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결 작품에 대한 리뷰를 쓰는 건 처음이라 두서 없는 리뷰가 되어버렸네요. 작가이든 독자이든 필요하거나 공감하는 부분만 적당히 참고해 주시길 바랍니다.
고등학교 2학년 남녀의 아직은 여린 감정과 고민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학창 시절의 일기장을 읽는 느낌이 들 정도로 현실적이고 공감도 높은 묘사가 이어져요. 지금 당장이라도 싸이월드 일기장에 비슷한 얘기를 쓰지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에 시달릴 정도로. 작가가 조금 소심한 10대 소년소녀의 심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또 그만큼 두 주인공 각각에 대한 이해도나 공감도가 높다는 걸 금방 느낄 수 있었어요.
10대의 풋풋한 감성 어쩌구하는 단어는 진부하면서도 아무런 의미도 포괄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10대를 어떻게 보냈는지는 모두 다르니까. 풋풋했던 사람이 있는가하면 사막처럼 건조했던 사람도 있을거고 태풍 속 바다처럼 험난했던 사람도 있겠죠. 물론 어느것이 더 좋다고 할 수도 없고. 그래서 저는 어떤 매체든 10대 연애물에는 별로 공감을 못했어요. 딴 세상 얘기처럼 느껴졌죠.
하지만 이 작품 속 세영에게는 제법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평소엔 주변 사람에게 별로 관심이 없고 사교에 적극적인 것도 아니며 일단 자기가 잘못한 걸 먼저 생각해 움츠러드는 소심함이 있다든가. 아, 그리고 수학을 좋아한다는 거.
예은은 아마 아직 감추고 있는 과거가 있어서 당장 공감을 표하기는 조금 어렵지만, 그래도 아래의 내용에는 굉장히 공감이 갔었어요.
어느샌가 깨달았다. 고민을 털어놔도 해결이 되진 않았다. 나는 위로를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
고민은 나누면 나눌 수록 가벼워지지 않았다. 혜경이한테 똑같은 짐을 들게 했을 뿐이었다.
…
그러니까 둘 중 하나였다. 나를 이해할 생각이 없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거나,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거나.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해결을 향해 조금이라도 나아가지 않는 이상 나누든 부수든 고민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과 공유해서 도움이 되는 거라면 해결책을 발견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일 수 있다는 거겠죠. 그리고 그런 공유도 상대방에게 무겁든 가볍든 짐을 지운다는 건 사실이고, 특히 상대방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땐 상대방은 그저 괴로울 뿐이죠.
다가옴과 멀어짐 또는 선을 긋고 지키거나 넘는 것에 대한 세영과 예은의 고민들이 얼마나 일반적인 건지는 모르겠어요. 누구나 했던 고민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전 굉장히 개인적인 기억과 겹쳐지며 와닿았고 읽은 만큼이나 옛기억들을 떠올렸어요. 그래서 ‘짝사랑 문제’는 읽는 이에 따라서는 혹은 누구나 자신의 옛 고민이 투영된 것처럼 몰입을 할 수 있을 만큼 고민과 감정의 디테일이 뛰어나다고 생각해요. 섬세하면서도 간단명료한 문장들이 그 디테일들을 더 뚜렷하게 해주고.
여기까지 쓰면서 줄거리에 대한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어요. 아직 완결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이렇다할 사건이 눈에 띄지 않았어요. 그저 두 사람의 다가섬과 멀어짐, 그리고 그 주변의 산발적인 일들이 이어져요. 완결이 나면 모든 게 이어질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시점에서는 흐르지 않는 호수의 나룻배 두 척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느낌이에요. 브라운 입자처럼 가까워졌다거 멀어지고 때론 부딪히지만, 결국은 호수에 머무르는. 이야기는 분명히 진행되고 있고 인물의 관계도 조금씩 달라지고는 있지만, 계속 읽게 되는 원동력은 이야기가 아니라 위에서 얘기했던 공감요소들과 질문들 때문이었어요.
인물들의 감정 묘사 뿐만이 아니라 꼼꼼하게 짜여진 복선이나 질문에도 많은 정성을 투자한 건 분명해보이지만, 덕분에 도리어 이야기 진행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졌어요. 복선과 질문의 의미에 대한 궁금증은 있었지만,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궁금증은 적었다고 이야기해야 할까요? 그래서 지금까지 연재분량을 읽고 나면 인물들이 굉장히 와닿았다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질문에는 대답할 게 바로 떠오르지 않아요. 앞서 말했지만, 미완결 작품이에요. 그래서 다음화도 궁금해요.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날지가 궁금한게 아니라 작품 속에서 던져졌던 질문들의 답이 궁금해요. 노트의 행적, 젖은 실내화 가방, 예은의 과거와 기도, 세월호, 화재와 소화기 등등.
어느 정도는 작가의 의도라고 생각해요. ‘일상‘ 속 소중한 또는 중요한 것들을 그리는 것. 그러면서 질문을 던지는 것. 하지만 장편에서는 다음 이야기를 궁금하게 만드는 동력원이 필요하고 일상은 그것 자체만으로는 동력원으로서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단편이나 옴니버스에서는 굉장히 효과적일 수 있지만요. (브릿G에서 읽은 작품 중엔 BornWriter님의 ‘카나엘 디아즈의 하루’가 특별한 일 없는 일상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단편이었어요. ‘짝사랑 문제’와 비슷한 건 아니고 그냥 참고로만.)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세영과 예은이 별개의 인격체로 느껴지지가 않았던 거 같아요. 비슷한 성격과 어투 때문일 수도 있겠고 그래서 두 사람이 가까워질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죠. 하지만 시점이 빈번하게 교차되고 있다보니 같은 사람의 다른 모습처럼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같은 사람이라도 때와 장소에 따라 사고와 감성이 모드를 바꾸는 것처럼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세영과 예은은 마치 서로 다른 모드에 있을 뿐, 결국은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의 의도인지 제 착각일 뿐인지는 모르겠지만요.
많이 공감할 수 있었던 이야기였던 만큼, 세영과 예은의 이야기 속 종착점을 보고 싶어요. 두 사람의 감정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부디 무사히 완결을 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