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모전] 시간을 돌려서 다시 한 번 원고를 낼 수 있다면

대상작품: <빛은 당신의 이마로부터> 외 28개 작품
큐레이터: 보네토, 21년 4월, 조회 221

타임리프 공모전이 돌아왔고, 어느새 공모전 정리머신이 되어버린 것 같은(…) 저도 돌아왔습니다

시간을 돌려서 다시 한 번 원고를 낼 수 있다면!을 외치고 계실 아까비들을 위하여, 그분들의 작품을 정리해드립니다. 순서는 심사평 순이며, 예심언급작 → 본심언급작 순으로 작성했습니다.

 

=======예심언급작=======

「빛은 당신의 이마로부터」는 이런 흐름에서는 다소 동떨어진 초능력물이었는데, ‘빛을 발하는 능력’으로 다른 사람에게 후광을 입히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에게 의문의 소녀가 시간여행을 해 오는 이야기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하는 인생 가치관을 잘 풀어냈다. 이야기가 길고, 초반에 설정을 따라잡는 데 노력이 필요한 점이 아쉽다.

「도도닭강정의 비밀」은 황당무계한 상황 전개나 인물의 행동이 납득이 잘 가지 않지만 유쾌한 내용이 아스트랄 프로젝트에 사뭇 어울릴 법한 작품이었다.

「살인범 VS 스토커X2」는 히키코모리 소녀가 실종된 인터넷 친구를 찾다가 의문의 연쇄살인범을 쫓게 되는 내용인데, 좀 더 박진감 넘칠 수 있었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황급히 마무리되며 중반이 상실된 느낌을 주었다.

「백번 죽은 용사와 백 한번 죽는 마왕」은 원인을 알 수 없는 무한 루프에 빠진 용사가 마왕을 죽이는 인생이 반복되는 바람에 미치고 팔짝 뛰는 이야기로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라서 심사 마지막까지 고심했으나, 용사의 삶의 목표가 어디가 시작이고 끝인지 모르게 바뀌어 가는 과정의 재미에 비해 ‘어째서’의 설명이 부족한 점이 아쉬웠다.

[브릿G에 작품 없음]

「사춤」은 시간여행을 반복하며 여학생의 목숨을 구하려는 주인공의 시도가 무위로 돌아가고 고통스러운 결과만을 가져오는데, 담담한 서술에도 긴박함이 느껴지는 전개가 좋았다.

[브릿G에 작품 없음]

「꼬리 삼키는 뱀」은 시간여행자의 입장에서 느끼는 정신적 불안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 작품으로 진지하고 무거운 색채가 독특한 매력을 주었다.

「여름비」는 첫사랑에 대한 후회를 그린 전형적이고 예상 가능한 로맨스였으나 매우 사랑스러운 작품이었다.

「한 걸음에 삼백리」는 이야기의 분위기나 흡인력이 상당히 좋았던 작품이다. 그러나 ‘타임리프’ 본연의 재미를 잘 살렸는가 하는 부분에서 고민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결과역행개조우주」는 ‘타임리프’라는 개념을 잘 활용한 작품이지만, 긴 분량에 흡인력까지 다 잡아내기엔 다소 역부족으로 보였다.

「서가 너머의 그대」는 차분한 읽기와 나름의 반전이 매력적이었지만, 본심까지 올리기엔 아쉬움이 있었다.

[브릿G에 작품 없음]

「황월영전」은 제갈공명의 부인이 미래에서 왔다는 흥미로운 설정을 팩션 장르로 재미있게 풀었지만, 다듬새가 다소 거칠었다.

「천년의 사랑은 강화쑥비엔나라떼와 함께」는 작가의 재기발랄한 문체와 각 세계의 신을 바다사자와 물개 등으로 표현한 재치가 매력 있는 작품이었다. 물개는 세상을 구원한다. 강화도를 둘러싸고 벌어진 한국의 역사를 같은 소재로 풀이한 점도 크게 재미있었다. 그러나 타임리프라는 공모전 소재와는 다소 비껴나간 감이 없잖아 있다.

「로터리」는 오버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한 타임머신이라는 소재를 힘 있는 문체로 풀어 나갔다. 작품 결말부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개되는 스토리와 과거를 바꾸려는 행동을 할 때 수반하는 고통에 대한 묘사가 시선을 사로잡았다. 다만 흑막으로 추정되는 박사의 행동이 잘 납득되지 않고, 결말부가 중간부와 이어지지 않아 다듬새가 아쉬웠다.

「그렇게 전사는 뻐꾸기를 구하고」는 타임리프에 충실하게 이야기를 펼쳤으나, 신선함이 부족한 느낌이었다.

「겟 백」은 100초라는 시간 제한을 조금 더 살렸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브릿G에 작품 없음]

『너와 명탐정의 교차점』은 발랄한 분위기로 방대한 분량을 끝까지 마무리지은 점이 돋보이지만, 캐릭터 설정이 만화적이라 현실감이 떨어지는 부분이 아쉬웠다.

아쉽게 본심에 올리지 못한 작품 중 「플라이, 플라이어」는 위기에 몰린 정권이 제시한 ‘플라이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연인을 되찾으려는 주인공의 여정이 흥미진진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다만, 작중의 세계와 SF적 설정이 그다지 매끄럽게 연결되지 않는다는 인상이어서 배경에 대하여 좀 더 분량을 할애하였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과거의 전쟁을 연구하기 위해 타임슬립한 미래 인간의 독백을 그린 「시간 여행자의 고해」는 다소 단조롭기는 하였으나 인과에 개입하고 만 시간여행자의 목소리가 주는 감동이 후반부에서 강렬하게 다가왔다.

[브릿G에 작품 없음]

「G물체」는 청소기의 먼지 주머니에 연결된 블랙홀에서 시공간이 비틀리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발상이 흥미로웠다.

「그날 밤의 강가에서 너와 걷다」는 흡인력이 좋고 현 상황에서 벗어나야 하는 인물의 절박한 심정을 생생하게 그려 냈지만, 근본적으로 시간여행을 다루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하였다.

「순환」은 공원 벤치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눈을 뜨는 인물이 시간을 돌리는 게 자신이 아님을 깨닫는 과정이 깔끔하게 그려졌다.

성범죄자를 과거로 보내 형을 두 번 살게 하는 이야기 「넛크랙커 – 망치를 내려치니 잡놈들이 번쩍」은 시의성 있는 유쾌한 활극이지만, 단일한 작품으로서의 완결성이 부족한 인상이었다.

[브릿G에 작품 없음]

사랑하는 이가 머지않아 죽는다는 편지를 받은 주인공이 번민하는 이야기 「속박된 시공간의 틈새에서」는 서정적 분위기와 미래를 바꾸는 결말이 나름 인상적이었으나 대화나 등장인물 등에서 큰 매력을 찾을 수 없었다.

시간 역전 물리학을 연구하는 천재 물리학자의 이야기 「[기고] 시간 여행의 본질과 그 가능성에 대한 고찰」은 소소하게 웃음을 자아내는 부분이 더러 있어 흥미롭게 읽기는 했으나 실제로 타임리프를 하지는 않고 시간 여행의 연구적 개념을 설명하는 데에 집중하여 소설적 재미는 간과한 인상이었다.

사고로부터 친구를 구하기 위해 일상의 하루를 반복하는 이야기 「2022년 2월 22일 2시 22분 22초」는 반전이 있는 결말로 나름의 흡인력은 있었으나, 날짜를 통해 친구에게 사고와 관련된 암시를 준다는 설정은 충분한 설득력이 있다고 보기 어려웠다.

[브릿G에 작품 없음]

타임리프 능력이 있는 친구가 동생을 살해한 일에 관해 변론하는 「어느 궤변론자를 위한 세 가지 궤변」은 변론을 빙자한 궤변이 일견 흥미로웠으나 친구의 타임리프 능력과 동생의 죽음이 맥거핀으로만 작용하고 사건이나 시간 여행을 통해 과거를 바꾸려는 의지 없이 확정된 미래만 이야기하여 아쉬웠다.

「그때, 곰인형이 내게 말을 걸었다.」는 비극적 사연이 있는 주인공의 곰 인형에 대한 반전 장치가 뒷받침되면서 시간여행이 펼쳐지는 과정을 다루는데, 반복적 행위가 주로 묘사되며 파편적인 이야기로 남았다는 인상이 강했다.

[브릿G에 작품 없음]

「20202000」은 금전적 이득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시간을 되돌려 과거의 나와 대면하는 과정에서 큰 반전이 드러나지만, 전체적으로 허술한 이야기의 짜임새를 보완하기엔 역부족이라고 느꼈다.

「휘핑 없는 카페모카」는 타임리프라는 장치를 활용하기 위해 커피라는 소재가 과잉 사용되어 주제 선정이 적절했는지 의문이었으며, 「트루 러브」는 개중 SF적 설정이 매끄럽고 반전이 돋보였으나 주제의식을 담아내는 메시지보다는 일말의 결말을 위해 과정의 전시성이 지나쳐 다소 불쾌한 인상이었다.

 

=======본심언급작=======

(작성이 까다로운 면이 있어, 박대표님의 글을 기준으로 작성합니다)

 

본선에 오른 열한 편 중에서 먼저 걸러진 것은 시간여행 장르의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다고 캐릭터나 스토리의 독창성이 두드러진 것도 아닌 어중간한 작품들이었다. [조정자]는 거듭되는 반전의 매력은 있었지만 시간여행SF로서 너무나 진부하고 익숙한 느낌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시간이 금이라던데]와 [태엽의 끝], [하얀색 음모] 역시 비슷한 단점을 지닌데다 전반적인 밸런스도 위태로웠다. 특히 구성력이 더 치밀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조정자]는 작품 전체에 엉뚱하면서도 긍정적인 유쾌함이 흘러서 즐거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서술하는 방식은 편안하게 읽히는 장점이 있지요. 주인공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 자신을 가두거나 나 자신에게 잽을 날리는 등의 표현이 재미있었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유쾌함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금이라던데]의 글 속 캐릭터들이 1초씩 900번을 되돌리기 위해 30분*900번을 반복하는 절박함이 이해되면서도 씁쓸한 기분입니다.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이 생긴다면 아마 저도 제일 먼저 로또를 구입하러 가지 않을까요? 초반 주인공의 일상을 과감히 축약하고 바로 본론부터 시작한다면 좀 더 흥미로운 진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태엽의 끝]에서 가장 끔찍한 기억을 영혼이 가루가 될 때까지 반복하게 겪게 하는 게 훨씬 잔인한 것 같은데 분쇄기보다는 낫다고 말하는 담당자들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네요. 탁상공론은 지옥에도 있군요. 처음에는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처럼 시간을 되돌려 어떻게든 죽음에서 벗어나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저자분만의 감성으로 다른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점이 좋았습니다.

[하얀색 음모]는 굳이 왜 음모일까 의문이 들긴 했습니다만, 그게 저자분의 개성일 거라 생각합니다. 역시 세상은 고양이가 구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디센더-달에서 내려온 로봇]은 이야기의 힘은 좋았지만 SF로서 갖춰야 할 장르적 핍진성이 빈약해서 몰입이 힘들었다. 어설픈 구체성보다는 독자가 상상으로 채울 모호함이 더 나을 수도 있다.

[디센더-달에서 내려온 로봇]에서는 ‘영원한 삶을 갖는다면 유한한 것들은 도태될 것이다’ 라는 문장을 여러 번 곱씹어보게 됩니다. 앨런은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똑같은 미래(이자 과거)를 반복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아주 조금 축이 비틀어져 다른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앨런이 언젠가 원을 벗어나 나선에 올라타는 날이 오길.

[열다섯 번의 오늘]은 독자의 시선을 계속 붙잡는 이야기의 흡인력은 좋았으나 다른 면들은 세련미가 좀 떨어졌고, [라젠카가 우리를 구원한다 했지]는 깔끔한 웰메이드라서 그것만으로도 평균 이상의 점수를 얻기에 충분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이상의 뭔가가 없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주인공에게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이입되는 정도에 따라 독자들이 보이는 선호도의 편차가 꽤 클 것 같다.

[열다섯 번의 오늘]은 하필이면 아내의 불륜을 알게 된 시점에 갇혀버린 주인공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하루가 반복된 지 14일 만에 자살을 선택한다는 점이 조금 의외였습니다만, 어쩌면 주인공은 그 전부터 이미 죽음을 생각해왔던 걸까요?

[814만의 1]은 상당한 노력이 느껴지는 공들인 작품이다. 다만 마무리가 좀 안이하지 않나 싶은 게 일독을 마친 뒤의 느낌이었다.

[814만의 1]은 ‘내 꿈은 로또 1등’이라는 소망을 매우 복잡한 방식으로 풀어낸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식이 풍부하여 그것을 글에 녹여내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만 지식이 이야기를 잡아먹지 않도록 경계할 필요는 있습니다. 나윤의 곁에 선 채 만족하는 희태의 마지막 장면이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