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승하세요, 곧 출발합니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닫혀 있는 방 (작가: 타우, 작품정보)
리뷰어: 파란펜, 18년 10월, 조회 81

이 소설의 제목은 참으로 고전적입니다. <닫혀 있는 방>이라니요. 그러나 스타일은 유행 따라 변하는 법이지만 클래식은 영원하다, 라는 말도 있듯이 저는 홀린 듯 <닫혀 있는 방>을 클릭해버렸습니다. 친근한 소재에 저만의 상상력이 뒤섞여 이 소설은 이미 제가 문을 열어 보기도 전에 저를 먼저 열어버렸지요. 제목부터 절반쯤 성공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하며 첫 문장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로 결혼한 지 딱 한 달째이다. 나는 시댁에서 살고 있다.

옳거니! 잘 골랐구나. 저는 결혼이란 굴레 속으로 스스로 걸어 들어간 자이니만큼 ‘결혼’과 ‘시댁’이란 단어에 즉각 반응합니다. 그만큼 몰입도가 치솟았지요. 게다가 하루 일과를 간략히 서술하는 일기 형식의 글쓰기로 독자에게 가독성을 선사합니다. 원래 남의 일기가 가장 흥미진진한 법이니까요.

결혼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새댁은 신혼의 단꿈을 펼칠 새도 없이 기묘한 시어머니와 동거를 시작합니다. 저는 오래 전 추억의 그 영화 <올가미>를 떠올렸지요. 기괴한 행동을 일삼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팽팽한 신경전이라니. 혹시 그 영화처럼 육탄전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예측해 보며 말이지요. 그러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이 소설 속의 행동파 며느리는 직접 집을 구해 탈출을 감행하지요. 바로 그 집에 ‘닫혀 있는 방’이 있습니다. (이것이 며느리의 죄의식을 구현한 장치라는 말은 분위기를 매우 딱딱하게 만들 여지가 있으므로 괄호 안에 가둬두기로 하지요.)

이사 후 회식과 야근이 잦아진 남편 때문에 그녀는 혼자 망부석처럼 집을 지킵니다. 상상력은 정적 속에서 뭉글뭉글 피어나는 법. 때맞춰 닫혀 있는 방안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여기까진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개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여 닫혀 있는 방안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부부는 행복하게 잘 살았다, 라고 이야기가 끝난다면 독자인 저는 크나큰 배신감을 느꼈을 테지요. 작가는 이를 위해 장르소설의 중요한 수칙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는 ‘옜다 던져주기’ 기술을 시전한 것이지요. 작가는 독자가 원하는 것을 반드시 보여 주어야 한다, 라는 규칙 말입니다. 독자는 금단 증상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초조하게 손을 빨며 기다리는 법이니까요.

그리고 예상했던 일이 일어났을 때의 안도감을 느낄 새도 없이 ‘어서 내 등을 떠밀어줘!’라고 마조키스트처럼 외칩니다. 작가는 기다리지 않고 기기묘묘한 에피소드를 사탕처럼 연달아 내밀며 독자를 후룸라이드의 최상부로 유인하지요. 그리고 정확한 타이밍에 등을 확 떠밀어버립니다.

도착해 눈을 떠보니 저는 지하철 의자 한 귀퉁이에 앉아 있었습니다. 제가 내려야 할 신당역에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해 있었지요. 저는 흐뭇한 미소로 자리에서 일어나 출입문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환승 통로를 걸어가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속으로 빠져들었지요.

<닫혀 있는 방>은 며느리들이 겪기 마련인 시부모에 대한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드러낸 소설인가? 아니다. 그렇다면 비밀스러운 공간에 대한 보편적인 상상력을 무의식적 공포와 결부시킨 소설인가? 아니다. 이건 식상한 평가다. 그렇다면 한 인간의 광기가 어디까지 치달을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소설인가? 죄의식이 광기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린 가정 소설인가?

저는 결국 이렇게 생각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었지요.

작가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 정성이 독자인 나에게 전해졌는가?

그렇다.

을지로3가역에 도착한 저는 결국 ‘나도 이런 소설을 써보고 싶다’라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그러자 눈앞에 보이는 행인들이 죄다 좀비로 변하는 상상을 하게 되었지요. 드높은 을지로의 가을 하늘에선 우주선이 출몰하고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작가가 가진 가장 큰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상상력을 추동하는 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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