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매우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매우매우 스포일러 함유합니다.
매우매우 매우매우 매우합니다(?)
취향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여러분은 만년필을 좋아하시는지? 나는 만년필을 무척 좋아한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넘어가는 시점에 나에게는 이상한 취향이 몇 가지 생겼는데, 그 중 하나가 만년필에 대한 것이었다. 파이프 담배, 홍차, 중절모, 그리고 잉크를 흘리며 부드럽게 나아가는 만년필.
취향이란 것이 유전되는 것일까 나는 늘 궁금했다. 나는 만년필을 좋아하고, 아버지도 만년필을 좋아하시고, 큰아버지께서도 만년필을 좋아하시는데, 만약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다면 어땠을까. 할아버지가 만년필을 좋아하셨다면 어쩌면 이러한 취향은 부계 혈통을 따라 계승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동생이 만년필을 썩 좋아하지 않는 거로 봐서는 아무래도 아닌 것 같지만.
내게 생긴 첫 만년필은 큰아버지께서 주신 것이었다. 미국 Cross 사의 타운젠드 라인업 만년필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가져본 만년필 중에 가장 고가의 물건이었다. 이후로는 내가 낼 수 있는 금액 언저리에서 만년필 수집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언제나 가난하고 보통 내가 취미로서 지불할 수 있는 금액의 대부분은 매직 더 개더링이 잡아먹고 있다. 그런 까닭에 많은 만년필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렇다할 비싼 만년필은 타운젠드 뿐이다.
나는 내가 지불할 수 있는 금액으로만 만년필을 구할 수 있다. 사실 이것은 만년필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처한 현실일 것이다. 주머니가 허락하는 한에서 수집이 이루어지고, 그 밖의 물건들이란 밤하늘의 별과 같다. 보는 것은 무료지만 소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니까.
작품의 주인공 역시 나와 처한 현실이 비슷하다.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무던 애를 쓰지만, 언제나 조금 더 넉넉한 총알을 가진 사람에 의해 저지당한다. 특히나 빈티지 만년필 시장이란 수요가 공급에 비해 월등히 많은 곳이므로 학생이 쉬이 접근할 수 있는 공간은 아니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삼촌이 튀어나온다. 아빠의 형제. 나에게 비싼 만년필을 선물해준 아빠의 형제(큰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이쪽의 아빠의 형제(삼촌)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원하는 빈티지 만년필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생각해보자. 당신이 어떤 취미를 가지고 있던지간에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떨까. 19세기 영국의 서점으로 가서 디킨즈의 초판본을 고작 조카들 용돈 주는 기분으로 구할 수 있다면, 같은 시기에 최초의 우표를 구해다가 우표 수집광들에게 팔 수 있다면. 이러한 망상에 ‘어떻게’를 끼얹는 것은 무의미하다. 과학적으로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바이다. 그래서 작가는 용감하게도 ‘어떻게’를 생략하기로 했다.
클라이브 루이스가 옷장 너머의 나니아를 묘사할 때, 그가 이것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 것인지 설명하지는 않았다. 조지 루카스가 밀레니엄 팔콘을 묘사할 때, 그것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 설명하는 데 애쓰지 않았다. 만약 독자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이미 충분히 되어있는 상태라면, 설명은 그게 무엇이 될 지라도 작품을 더 구리게 만들 뿐이다. 그리고 주인공의 시간 여행도 그 원리를 생략하므로서, 마치 우리가 침대 에 누워 ‘만약에…’의 상상을 할 때처럼, 제약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었다. 마치 독자가 그 지점에 그러한 상황에 대해 준비될 것을 미리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나머지 이야기는 물 흐르듯 하다. 필요한 걸 해내고, 욕심에 빠지고, 인생은 실전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물 흐르듯하다는 말은 사실 작위적이란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찌 되도 좋았을 주인공은 작가가 원하는 바가 있었기에 그런 식의 결말을 맞게 된다. 솔직히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 소설은 결말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사실은 개인 혹은 독자의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소설의 기본 기능이 여기 아주 충실하게 동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만약에 과거로 돌아가서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이라는 상상을 독자에게 하게 만든다. 멋지고 재미있다. 여러분에게도 일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