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사랑은 강화쑥비엔나라떼와 함께

  • 장르: 로맨스, 역사 | 태그: #역사 #판타지 #로맨스 #루프물 #환생 #셀키 #점박이물범 #물범 #물개유니버스 #물개
  • 평점×69 | 분량: 277매 | 성향:
  • 소개: 새해를 기념하여 올려보는 강화도 점박이물범 셀키(Selkie) 이야기입니다. 강화도 외포리의 물호랭이다방에서 귀여운 셀키아주머니가 말아주시는 강화 사자발약쑥 비엔나라떼를 드셔보세요... 더보기

천년의 사랑은 강화쑥비엔나라떼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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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주세요! 뻘에 빠졌어요! 제발, 제발 좀 도와주세요!!!!”

몇 번을 외쳐봐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여자는 지금 갯벌에 발이 빠져 있었다. 사람이 있는 쪽으로 아무리 소리를 쳐서 구조 요청을 해도 이미 그녀가 들어온 온 곳은 사람들이 다니는 외포항 근처의 횟집거리와는 너무 먼 갯벌 한가운데였다. 도와주세요, 살려주세요, 발이 뻘흙에 빠졌어요! 물이 들어와요! 아무리 소리쳐도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여자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애초에 ‘사람이 오지 않을 법한 가장 좋은 곳’ 이기 때문이었다. 바닷가를 바라보며 적당히 술을 까고 튀김을 씹으면서 울 거 울고 욕할 거 욕 좀 하고 싶어서, 어차피 숙소에 들어가는 교통편도 없는 김에 바다가 가까이 보이는 마른 땅을 그저 걷고 걸어 들어갔을 뿐이었다.

외포리는 추웠다. 낮에 석모도 보문사 해수관음보살 마애불을 보러 올라갔다 올 땐 땀에 젖어 덥던 날씨가 해가 지니 오히려 땀이 마르는 기화열까지 합쳐져 싸늘해졌다. 강화에 와서 깨달은 것은, 강화도에서는 거의 모든 가게가 편의점을 제외하면 밤 9시쯤에 알아서 문을 닫는다는 사실이었다. 심지어 외포리는 읍내와는 달리 밤늦게까지 하는 술집도 없고 죄 모텔들과 일찍 닫는 횟집 칼국수집 뿐이었는지라 어디 들어가서 몸을 녹일 곳도 변변찮았다.

평범하지만 날씨 하나는 끝내주는 날이었다. 해는 맑았고 바람은 선선했으며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빛깔이 바다처럼 펼쳐진, 그런 날이라 모처럼 이 레지던시에 와서 작업용 태블릿 PC와 펜을 숙소에 고이 모셔놓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놀고 싶었을 뿐이었다. 보문사에 가서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을 보고 소원을 빈 뒤 바다를 보고 놀다 들어가기. 그게 오늘의 유일한 계획이었다.

돌아오는 버스를 타고 숙소로 가다가 외포리에 내린 이유도 별 거 없었다. 외포항 버스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고향식당의 새우튀김과 인삼튀김과 벤댕이무침이 그렇게 푸짐하고 맛있다기에 중간에 내려서 배를 채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슬픈 것은, 이 새우튀김집의 영업 시간이 저녁 아홉 시까지라서 여자가 튀김을 주문하려 내린 여덟 시 반에는 홀 이용은 불가능하고 튀김들을 포장해서 먹는 것만 가능했다. 그래서 튀김 2만원어치 – 그러니까 새우튀김 만 원어치와 인삼 속노랑고구마 새우 오징어가 다 들어있는 모듬튀김 만 원어치를 포장해서 들고 나왔다. 숙소 가서 먹으려고. 그래 그것까진 다 좋았는데 –

벌써 몇 시간째 택시가 잡히지 않았다. 강화도에 와서 대중교통을 시간 맞춰 타기가 얼마나 힘든 지까지는 이미 몇 번 겪어보아서 알고 있었었지만, 겨우 밤 아홉 시 반이 넘었다는 이유만으로 버스가 끊기고 코코아택시 어플로 콜택시를 스물 두 번 불러도 콜택시가 안 잡히는 사태가 일어날 줄은 그녀도 예상하지 못했다.

에라이 씨발, 이것까지 안 되냐 어떻게, 하고 홧김에 정류장 건너편의 24시간 지씰레븐(Gsealeven) 편의점에서 네 캔에 만 원어치 맥주를 샀다. 마침 샛노란 보름달이 크고 둥글고 밝아 술이 땡겼다. 그리고서 바다 보이는 아스팔트 턱에 걸터앉아 술을 까려고 했는데 어떤 어부 아저씨가 인삼막걸리 병을 들고 와서 ‘저기요 여기서 술 마시면 안 돼요 바깥에선 술 못 마시게 되어 있어’ 라고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사람이 가장 없는 곳, 그러면서도 운치도 나름 있고 인생의 서러움을 고래고래 토해내도 괜찮을만한 자리를 찾다 보니 바다라곤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물이 빠진 이 갯벌이었다.

망할놈의 달, 쓰잘데기없이 밝고 이뻐가지고서는. 금방 나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바윗덩어리나 경사 같은 장애물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신문지 한 장 마른 땅 위에 펼쳐 놓고 맥주를 깠는데 – 이런, 그동안의 과로로 인해 술이 약해진 것이었다. 젠장.

열 시 반이 넘을 때까지 택시만 계속 부르다 보니 설상가상으로 핸드폰 배터리도 모두 닳았다. 하필이면 오늘 보조배터리를 안 챙겨올 건 뭐람. 더 열받는 것은, 보조배터리가 가방에 있는 줄 알고 마지막으로 통화를 걸었던 대상이 정말 어이없는, 술김이 아닌 맨정신이라면 절대로 통화버튼을 누르지도 않았을 ‘그 사람’이란 사실이었다.

“아 씨발, 물 들어오는데! 아악! 나 어떡해… 어떡해… 흐아앙…. 엉…. 엉…. 엉엉……”

발목이 깊숙이 갯벌흙에 빠져버렸는데 밀물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재난 영화에서나 볼 법한 상황이었다. 여자는 온 몸으로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핸드폰은 벽돌이요 주위는 갈매기들 소리조차 나지 않고 물 소리만 쏴아 쏴아 들려왔다. 여자는 극도의 공포감에 절규하다 울었다. 진흙은 몸부림을 치면 칠수록 발을 더욱 빨아들였다. 물은 벌써 여자의 무릎께까지 차올랐다.

그 때였다.

“궈억! 궈어어억 – 궈억 – 구우어억!”

저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서 무언가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놀라서 그쪽을 쳐다보니, 그곳에는 원거리에 있는 야생동물이라 생각하기엔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한 마리의 점박이물범이 울고 있었다.

— 본 작품은 유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