넓은 우주가 아닌 지구 한정만으로도 시간을 공간으로 삼으면 참 광활한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해준 시간여행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H.G. Wells의 타임머신 이후로 자리잡은 시간여행의 미학이기도 하다. 굳이 애면글면 과거를 바꾸느라 패러독스에 빠지고 루프를 반복하며 고생하는 것 만이 전부가 아니다.
그렇게 오래전 접해본 고전의 미덕을 오롯이 물려받은 단편을 여기서 본다. 다른점이 있다면 H.G. Wells는 시간 저편의 미래를 뭉크의 우울한 분위기로 담아내었고 이 작품은 샤갈이 좋아할 법한 몽상적 분위기로 선보인단 점이다.
몽상은 호기심 만큼이나 미래에의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고전에 나온 달세계 여행이 이후의 미래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보면 말이다. 혹시 또 누가 알겠는가, 정말로 타임머신이 만들어질지.
작품에 나온 미래의 생물들 역시 과학 이론보다 상상력을 기반으로 자유롭게 창조해낸 것이 무척 즐겁게 읽혔다. 탐사대가 처음 접한 생물이 하필 악명을 떨친 어떤 영화가 연상되지만 말이다.-다행히 직접 보진 않았다- 최악의 첫 탐사를 뒤로하고 맞이한 두 번 째 미래 부터는 그걸 보상해주듯 환상적인 진화의 결과물들이 펼쳐진다.
단순히 생물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지각운동에 의한 환경의 격변도 짧지만 정성스레 묘사해 이야기의 디테일을 올려주고 있다. 아마 이런 세심한 부분들이 옆편을 중장편처럼 읽히게 해주는 요소일 것이다.
1억 년 단위로 시간 도약을 하는 탐사대에게 인류의 미래는 사실 중요한 관심사가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지구의 미래, 생명의 미래와 그 황혼을 탐사하고픈 호기심이 그들을 상대성 이론의 일방통행 여행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들의 결말은 우주 관련 다큐의 기억과 함께 얼추 예상이 되어버린다. 헌데 그 결말로 이어지는 과정이 마치 꿈속의 어딘가 처럼 아득하기 그지 없다. 역시 결말이 문제가 아니라 과정이 중요했던 것일까. 인류는 지구가 꾸는 꿈을 관측하기 위해 호기심을 가지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과연 영겁에 가까운 시간과 무한에 가까운 우주 속에서 생명의 정의는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이것은 SF를 보거나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호기심을 키우고 몽상을 자아낼만한 주제일 것이다. 그 작업은 아주 즐거운 시간낭비이거나 혹은 방구석 한정 시간여행이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