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시골 마을 그리고 할머니 감상

대상작품: 할머니 이야기 (작가: 연희, 작품정보)
리뷰어: 글포도, 18년 9월, 조회 44

어쩌다 보니 연희 작가님의 작품을 세 번째 리뷰하게 되었네요. 명절에 고향에 못 다녀온 탓인지 가을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 문득 읽고 싶어서 이 소설을 다시 읽었고 읽다 보니 리뷰도 쓰고 싶어졌어요. 시골의 느낌이 물씬 나는 소설로는 이것밖에 떠오르질 않아서요. (아직 브릿G 독서 체험이 적다 보니 어쩔 수 없네요.)  언제나처럼 주관적인 감상입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어요. 광활한 벌판이 펼쳐져 있고 빈집이 많고 그런 시골이 아니라서 그런지 산으로 둘러싸여서 오히려 아늑한 느낌이 더 강하고 그랬던 곳이었죠. 그래서 시골이 주는 공포보다는 여기저기서 나는 과실과 열매들의 풍요로움과 오다가다 들리는 이웃들의 손에 들려 있는 야채 꾸러미, 과일바구니, 김치부침개와 막걸리가 주인 없는 집에도 놓여져 있고 이 집게 저 집에 저 집게 이 집에 막 뒤섞여 이동되곤 하는 그런 곳이라 마을 사람들이나 사실 시골 풍경 자체가 공포스럽다는 생각을 하고 자라진 않았어요. 가끔은 이웃들이 성가시거나 너무 참견을 많이 하는 것 같아서 싫을 때는 있었어도 적어도 시골 풍경에서 오는 공포를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시골의 괴기스러움, 공포스러움을 실감했다면 이 소설에 대한 칭찬으로 충분할까요? 그냥 소설을 읽는 것만으로도 시골 풍경의 적막함과 짙은 어둠이 공포스러울 수도 있다니요. 쌓이고 또 쌓인 흰눈으로 뒤덮인 하얀 풍경이 그토록 무서울 수 있으리라곤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요. 더구나 길가에 앉아 있는 할머니들도 자주 보곤 했는데 무섭다고 생각했던 적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 이 소설을 읽다 보면 그런 평범한 것들이 무서워집니다.

쓸쓸히 놓여 있는 길을 혼자 걸어가는 남학생의 심리가 아주 잘 묘사 돼 있고 그 시골 풍경만으로도 전해지는 공포가 내 것처럼 생생히 전달 돼 와요. 처음 도시에서 시골로 이사 간 귀촌 가족의 공포는 또 다른 공포로 소설의 한 축을 이루고 있어요.  삶의 뿌리가 흔들리는 가족들이 느끼는 불안과 텃세가 강한 마을 사람들에게서 느껴야 하는 곤혹스러움도 잘 표현 돼 있습니다. 삶에 시달리고 생존에 매달리는 그 가족의 노력 자체, 살이 마르고 뼈가 도드라질 정도의 노동, 이웃과 어울리기 위해 배로 노력해야 하는 귀촌인의 설움 같은 것도 일상을 위협하는 공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아요.

그 마을은 충청남도 산골의 김씨 집성촌이랍니다. 할매 괴담이 있다고 해요. 그냥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오가던 이야기라서 처음엔 학교괴담처럼 아이들끼리 무서워하고 말 그런 이야기로 생각했어요. 초반에 그것으로 인해 발생한 일 때문에 주인공이 엄마에게 등짝을 맞게 되는 부분에선 살짝 웃기면서도 슬프기도 했고요. 그리고 결국 이야기는 진짜 공포로 한 발짝 내딛게 돼요. 그리고 결말까지 정말 소름 돋는 이야기였어요.

 

이런 소설로 고향에 대한 향수를 달래려 하는 건 좀 이상한가요? 근데 묘하게 전 그게 돼 버렸어요. 시골은 이렇게 공포스럽다니까? 못 가도 그리워 할 필요 없어….  혹시 저처럼 고향에 못 다녀오신 분들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그게 된다니까요. 농담이고요. 그런 것 아니라도 그냥 심리적 공포의 진수를 맛보고 싶으신 분은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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