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설
브릿지에는 ‘편집자의 선택’과 ‘편집장의 시선’이란 시스템이 있다. 그냥 편하게 주간우수작 정도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저번 달에 올라온 작품이 선정되기도 하는 등 여러 면모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주간우수작인 건 아니다. 그리고 주간월간의 개념이 아님에도 다시보는 베스트는 물론 내 안에서는 월간우수작이란 개념으로 어느정도 자리잡고 있다. 경향성이란 게 이래서 무섭다.
어쨌든 처음 들른 사람에게든 자주 접속하는 사람에게든 작품 선정에 많이 도움이 되는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런 시스템임에도, 사실 나는 이 시스템을 자주 이용하진 않은 편이다.
그렇다고 아예 이용하지 않는 건 아니다. 빙고 게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여러 작품을 봤지만, 한 줄을 꽉 채운 적은 없다. 메인에 올라온 베스트 작품들을 몇 개씩 찝어서 보긴 했지만 한 번에 올라오는 다섯 작품 전부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계속 마음 한 켠에 걸리던 일이라 이번 편집장의 시선에 꼽힌 다섯 작품을 모두 읽어봤는데, 읽어본 김에 다섯 작품 모두에 대한 단평을 남겨둔다.
순서는 클릭한 순서다.
…
시계 바늘 위의 선택
과용하면 패널티가 주어지는 시간 여행물이다.
읽고 나서 평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신기한 점은 엄청난 수작명작을 쓰려는 욕심이 느껴지는 글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러 면에서 ‘기묘한 이야기’라는 일본 드라마가 생각나기도 했는데, 결정적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린건 작품의 ‘평작지향적인’ 느낌 때문이다. 기묘한 이야기 시리즈는, 본 사람은 알겠지만 몇 백 편이나 나왔음에도 ‘지난 100년간 나온 작품 중 가장 뛰어난 작품’같은 수식어를 받을 만한 에피소드는 없다. 그렇지만 인기 시리즈고, ‘에어닥터’편처럼 사람들 뇌리에 깊게 박히는 작품들도 꽤 많다. 영화 같은 퀄리티를 뽑아낼 수 없는 예산과 일정, 인력, 러닝타임 등등이 이유겠지만(그래서 독특한 소재가 많은 편이다), 주객이 전도되듯 어느 순간부터는 그걸 일종의 스타일로 확립한 듯하다. B급 영화처럼. 그리고 이 작품도 꼭 100%들어맞지는 않지만, 그런 스타일로서의 평작 느낌이 나는 작품이었다.
줄줄이 길게 적었는데, 그냥 편집장의 시선에 나온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내 감상의 한줄 요약이 된다.
‘다소 상투적인 진행이 아쉬울 수 있겠다. 그러나 시간여행은 언제나 그렇듯, 기본적인 재미는 보장한다.‘
나를 부탁해
영혼 체인지 라는 소재의 재미를 새삼 깨달았다. 이건 반칙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소재 자체의 재미를 간결한 문장으로 잘 살린 작품.
세상 끝 브라우니
개인적으로 동화풍 소설을 싫어해서 이 작품도 아쉬웠다.
끝까지 안 읽을 수도 있었는데, 초반 부분이 재밌었던 것에 낚여서 다 읽었다. 아쉬웠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꼽자면, 초반부의 어두운 설정이 끝에서 해피엔딩으로 흐지부지 되는 점 때문일 것이다. 짧은 단편임에도 전반부와 후반부가 다소 따로 노는데, 대중적인 비유를 들자고 생각해보니 피자가 떠올랐다. 도우 싫어해서 도우를 남기는 사람도 있는데, 내게는 동화풍 스타일이 도우에 해당한다. 치즈와 토핑이 올라간 부분은 와 맛있다 하면서 먹다가 퍽퍽한 도우에서 실망하는 식으로. 하지만 ‘피자에 도우가 있어서 불완전하다.’ 이렇게만 보면 웃긴 말이다. 이렇듯 작품이 용두사미인 건 아니다.
스토아적 죽음
어느 순간부터인가 한 장르에 다른 장르를 섞는 게 유행을 하기 시작했다고 느낀 적이 있다. 아마 이런 경향은 수십년 전에도 있었을 것인데, 내가 태어난 이후의 어느 시점에서도 이게 유행을 했던 적이 있다. 그 구체적인 시기는 특정하기 어렵지만..어쨌든 그 경향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유명한 예로 ‘살인자의 기억법’처럼 일반문학을 쓰는 작가가 스릴러를 쓰는 식으로.
이 작품도 그런 경향이 보였다. SF와 스릴러를 엮는 작업.
SF와 스릴러를 엮는 건 그리 드문 작업이 아니다. 뛰어난 작품도 많이 나왔었고.. 하지만 이 글을 읽다가 이런 경향은 가까운 시점에 내파될 경향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SF스릴러라는 하나의 장르’를 구성하는 두 요소(‘SF’와 ‘스릴러’)가 실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나뉘어 있음을 문득 알아차렸다고 할까. 내파라는 말까지 쓸 것 없이 그냥 유행이 지날 거라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봐도 될 것이다. 모순이 드러난다면 독자들은 다른 것을 찾게 될 테니.
장르 자체에 대한 고민과는 별개로 작품은 뛰어나다.
뿔
일반문학 작품을 읽은 느낌이다. 일반문학도 여러 스타일이 있으니 이런 설명으로는 제대로 전달될 리는 없지만.. 억지로 말을 끄집어내 보자면 ‘초현실적인 소재로 담담히 서술하면서 인간관계에 대해 말하는’ 스타일의 작품이다.
초반부는 재밌었는데 끝에 가까워 갈수록 지치는 느낌이 조금 있었다. 단조로움을 의도했지만 그 단조로움이 단점으로 돌아오는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