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의식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정
내 주변에, 혹은 나 자신에 이질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들이 더러 찾아옵니다. 꿈 속에서도 그렇고, 유난히 독한 꿈을 꾸고 퍼뜩 잠에서 깨었을 때 익숙해야 할 내 침대와 천장을 알아보지 못하는 찰나도 그렇지요. 『에덴 동산』의 도입부는 그 감각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잠에서 깬 우리에게 찾아오는 ‘아 그래, 내게 익숙한 곳이구나-’라는 안정의 순간이 화자에게는 찾아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생각해 보아도 내가 처해 있는 공간과 상황을 해석해 낼 수 없고 화자는 질문을 던지다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화자는 이 상황에 격렬한 이질감을 느끼고 있지만, 동시에 이것이 잘못된 상황이라고 확정 지을 근거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시선을 공유하는 독자는 그와 함께 쫄깃한 긴장 상태에 놓입니다. 이곳에서 벗어나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미친 건지 판단할 수 없는, 그야말로 진공 상태인 셈이네요.
의식이 또 비집고 들어왔다. 내 것이면서 이질감이 드는, 어쩐지 색이 다른 것 같은 생각이 툭툭 섞여 들었다.
그러자 다른 가족의 존재를 떠올렸을 때, 시야가 넓어지기라도 하듯이 주변이 선명해 졌다. 사물이 색과 형태로 먼저 들어왔다. (중략) 녹색과 회색이 섞인 얼룩덜룩한 캔버스같은 네모가 먼저 보였고, 은백색의 테두리가 그려지면서 얼룩덜룩하던 것들이 사람 모양으로 바뀌었다. 나는 그때서야 어둑한 사각 캔버스가 바깥이 내다보이는 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시각적 이미지, 특히 색감을 활용해 의식이 깨어나는 과정을 그려내신 것이 읽기 즐거웠습니다. 화자의 시야에 새롭게 등장하는 색들은 화자가 찬찬히 인식하는 주변 물리적 대상의 색상이기도 하지만, 주변에 대한 낯선 시선이라는 추상적 무언가(“색이 다른 것 같은 생각”?)을 표현해내는 감각으로도 작용합니다.
2. 의심하기
작품의 도입부가 화자의 의식 상태에 대한 표현에 중점을 두었다면 그가 방을 나와 ‘관리자’를 만나는 순간부터는 보다 쫄깃한 내적 갈등의 밀당이 펼쳐집니다. 표면적으로 관리자는 안내자 혹은 내래이터로서 화자에게 정보와 선택지들을 제공합니다. 하지만 작품을 이끌어가는 드라마는 그 선택지 중 무엇을 고르느냐보다는, 관리자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입니다. 그렇게 두 겹으로 구성된 갈등 구조와 화자의 신중하지만 빠르고 날카로운 사고가 작품에 큰 에너지를 불어넣습니다.
3. 삶을 찍어내는 공장
“꿈은 곧 삶입니다. 당신이 꾼 꿈은 지구에 사는 어떤 여자의 삶이에요. 그 꿈에서 생겨난 에너지가 태내의 아이를 자라게 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는 당신의 꿈을 자기의 인생으로 받아갑니다.”
그것은 내 침대 위에 있을 리가 없는, 그리고 있어서도 안될, 작고 빨간 사과였다.
오묘한 결말은 딱 알맞은 정도로 열려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는 어쨌든 화자가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지만 확신할 수는 없습니다. 사과는 화자의 경험이 완전한 개꿈은 아니었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꿈이 아니라면 무엇이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화자가 언뜻 생각하듯 화자의 영혼을 낳은 여신이 남긴 기억 혹은 보내는 메시지였을 수도 있고, 아니면 관리자인 척 하는 못된 초월자의 실패한 영혼 납치 시도(!)인 것인지도 모릅니다. 영혼을 낳는 여신들이 정말로 세상을 굴러가게 하는 시스템인지, 아니면 모든 것이 관리자의 거짓말이었는지 독자는 명료하게 판단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만삭이었던 화자와 결말의 화자는 같은 인물로 볼 수 있는지, 두 의식 사이의 관계는 어떤 것인지가 가장 모호하고 흥미로운 질문으로 남아 곱씹어볼 생각거리를 주었습니다. 꿈으로 삶을 잉태하는 여신들이라는 이미지 자체도 흥미로운데, 그 이미지가 모호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그려져서 작품이 더 재밌지 않았나 싶네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글이었습니다. 도입부에 있었던 약간의 느슨함을 넘기면 작품 전체의 페이스가 날카롭게 잘 이어져서 지루함 없이 읽을 수 있었고, 전체적인 긴장감이 유지되는 와중에 중간중간 이질적인 장면(“안녕하세요? 저는 아이가 곧 태어나서 기뻐요.” 라던가, 선택을 거부한 화자를 훅 바라보는 ‘여신’들의 시선과 같은 순간들이요)들이 치고 들어와 쫄깃하게까지 읽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