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당하다. 신의 이름 하에.

대상작품: <피의 사도> 외 1개 작품
큐레이터: 1648, 9월 28일, 조회 37

* 작품의 스포일러는 최대한 배제한 채 작성하려다 보니, 두루뭉술하게 표현된 부분이 많습니다. 다만 중간중간 스포일러가 될 만한 부분이 있으니, 해당작을 아직 안 보신 분들은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피의 사도>와 <मार पापीयस् (마라 파피야스)>에 대한 감상이다.

공통 키워드는 종교.

 

종교는 인간의 안식처다. 그러나 인간은 가끔 종교를 들먹이며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한다. 문명을 이루고 살기 시작한 이래로 그러한 일은 수도 없이 많았다. 현재까지도.

오늘 소개할 작품 두 편 모두, 자신의 죄를 종교의 이름으로 정당화하려는 인물이 나왔다. 하나는 기독교, 또 하나는 불교. 특정 종교를 비방하려는 생각은 없으며, 두 작품의 작가님들 역시 그런 의도로 글을 쓰시진 않았을 것이다. 다시금 말하지만 종교는 잘못이 없다. 그것을 수단화한 인간이 문제다.

 

먼저, <피의 사도>.

주교. 기독교(천주교)의 수장이다. 그런 자가 권력을 탐하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해서는 안 될 짓을 저질렀다. 스포일러가 될 테니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지식과 정보의 소유는 곧 돈과 권력으로 이어지기에, 권력자들은 지식 접근에 자격을 부여했다. 서양에서 중세 시대까지 지식과 정보란 성서의 해석과 철학을 의미했다. 즉 종교집단과, 그들과 권력으로 결탁한 지배계급만이 지식을 접하고 다룰 수 있었다.

특권계층은 세습된다. 새 일원의 충당은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그리고, 고인 물은 썩는다. 집단 내 어떤 이가 선을 넘어가는 행동을 해도, 범죄를 저질러도, 비윤리적인 짓을 행해도, 그것을 심판할 내부의 안전장치는 효력을 잃는다. 그자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더더욱.

범죄를 저지른 자는 자신의 행위가 그릇된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종교인으로서, 그걸 떠나 한 인간으로서,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그러나 누구 하나 대놓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이제 그자는 자신의 행위를 어떻게든 정당화한다.

종교의 이름으로.

신께서 보장한다. 내 행동은 정당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지독할 정도로 비겁하다. 자기 행위에 대한 비판이 두려워서 신의 이름을 내걸고 그 뒤에 숨는다. 그것을 죄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뻔뻔함이 참으로 대단하다. 최후의 심판날에 지옥으로 가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 다음, <मार पापीयस् (마라 파피야스)>.

스님. 불교의 수행자다. 불교는 종교의 특성상 신을 ‘믿는다’기보다는,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되 그에 매몰되지 말고 언제나 바르게 정진하라는 측면이 훨씬 두드러진다.

그래서 스님들은 중생을 인도하는 방식이 사제와는 다르다. 기독교는 경전의 해석을 지식으로서 보급하고, 그것을 통해 선교한다. 반면 스님들은 수행을 한다.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언제나 바른 길을 가도록, 사사로운 잡념에 빠져들지 않도록…

그러나 불교의 종교인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해 도망치고, 종교의 이름으로 행위를 합리화하는 모습은 별다를 게 없다. 기독교나 불교나 종교는 문제가 없다. 언제나 나약한 인간이 문제다.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으니 살짝만 이야기하자면, 스님은 자기 의지에 따라 죄를 행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마귀가 빚어낸 육욕을 이겨내려 행한 행위에 불과하다. 이 이상 말하면 스포일러니 정말 여기까지만 말하겠다.

 

다른 사람들에게도 묻고 싶었다.

주교와 스님, 어떤 이가 더 무서운지. 누구의 행위가 더 소름끼쳤는지.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을 합리화하며 죄를 저지른 자가 두려운가, 아니면 자신의 의지를 박탈당한 채 자기 행위가 선이라 믿으며 행한 자가 두려운가.

그래, 이 두 작품은 호러다. 적어도 내게는 이 두 작품이 호러물로 보였다. 두 인간의 내면에 자리한 본능, 그 두 사람이 죄를 저지르게끔 이끈 원동력, 내게는 정말로 그것이 무시무시했다. 너무나 두려워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비록 구체적인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종교의 이름 하에 스스로를 파괴해간 그들의 행위가, 그들을 굴복시킨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그것들이 너무도 공포스러웠다.

또 하나, 다른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만약 그대가 판사라면, 두 행위를 어떻게 판단할 것인지. 둘 다 ‘사람을 죽였다’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무엇인지. 안타까운 마음이, 참작 가능하다는 생각이 왜 들었는지…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묻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