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여질까?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항문을 열어라 (작가: , 작품정보)
리뷰어: 비연, 19년 11월, 조회 445

아그책, 항문을 열어라

 

 

<항문을 열어라>의 배경은 간단하다. 좀비 바이러스가 퍼졌고, 정부가 대응을 잘 하여 확산 속도가 늦춰지기는 했으나 도시는 폐허가 되었으며, 곧이어 발표된 예방 방법은 ‘항문 성교’였다는 설정이다. 참신한 발상이지만, 당연히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이유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TV를 보며 나날이 변해가는 상황을 지켜보는데 속보가 떴다.

대통령의 전 국민 담화였다. 우리는,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아마도) 그의 말을 기다렸다.

“항문 성교를 하면, 좀비 바이러스를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진의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화자인 ‘나’는 그 ‘예방 방법’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세한 건 수석 대변인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통해 설명하겠다고 했다. 나는 방금 대통령이 무슨 말은 한 건지? 의심했다. 여자친구만이 TV를 노려보며 조용히 항문성교를 하면 예방이 된대. 좀비 바이러스에 대한 항체가 나온대, 하고 중얼거렸다. 뭔 개소리야! 나는 TV를 꺼버렸다. 하, 항문? 성교? 그런 짓거리를 하라고?

(중략)

그딴 걸 왜 해!

나는 소리쳤다.

그딴 건 게이들이나 하는 짓거리라고……. 비정상적인 애들, 성도착증에 걸린 애들! 변태! 난 그런 사람이 아냐. 너도 아니잖아. 그런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해.

정부에서 직접 하라잖아. 그래야 좀비 바이러스에 항체가 생긴다잖아.

소연아, 나는, 나는 그런 거 못해. 어떻게 더럽게……. 그런 걸 할 생각을 해?

 

 

화자는 항문 성교를 하자는 여자친구를 살해한다. 시체는 화장실에 구겨 넣는다. 그리고 그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한다. 이것은 저주와 이단을 처단하기 위한 불가항력적 일이었다고 자위하며. 등장과 동시에 살해된 여자친구가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이름을 가졌던 존재라는 사실은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 채 지워진다. 이후 화자는 여자친구의 집을 떠나 본가로 향한다. 문을 열고 화자를 맞이한 것은 게이 동생과 그가 ‘동성애 같은 걸 하는 끔찍한 종자’가 되도록 방임한 무책임한 부모.

 

오는 데 위험하진 않았니?

엄마도, 저 여자도 그런 짓거리를 했단 말이지.

배고프면 와서 뭐 좀 먹어라. 름식을 구하기가 쉽진 않다만.

나는 아빠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저 놈도 마찬가지겠지.

 

 

혐오로 점철된 시선은 동생에게로 돌아간다. 동생이 샤워하고 나왔을 때, 화자는 수십 년 전에 묻어두었던 욕망을 마주한다. 게이 포르노를 보며 자위하던 것을 부모에게 들키고, 수없이 매질 당하며 폭언을 들어야 했던 제 과거를 떠올린다. 동생은 되고 나는 안 되었던 ‘동성애’. 동생을 강간한다. 한 번 대준 것으로 피해자 코스프레를 할 필요는 없다면서. 너는 어차피 아무한테나 벌리고 다니는 놈이지 않으냐면서.

 

퀴어문화축제 참가자들을 동의 없이 촬영하고, 여자친구를 살해하여 방치하고, 부모의 항문 성교를 상상하며 혐오하고, 끝내는 동생을 강간하기까지 하는 과정에서 독자는 길을 잃는다. 도대체가 무엇을 위한 연출인가. 화자가 장남이라는 이유로 부모가 그의 성향을 인정하지 않았고, 폭력과 폭언으로 교정을 시도했으며, 그 결과로 동성애 혐오자가 되었다는 설정이 정말 이 많은 범죄를 설명할 수 있는가. 여성과 성 소수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것은 부정된 성 소수자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혐오가 혐오를 낳아 더 큰 혐오가 되었으니 모두 항문을 열고 혐오를 멈추라는 말이 하고 싶은 것인가.

 

이미 한 차례 작품에 관한 논란이 있었던 것을 안다. 당시에도 이 작품을 읽었고, 할 말은 많았으나 굳이 나열하지는 않았었다. 이미 많은 분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지적하셨고 작가 역시 이 논란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또한, 플랫폼으로부터 작품이 부정당했다는 기분이 억울했을 수는 있으나 작품에 대한 논란을 받아들였다면 최소한 작품 수정은 이루어질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3개월이나 지난 뒤에 이 리뷰를 작성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작품 수정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서. 불필요한 수준의 분노와 폭력에 대해 작가가 제시한 갖가지 핑계는 독자를 전혀 설득하지 못했다. 실패한 연출에서 오는 불쾌까지 소설로 포용하라는 것은 독자 기만에 가깝다. 이 작품이 퀴어 문학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다. 여성이 받는, 그리고 성 소수자가 받는 차별과 혐오, 억압과 위해는 작중이 아니라 현실에 존재한다. 한두 사람, 혹은 일부 집단을 혐오의 가해자로 지목할 수 없으며 그런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1차 가해자를 부모, 2차 가해자를 화자로 특정하는 것으로 모든 혐오를 일축한다. 각각의 인물이 암시하는 바도 없이, 그저 이것은 네가 잘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며 손가락질하는 것에 그친다. 심지어는 이 세계가 좀비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상황이라는 주요한 설정마저 잊힐 정도로 혐오와 분노에만 집중하면서 그 구도를 구체화하고 설득력 있는 결론으로 이끌기 위한 노력은 거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납작하고 단순한 평면 구조에서 불법 촬영, 살인, 근친 강간이 난잡하게 흩뿌려진 이 작품이, 시간이 지나면 받아들여질까?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나야 받아들여질까?

 

받아들여져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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