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스포일러를 최대한 자제하느라 좀 돌려 말한 부분들이 있어서 내용을 읽지 않으신 분은 잘 이해가 안 될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반전의 묘미를 즐기시길 바라서 스포를 자제했습니다. 작품을 먼저 읽고 리뷰를 읽어주시면 더 이해가 잘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스포일러를 자제하려고 애쓰다 보니 내용을 말할 수 없고 그래서 제가 말하려는 내용이 잘 전달이 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작품보다 작품 외적인 이야기들을 늘어놓아서 리뷰가 길어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네 맞습니다. 사심 가득한 리뷰입니다.
이 소설은 일단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 하며 이야기를 읽게 됩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주인공 여자는 남편에 대한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만년필 몽블랑 ‘마이스터스튁149’로 우아한 서명을 하는 남자,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재벌가 자재인 남편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에 일단 흥미롭게 지켜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자와 남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늙은 교수와 젊은 제자의 사랑이었다고 고백합니다. 이미 우리는 이런 스토리에 익숙하죠. 퍼뜩 떠오르는 생각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서두에 남편에 대해 꽤 멋지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에 여자도 남편을 사랑하나? 싶었기 때문에 저는 주변의 비난과 반대를 무릅써야 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회한? 혹은 늙은 남자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젊은 여자의 비애? 등등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읽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제 상상 일부를 포함하긴 하지만 다른 이야기이고 상상 그 이상으로 펼쳐져 나갑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엄청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네 좀 잔인하고 슬픈 이야기입니다.
테이스터 문학상에 출품한 작품이니만큼 공모 주제였던 디저트가 소설의 메인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초콜릿 케이크입니다. 사실 초콜릿 케이크는 일상적으로 맛보는 디저트라기엔 조금 특별한 편이죠. 이 작품에서 초콜릿 케이크는 여러 가지 의미로 변형됩니다. 디저트이니만큼 밥상과는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이 작품에 등장하는 여러 가족들에게 서로 다른 의미로 설정한 부분이 퍽 흥미로웠습니다.
식구[食口]란 사전적 의미로 보면, ‘같은 집에 살며 끼니를 함께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한솥밥을 먹다’란 관용구도 있죠. 함께 뭔가를 먹는다는 의미에서 이 디저트가 가족에게 가지는 의미를 대입시킨 것은 절묘하면서도 주제와 잘 어우러져서 깊이 와닿았습니다.
어떤 가족에겐 초콜릿 케이크가 사랑이 듬뿍 담긴 화기애애하고 따스한 식사 마무리로서 놓이고 어떤 가족에겐 학대와 괴롭힘의 용도로 사용되고 어떤 가족에겐 그리움이 담긴 것인 동시에 원한을 떠오르게 하는 무엇이 되어 한 공간에서도 다른 의미로 놓여 있습니다.
전 이 작가님이 사물을 소설에 이용하는데 있어서 참 탁월하단 생각을 자주 합니다. 그 소설에 맞도록 의미를 변용하고 꼭 맞게 제자리에 잘 가져다둔다는 생각을 작가님의 여러 소설을 읽으며 항상 하거든요. 이 작품에서는 만년필이 그러했고 초콜릿 케이크도 그러했습니다. 만년필은 남편을, 초콜릿 케이크는 아내를 상징하는 것 같았습니다. 우아하고 고급스럽지만 펜촉이 뒤틀려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돼 포켓에 꽂혀 있게 된 만년필이나 남자에게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초콜릿 케이크가 그 안에 다른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에서 말이지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게 아니라 작품을 다 읽고나서야 그 의미가 깊어지고 아하, 그렇구나 싶게 만드는 솜씨도 일품입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는 좋은 작품이었습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며 예상과는 다른 진실이 드러나는 부분도 좋았고 저 아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부분도 이해가 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전 조금 의아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묘사한 사건이 너무 갑작스러우면서 살짝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요. 그럴 수도 있으려나? 오래 생각해보게 됐죠. 내용상 스포일러가 돼서 적지는 않겠지만 전 그 부분이 살짝 아쉬웠습니다.
살인은 어떤 이유에서든 용납할 수 없지요. 소설 속 내용에 비난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 남자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그냥 내버려뒀다면 더 분했을 거라고 아니 오히려 그렇게 돼서 읽는 독자로서는 통쾌했다고 고백하겠습니다. 물론 범죄는 용서할 수 없는 부분이라 저 여자의 행동을 잘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온 인생을 걸었고 반평생을 고통에 시달렸던 그것으로 이미 충분하지 않은가 생각하면 너무 관대한 걸까요?
초콜릿 케이크를 초콜릿 케이크 본연의 맛으로 남겨주신 부분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하거든요. (소설을 스포하지 않으면서 리뷰를 쓰기가 사실 더 어렵네요. 독자분들이 대체 이 사람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짜증내지 않을 범위에서 다 말을 하려고 노력중입니다만 역시 좀 그럴 거예요.)
*이 부분은 작품과 별 상관없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읽지 않고 스킵하셔도 됩니다. 외재적 비평이라고 말을 하고 싶지만, 사적인 이야기가 더 많아서 말이지요.
본의 아니게 연희 작가님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리뷰를 쓰고 싶은 충동이 들게 합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매번 작품을 읽을 때마다 리뷰를 작성하는 게 오히려 이상해 보이려나 싶지만 쓰고야 마네요. 이 작품은 테이스터 문학상 본심에 올라서 심사중인 작품이라 리뷰를 쓰지 말자 생각했는데 꼭 숙제를 안 한 느낌으로 자꾸 떠오르는데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생겨버려서 결국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연희 작가님은 플롯을 비비 꽈서 잘 마무리하는 능력이 탁월한 것 같아요. (표현이 저급해서 죄송합니다.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전에 쓴 리뷰에선 ‘뫼비우스의 띠’를 언급하기도 했지만 좀 더 연상되는 걸로는 제과점에 있는 꽈배기? 비비 꼬면서 결국 처음과 끝이 만나는 그 꽈배기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앞면, 뒷면, 옆면, 속에까지 다 보여주고 결국 처음으로 돌아와서 다시 보게 하는 구성 능력이 말이죠. 또 중국집 주방장이 탁자에 탁탁 쳐대는 길다란 반죽덩어리가 어느새 가느다랗게 균일한 면발로 가닥가닥 나눠진 걸 발견할 때 느끼는 신기한 경험을 소설에서 하기도 합니다. 다채롭다는 의미에서요. (음식 소설이라 음식들이 연상되는 모양입니다.) 솔직히 그 능력은 훔치고 싶습니다.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좀 하자면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이전 소설 <언니, 그냥 죽어>를 떠올렸습니다. 내용이 비슷하거나 스토리가 겹치는 건 아닙니다. 근데 떠올라요. 아마 <언니, 그냥 죽어>를 읽어보신 독자분이시라면 제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아실 거란 생각이 드네요.
그 작품은 저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니기도 합니다. 독자이자 리뷰어로서요. 그 작품은 제가 브릿g에 들어오고 얼마 안 돼 팔랑 팔랑 멋모르고 돌아다니던 시절에 발견한 소설이었어요. 물론 리뷰단 활동을 하기 훨씬 전이기도 하고 리뷰를 계속 쓰게 된 계기에 일조하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제가 무슨 비평가도 아닌데 왜 이렇게 리뷰를 많이 쓰고 있겠습니까. (물론 초반에 쓴 리뷰에 오란씨 깔라만시 상품을 덜컥 받아버린 것도 이유 중 하나이긴 합니다만. 흠흠.)
이 소설 리뷰는 제 세 번째 리뷰였어요. 이 소설을 읽고 좀 충격을 받아서 이끌리듯이 리뷰를 썼던 기억이 있네요. 뭔가 모르게 몹시 안타깝고 이 이야기는 해줘야겠다 싶은 그런 충동이 들게 했었거든요. 지금 같으면 쪽지를 썼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때는 멋모르던 시절이라서요. 먼저 쓴 다른 두 편의 작품에 대한 인상과 더불어 브릿g의 소설들에 대한 인상을 결정지어준 작품이었습니다. 뭔가 대단히 특이했어요. 그래서 리뷰를 썼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올라왔던 소설이었는데 한동안 소설을 안 올리시던 작가님이 이후 한편 한편 다른 소설을 올리시더니 이번엔 테이스터 문학상에 출품하시고 본심에 올랐단 소식을 사이트에서 발견하곤 몹시 기뻤습니다. 되게 이상하죠? 개인적 친분도 없고 그저 작품 읽고 리뷰 쓴 게 다인데 왜 내 일처럼 기뻤는지 모르겠어요. 그리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을 읽으면 <언니, 그냥 죽어>가 떠올라요. 소설 속에 ‘언니’가 나오고 ‘죽은 아이’가 있고 예기치 못한 ‘불행’과 그 ‘원한’을 간직한 마음이 있거든요. 근데 뭔가가 달라졌어요. 전 그 변화가 좋았습니다. 다행이다 생각했어요. 전에는 작가님이 작품 속에서 언니더러 그냥 죽으라고 했었는데 이제는 적극적으로 언니를 살리잖아요.
감나무에 올라타 빨간 줄을 끊으며 언니를 원망했다.
“죽지마, 언니. 나를 두고 죽으면 안 돼. 그럼 나쁜 사람이야. 제발 나를 두고 죽지 마, 언니. 나를 두고 죽으면 언니는 정말 나쁜 사람이야.”
이 부분을 읽으면서 전 기분이 아주 이상했습니다. 다른 소설의 다른 주인공들이 소설 속에서 비슷한 불행을 경험하는데 다르게 대처하는 두 모습에서 전자보다 훨씬 자란 듯한 성숙한 후자를 대하는 기분이었어요. 그 변화가 훨씬 좋아졌고 안타까움도 많이 덜어졌고요. 뭔지 모르게 안도감이 들었습니다. 이 기분은 어쩌면 <언니, 그냥 죽어>를 쓴 리뷰어라서 저만 느끼는 감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때 그 리뷰를 쓰고 작가님이 제게 쪽지를 주시면서 살짝 작가님 속내를 엿보게 되었지요. 그걸 생각하면서 전 여태까지 리뷰를 써왔어요. 작가남들이 원하건 말건 주구장창 계속이요. 리뷰어도 사람인지라 리뷰에 대한 솔직한 피드백이 있으면 좀 태도가 달라지거든요. 누군가 내 리뷰를 읽고 힘을 얻을 수도 있겠구나, 그런 믿음? (착각은 자유입니다.) 뭐 어쨌든 그랬는데 이번에 ‘독자들이 뽑은 리뷰어’에 제 이름이 오르게 되어서 당황스럽고 기쁘고 어떻게 해야 할지 참 난감한 기분입니다. 결국 그런 마음에 보답하는 길은 리뷰를 쓰는 것밖엔 없겠단 생각에 겸사겸사 이 리뷰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남의 작품 리뷰하면서 지 수상소감을 쓰고 있어 이걸 그냥 확!!! 그러실지 몰라 작가님께 죄송합니다.)
저는 전문 비평가도 아니고 그저 평범한 독자일 뿐이고 여긴 기라성 같은 다른 리뷰어분들 이 많고 그분들 리뷰 읽으면 저는 진짜 허접한 리뷰를 쓰는 사람인데 어쩌다 제가 뽑히게 되어서 사실 쥐구멍에 기어들어가고 싶은데 또 감사 인사는 해야겠고 늘상 자유게시판에 하는 ‘자랑질’을 하자니 다른 분들께 송구스럽고 제가 어떻게 리뷰를 그렇게 많이 쓰게 됐는지 설명하려다 보니 염치없이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게 됐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오란씨 깔라만씨 당첨과 연희 작가님의 쪽지가 제 리뷰 목록 리스트를 이렇게 길게 만들어 놓았다는 것을요. 저를 뽑아주신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사실 이제 리뷰 그만 써야지 했는데 또 리뷰를 쓰게 생겼습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연희작가님께도 좋은 결과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