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러 장르, 공포를 주는 측면에서 공모 브릿G추천

대상작품: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요? (작가: 서승원, 작품정보)
리뷰어: Enlil, 18년 7월, 조회 63

공감 능력이 극도로 부족한 초등학교 5학년생 ‘나’가 TV에 나온 교수가 정의한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공감하기 위해) 곤충을 해부하고, 동물을 해부하고, 그럼에도 찾지 못해 결국 동급 학우까지 해부하는 것이 이 글의 줄거리다.

이것이 글의 전부나 마찬가지이므로 이타·배려·우정 같은 것들의 설교나 필요성 따위가 리뷰에 들어설 일은 적어도 내 리뷰에선 없다. 따라서 교훈적인 내용보다는 즐거움, 호러/스릴러 같은 장르들이 주는 원초적인 감정인 공포를 독자에게 얼마나 잘 선사했는지 봐야 할 텐데, 그런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앞선 리뷰(각, 루주아 저, 예정된 결말)에서 이미 언급된 것처럼 전개가 너무 뻔하다는 것이 그것이다. 해부 대상이 점진적으로 바뀌는 것은 공감 능력의 부재를 겪지 않는 일반 사람들이 볼 때 분명 그럴듯해 보이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쉽게 파악되고 공포가 반감된다. 알고 당해도 무서운 것이 있기는 하지만 모를 때 당하는 것보다 덜한 것은 자명한 사실. 게다가 당한 것은 압도적으로 무섭지도 않고 그저 살짝 싸늘하기만 하다.

왜 뻔하느냐. 사이코패스는 이해 불가능한 행동을 한다. 사이코패스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사이코패스는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사이코패스는 무섭다. 이 글은 그러하지 못했기에 뻔했다. 사이코패스를 ‘나’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시종일관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글은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곧, 독자들에게 ‘나’라는 사이코패스를 파악하고 비록 상식적이진 않지만 이해되게끔 만든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나’가 불쌍하다. 공포가 아니라 안타까움, 연민을 느낀다. 공포를 위해서였다면 ‘나’의 모든 것을 보여주지도, 보여주더라도 이렇게 불쌍하게 만들면 안 되었다. 공포가 우선이었다면 ‘나’가 이야기를 이끄는 게 아니라 다른 이가 이끌어야 했다. 호러, 추리/스릴러 장르 측면에서 이 글은 실패했다.

예상되는 시나리오로 글이 흘러가고 끝이 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은 꽤 강력하다. ‘나’가 벌이는 행위들이 적절하고 좋은 디테일로 표현되고 ‘나’의 모습·생각·말투들 또한 끊기거나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러웠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었을 것 같은데, 분명 내 착각은 아닐 것이다. 공포를 주는 측면에서 글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건질 수 있다면 바로 이것일 것이다.

 

ps. 문제는 명백하다. 정직한 글쓰기가 중요하기도 하겠지만, 호러, 추리/스릴러 장르에서는 아니다. 플롯을 꼬거나 다른 시각으로 보거나 하는 등의 글쓰기 방식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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