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전에 쓴 리뷰도 진입장벽에 관한 이야기였다.
등장인물 소개라도 얼마간 적어두면 입문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지 싶다. 나는 추리소설을 읽을 때 등장인물들과 그들의 행동, 배경설정 등을 정리하면서 읽기도 한다. 추리를 해보기 위해서다. 이렇게 정리를 하면 등장인물과 그에 따른 정보가 많더라도 혼란이 잘 오지 않는다.
인물에 대한 이해는 독자마다 다를 거고, 자세한 행적은 작품을 읽을 때의 재미니 간단하게만 적어둔다.
칸 직계.
야와우르-칸. 쉽게 설명하자면 황제.
어치르-첫 째 왕자. 늑대가 별명임. /사랄출룬-어치르의 참모.
오르-둘 째 왕자. 도서관에서 첫 등장.
차우마랄-장녀이자 셋 째. 동호변경백 쪽 사람.
살리흐-셋 째 왕자. 무인으로 유명함.
마모치아누-넷 째 왕자.
요직.
네르구이-세첸. 칸의 참모. 재상 같은 위치. /보긴 에웨르-네르구이의 부하.
콘크코노이 백작-만장(대장군 개념) /자드-천장
수부타이-만장.
사호변경백.
바타르-동호변경백. /카르바르가-바타르의 아들.
나르 두르-서호.
자가쉬 야블라그-남호.
우얼 무르뜰-북호. /안다 출루-우얼 무르뜰의 부하.
이 작품의 도입부는 이 인물들이 누구이며 누가 누구와 편을 먹고 싸우느냐에 대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우선 밝혀두자면, 예전에 읽다가 하차한 적이 있는 작품이다.
아직 이 작품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던 터라, 다른 사람의 리뷰가 올라오면 읽어보고 적당히 생각을 정리해서 리뷰를 올릴 생각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불안함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룬 작품이다보니, 이 작품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좀 더 알고 싶었다. 그래서 미리 리뷰를 써둔 채 다른 사람의 리뷰가 올라오길 기다리기도 했다.
추천글에선 낯선 용어 설정이 진입장벽이라고 나와 있지만, 나는 사호변경백을 공작이나 백작으로 바꾸고 왕자들 이름도 한스나 카인으로 바꿨어도 그리 가시적인 효과를 바랄 수는 없었을 거라 생각한다. 낯선 용어 설정이 진입장벽이 될 수는 있지만, 내게 보이는 벽은 그보다 크다.
7천매가 넘어가는 분량에도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읽었다. 800매를 한 권으로 치면 아홉 권이나 되는 분량이긴 하지만, 수십 권씩 나오는 판타지, 무협 소설들에 적응이 된 탓이다. 7000매 쯤이야, 정말 재미만 있다면 일주일 안으로 다 읽지!
그런데 그런 자신감이 무색하게 이 글은 좀 넘기기 힘들었다.
읽으면서,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던 시절이 생각났다.
왕좌의 게임은 시즌5까지 봤는데(끝까지 보지 않은 이유는, 너무나도 좋아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아껴두고 있다. 완결도 얼마 안 남았고), 지금 이렇게나 좋아하는 것이 무색하게 시즌1 때만 해도 온갖 욕을 다 하면서 봤다. 지루해! 재미없어! 이게 왜 imdb에서 평가가 그렇게 높아? 다들 날 속였어!
차라리 본방사수라도 하고 있었더라면 꾸역꾸역 티비 앞에 앉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아서 정말 매번 스스로의 인내심을 깎아가면서 봤다. 왜 참고 봤냐면, 솔직히 말해서 그냥 다들 워낙 명작이라 칭송하는 작품이라 봤다. 아무런 유명세도 없었다면 보다가 그만뒀을 것이다. 그정도로 시즌1은 내겐 최악의 미드였다. 더 최악의 미드도 있겠지만, 그런 미드들은 중간에 하차했으니까. 그나마 7화 넘어가면서부터 슬슬 탄력을 받았지만…시즌1을 다 보는 데에 19일이 걸렸다. 어떤 영화를 휴식시간마다 5분 10분씩 끊어서 꾸역꾸역 봤을 때 정도는 아니지만, 괴롭기는 더 괴로웠다. 아마 아무런 의무감도 없고 빨리 시즌1을 다 보고 이 고통을 끝내겠다는 생각도 없었다면 훨씬 길어졌을 것이다.
하늘의 아이들은,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읽는 경험은 여러 면에서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던 경험과 비슷하다.
다소 오해의 여지가 있을 수 있으니 밝혀두자면, 작품이 잘못 됐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 작품도 왕좌의 게임 시즌1도, 수준이 낮은 작품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수준이란 것은, ‘작품에 공을 들인 게 느껴지는 점’, ‘유치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없는 점’이다. 실제로 프롤로그만 읽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웃음기 싹 빼고 쓴 글이라는 점을.
그러나 꾸준한 연재와 편집자의 추천에도 불구하고 괄목할 만한 성과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그동안 보고 들은 것에 근거해 몇 가지 의견을 풀어보고자 한다.
우선 브릿지에서는 작품에 대한 정확한 조회수를 독자가 상정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애매한 수치만이 나뭇잎으로 표시될 뿐인데, 이래서는 연독율을 알 수 없다. 다만 다행이랄지, 이 작품에는 꽤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
프롤로그격인 ‘0. 푸른 궁전’에는 나뭇잎이 세 개이고, 바로 다음 편인 ‘1. 사호변경백四護邊境伯 (1)’에는 나뭇잎이 하나이다. 2화에서 시작된 나뭇잎 하나는 최신 연재분까지 쭉 이어진다.
내가 작가라면, 왜 1화 다음부터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 건지 궁금할 것 같았다. 나도 1화를 읽다가 하차한 독자였지만, 리뷰 공모 중이기도 하고 추천글도 있던 터라 계속 읽었다.
이 작품의 진입장벽은 1화만 봐도 느껴진다. 1화 만에 나뭇잎 두 개가 사라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더욱 문제는 1화만 문제라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추천글에 보면 이런 글이 적혀있다. 편집장의 시선에서도 대강 비슷한 어조로,
‘모두의 관심 아래 순조롭게 진행될 거라 믿었던 옥패수탐은 예상 밖의 난관에 봉착하고, 제국의 앞날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길로 나아간다.’
라고 한다.
작품소개를 보자.
‘거대한 초원의 제국을 지배하는 대칸이 쓰러지고,
그 자리를 두고 다투는 대 쿠릴타이와 옥패수탐이 시작된다.’
어차피 작품소개에서부터 내용을 말해줬으니 그냥 얘기를 풀어보자. 자, 옥패수탐은 언제 시작하는가?
‘시작은 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3. 난신적자亂臣賊子 (1)’편이다. 내 기준에서는 그곳도 시작은 아니다. 시작은 좀 더 천천히 시작한다. 하지만 난신적자 1편까지 가는 데에만 597매가 소비되었다.
브릿g에서는 한글에서 매수를 재는 것에 비해 매수가 많게 나오는데, 그것까지 고려하면 700매 정도는 될 것으로 짐작된다. 이정도면 책 한 권 분량이다. 진입장벽이 책 한 권 정독하기다. 이 정도면 연재 소설에서만의 진입장벽이 아니다. 재밌는지 어떤지 보기 위해 책 한 권을 사면, 나는 어지간해선 끝까지 읽는 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책 한 권을 다 읽어도 벽을 넘지 못한 셈이 된다.
스토리 수정이나 캐릭터 조형 변경이 필요한 건 아니라고 느껴진다. 리뷰를 쓸 때마다 도입부를 길게 적는 것에 비해 할 말은 언제나 간단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화법을 바꿨으면 좋겠다. 도입부가 이렇게 길 필요가 있었나 싶다. 결국 독자가 보고 싶은 건 작품소개에 쓴 부분이니까. 좀 더 진입장벽이 느껴지지 않게. 작가가 많은 독자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지만…그게 아니더라도, 이 작품이 입지전적인 성과를 이뤄 명성만으로 진입장벽을 넘게 만드는 미래도 꿈꿔볼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