다.

 

오래전, 전쟁이 시작될 때쯤 그는 도시를 떠났다. 전쟁을 멈추기 위해 싸우러 간다고 말했다. 싸움을 멈추러 싸우러 가는 아이러니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했지만, 불합리로부터 싸우는 것을 멈춘다면 인간다움을 잃는다고 믿는 그를, 나 역시 믿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응원이었다. 자정작용조차 멈춰버릴 정도로 망가진 세상에서 그는 여전히 싸우고 있을까. 아니면 어딘가에서 무덤없이 썩어가고 있을까.

 

 

 

2. 

“지기(스펜서의 집에는 지기라고 불리는 늙고 뚱뚱한 밤색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다.)에 대해 생각해 보렴, 스칼렛. 넌 지기가 털이 새카맣고 눈이 노란 고양이가 되어도 사랑할 수 있니? 살이 홀쭉하게 빠져서는, 수다스러운 고양이가 되어버린다면 말이야.”

“만약에 배에 있는 나비 모양 왕점이 계속 남아 있다면요. 그러면 나는 지기가 어떤 모습이어도 영원히 사랑할 거에요.”

나는 그 꼬마의 현명한 대답에 웃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지혜를 찾을 줄 알았다.

 

제가 이 작품을 읽으면서 세 가지 생각을 했어요. 1)와 세계관이 어쩜 이렇지? 2)한국인이 쓴 작품 맞나? (그만큼 이국에 와 있는 느낌이 생생하게 전달돼요) 3)이거 왜 아직 출판 안됐지?

백문이 불여일견인 소설이니, 저는 별점 열개도 모자르다는 말만 드릴게요. 로맨스 뿐 아니라 성장/정체성/인생등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 멋진 작품입니다. 특히 제가 너무나 사랑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도 가득하여 읽는 시간이 내내 꿈결 같았네요.

+) 작가님의 신작 <늑대소년, 여기 잠들다>가 로맨스 글이네요! 보송보송한 하이틴 로맨스일 것 같아요. :)

 

매일 밤 나는 시간을 거슬러 다시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고자 했다. 나를 마음으로 낳아주신 부모님을, 다른 듯 똑같았던 두 친구를, 나를 울고 웃게 만들었던 풋내 나는 사랑을, 두려움이란 일절 없던 철학가이자 모험가였던 사내를, 그리고 나의 애달픈 향수를 쉬이 봄볕으로 녹여내던 브리아나를. 나는 선장이 따르던 샴페인의 달콤함이 혀끝에 아릿하게 맴도는 것을 느꼈다. 한 때, 나는 세상을 여행하고자 호기롭게 집을 떠났던 서른의 사내였지만, 이제는 다시금 그 지친 발걸음을 옮겨 고향으로 돌아가려 하는 어린 소년이었다.

 

 

3.

거기에는 가정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잊혀지지 않는 사랑 때문에 많은 사람을 상처받게 한 자신에 대한 죄책감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빠는 원래 이 수첩을 누구에게도 보여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쓰러지지만 않았다면 정말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안개님의 <두사람 들>에선 내내 빗소리가 들렸다면, 시엘의꿈님의 <수선화 향기>에서는 내내 청초하고 아련한 수선화 향이 정말로 풍기는 듯했어요. 감정을 일일히 설명하지 않아도 각 인물들의 입지와 입장이 이해되는. 그래서 어느 누구도 비난할 수 없고 원망할 수 없네요. <펀 홈fun home>이란 그래픽 노블에서도 비슷한 구도의 아버지와 딸 이야기가 나오는데 서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감이 수선화 향기에서도 연상되었습니다. 파란 펜으로 적힌 수선화 일기장, 이라는 오브제가 마음에 들어요.

 

 

4.

해리는 나를 따라 다시 하숙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대문 앞에서 투명망토를 뒤집어 쓰기 전 해리가 잠시 고민하더니 불쑥 얼굴을 들이댔습니다.

“우리 함께 내선일체를 이룩해 보지 않을래?”

 

출퇴근 길에 읽었다가 상상력에 기분이 정말 유쾌해지고 몇 번이나 웃었던 작품이에요. 그렇다고 소재나 주제가 결코 가볍지도 않은데, 패러디를 실제 사건들과 이렇게 엮을 수 있는 구성 능력과 대사의 센스에 감탄했습니다. 특히 유머러스함이 담뿍 담긴, 경성이라는 배경을 영국의 모 소설과 버무려 구현한 대사들 하나하나가 일품이에요. 로맨스적 연출도 딱 적절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을 반영해 울컥하는 부분도 있네요. 작가분이 쓴 글로 희극 무대나 뮤지컬이 있다면 만사 제치고 보러 가고 싶어요.

 

“넌 버터맥주 맛을 상상할 수 있어?”
“그게 뭔데…?”
“경험하지 않은 건 상상할 수도 없어. 난 삼일 만세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고, 민족대표 33인이라는 사람들도 임시정부도 선거로 뽑아 본 적이 없어. 독립하면, 그 다음엔 뭐가 있지? 아무도 모르잖아. 국민을 지켜주지 못한 국가가 해방되면 바뀔 거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다시는 국가가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기만하지 않을거라고 희망을 가져도 되냐고.”

 

 

5.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음…… 야, 은행 창구에서 직원이 친절하게 해 준다고 그게 관심 있는 거냐? 그냥 그케 웃으면서 응대하는 게 그 사람들 일이니까 그렇게 하는거지? 서비스 직종은 다 그래. 내가 요주의 손님이니까 그냥 준 거야. 사실 하나도 안 먹은 음료 집에 갈 때 그대로 다 버리고 가는 거 들킨 적 한 번 있어……그래서 그런 거라니까?

 

아유…너무…귀여워요….이런 앓이가 절로 나오는 소설입니다. 개인적으로 카페 종업원분을 좋아해 본 기억이 있어서 그런가, 주인공의 고민이 너무 와닿기도 했구요. 철벽녀로 추정되는 주인공의 독백이나 에이, 아닐거야, 자의식 과잉일거야, 하는 면들을 볼 땐 고구마 먹는 주변 친구들에게 이입해서 그린라이트야!를 외치게도 됩니다. 둘이 이어지는 과정을 더 보고 싶었는데, 일단은 엔딩이 달달하므로 만족합니다.

 

여전히 너는 처음 데이트하던 그 날의 표정으로, 내가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본다. 내가 그어 둔 여러 개의 선을 하나하나 천천히 넘어 내게로 온 너의 눈동자 속에서, 나는 오늘도 이렇게나 예쁘다. 사랑 받고 있으니까. 사랑 하고 있으니까.

 

 

6.

어떻게 하면 타인을 그런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걸까. 그런 언어로 마땅히 표현되어야만 할 사람이란 누구인가. 앨리스는 유나를 떠올렸다. 유나는 예쁜가? 유나는 예쁘다. 그럼 유나는 멋진가? 그렇다. 유나는 멋진 면이 있다. 유나는 사랑스러운가? 가끔씩, 유나는 사랑스럽다. 동급생을 야구 방망이로 패는 교사를 욕하며 앨리스의 어깨에 몸을 기댈 때, 손깍지를 끼고 팔을 앞뒤로 흔들 때, 그 때의 유나는 조금은 사랑스러웠다고 앨리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 모든 말들을 한 치의 부끄러움도 없이 남에게, 혹은 본인에게 말할 수 있는가? 앨리스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앨리스는 그런 언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제 나이가 들통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초등학생 시절 교실 한켠에서 푹 빠졌던 소설 중 레몬문고 등에서 나오는 소녀 소설들이 있었어요. 정확한 제목들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소녀들 간의 미묘한 감정선, 질투와 화해, 성장 등이 어우러진 글들이었는데. 이 시리즈는 마치 그 소설들의 좀 더 아프고 처절하고 감수성 넘치는 버전 같습니다. 아직 다듬어질 부분들은 보이지만, 매력이 뚜렷해서 계속 읽게 되네요. 아이돌로 따지자면 레드벨벳의 ‘러시안룰렛’같은 소설입니다.

 

이 탑은 수많은 카렌들의 무덤입니다. 욕망을 품은 소녀들의 최후. 소녀들의 발목이 잘리고 난 뒤, 주인 잃은 발목을 담은 채 멀리멀리 사라져버린 빨간 구두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걸까요. (중략) 당신은 욕망해 본 적이 없습니까. 꿈을 꾸지 않습니까. 어떨 때는 꿈이 죄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의 발목은 당신도 모르는 사이 잘려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이곳에, 당신의 발목이 있습니다. 이곳은 당신의 무덤입니다. 당신의 무덤. 나의 무덤. 춤의 무덤.

무너지고 부서지고 사라진 모든 사람들을 애도합니다.

 

 

7. 

“당신, 기자입니까?”
“만약 취재가 목적이었다면 전하께서 먼저 다가오시기만을 기다리며 앉아 있지는 않았겠지요. 제가 아는 바를 아무렇게나 떠들어 댈 리는 더욱 만무하고요. 그러다가 어금니 깨지시겠어요.”

 

<낙원과의 이별>을 쓰신 이연인 작가님의 단편이에요. 아마 장편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이 이곳에서도 나오는 듯한데, 사실 저는 이 단편을 먼저 클릭했다가 우와, 하면서 작가 소개의 장편을 읽기 시작했답니다. 일단 주인공들의 설정이 너무너무 멋집니다. 술탄의 다섯째 왕자 전하 카밀과 이하브파 여성 구출 작전을 지원한 적 있는 국제 변호사 진원의 만남이라니. 상대를 간파하고 능력을 가감없이 내보이는 진원과 감정이 싹트기 시작한 왕자가 어떻게 이어질지 궁금해요. 구도만 보면 클리셰적일 것 같지만 촘촘한 설정과 셜록홈즈 뺨치는 여주인공 진원 덕분에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밀당을 기대할 수 있는(!) 소설입니다.

 

잔뜩 흥분한 채 이사벨을 찾을 생각에 골몰하던 카밀은 순간 머리에 찬물을 뒤집어 쓴 듯한 충격을 받았다. 누구나 온갖 특혜가 당연하다고 여길 배경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카밀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사사로운 일에 자신의 지위를 이용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단지 한 시간 남짓 본 여성을 찾는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목적 때문에 이제껏 잘 지켜 온 원칙을 무너뜨리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