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나는 아직 어렸습니다. (작가: 납자루, 작품정보)
리뷰어: 한켠, 18년 6월, 조회 208

이 작품을 읽으며 한국전쟁 때 학도병이었던 동성중학교 3학년 이우근 군이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가 떠올랐습니다. 리뷰의 제목은 그 편지의 한 구절에서 따왔습니다.

<나는 아직 어렸습니다>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군인이 어머니께 쓰는 편지 형식입니다작가님은 베트남 전쟁의 쟝글(정글한복판에서 어머니께 쓰는 편지에서 주인공 뿐 아니라 다른 병사들의 사연을 하나씩 들려줍니다그러면서 전쟁터에서 죽은 군인들이 한 사람의 인간이었다고 호명하지요.

편지를 보내는 는 가난한 집안의 아들이고누나의 사랑하는 동생이며평범한살아 있었다면 영화 <국제시장>의 주인공처럼 살았을 인물입니다그는 전쟁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군복 입고 총 들고 서울 시내를 멋들어지게’ 행진하고 와서는 전쟁터에서 무서움에 떨고 있는 아이입니다.국가는 그에게 전쟁이 무엇인지베트남 전쟁이 어떤 전쟁인지 알려주지 않았습니다그는 국가에게 기만당했지요국가가 파병하지 않았다면 베트남에 갈 일도 없었겠지요.

베트남 꼬마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쪼꼴렛을 주던 화전민의 아들 형석이는 어머니를 부르며 총에 맞아 죽고농담을 잘 하던 소작농의 막내아들은 부비트랩에 죽었습니다어부의 아들은 전우의 죽음에 통곡합니다홀어머니 등에 업혀 육이오 때 월남한 말석이는 사랑하는 베트남 여자와 결혼해서 베트남에 정착하려고 했지만 다리가 잘리고 그 이후 소식이 없습니다.대학물 먹었고 전쟁터에서 데미안을 읽던 동규는 미친듯이 총을 쏩니다. ‘는 ‘나는 어른만치로 자라지 못했나 보오라고 편지를 끝맺습니다.

화자는 이들이 좋은 놈이었다고 합니다그러면 누가 나쁜 놈일까요적은 누구일까요?

베트남인에게 미국은 침략국이고한국도 미국의 편을 든 침략국이고한국군은 무고한 베트남 양민을 학살했습니다.베트남 전쟁은 정의로운 전쟁이 아니었습니다물론 일부한국군은 양민학살을 하고 일부’ 한국군은 베트남 민간인에게 친절했겠지만 일부 착한 일본인이 있어도 일제의 식민지배는 정당화 될 수 없고나치 독일에서 독일의 군인/공무원으로서 성실하게 국가를 위해 일하며 유대인을 학살하다가 트라우마에 시달렸다고 해서 그 독일인을 피해자라고 하긴 어렵지요.

한국군과 베트남 여성이 애틋하게 사랑할 수 있지요개인은 개인이니까요그렇지만 평범한 일본청년이 대동아 공영권이라는 국가의 거짓말에 속아 징집되어서 군인이 된 와중에 조선여자와 사랑에 빠지는데종군위안부나 조선인 탄압이나 태평양 전쟁에 대한 언급이 없으면 현대 한국인 독자는 이걸 그냥 사랑 이야기로만 감상하기가 어렵습니다.라이따이한과 베트남 여성 강간에 대한 언급 없이 한국군인과 베트남 여성의 사랑 얘기가 나오는 게 불편한 이유입니다. 미군이 양공주에게 몇 번 쓸 돈으로 한국여자랑 연애한다고 다른 미군들이 놀리고 그 미군이 수줍어하는 이야기는 그냥 그 미군이 순정파구나, 하며 읽을 수 있을까요?

베트남 꼬마에게 쪼꼬렛을 주는 한국 군인의 이야기는 개인의 선함보다는 ‘후진국에 대한 시혜와 동정’으로 느껴집니다. 우리에겐 한국 꼬마가 미국 군인에게 ‘김 미 쪼꼬렛’하며 따라다녔던 과거가 있지요.

나와 전우들은 부모의 아들이며 ‘아이’입니다. 군인들의 나약함과 순수함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님은 이런 설정과 비유를 사용하신 듯 합니다. 그러나 이들이 ‘아이’가 되면 ‘어른’의 성찰과 반성과 죄책감은 없어집니다. 아이는 무지하고 연약하고 원망하는 피해자 밖에 될 수 없지요.

알렉시예비치의 <아연소년들>은 소련아프간 전쟁 참전 군인,유가족의 인터뷰를 모은 목소리 소설입니다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자국 젊은이들에게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을 재건한다고 거짓선전했습니다자원해서 참전한 소련군 젊은이들이 아프간에서 본 것은 국가의 거짓말,아프간인들의 적의였고 귀국 후 이들은 국가의 무관심, 자신들이 애국심으로 참전한 전쟁이 부정의한 전쟁이었다는 비판, 전쟁 트라우마와 맞닥뜨립니다전우의 사지를 잔인하게 훼손한 아프간인에 대한 적개심국가에 속고 버림받았다는 배신감소련군에 아이를 잃은 아프가니스탄 어머니를 생각하는 소련군 전사자의 어머니이 다양한 목소리들 속에서 소련군은 개인으로서는 전쟁의 피해자이며 국민/군인으로서는 가해자가 되고하나의 사람이 됩니다알렉시예비치가 아프간인의 매복 공격에 전우를 잃은 소련군의 인터뷰만 모았다면 이 목소리 소설은 소련의 프로파간다에 지나지 않았겠지요.  

베트남 전쟁은 끝났지만참전 군인들은 고엽제 후유증이나 부상 후유증트라우마에 대한 치료와 배상을 제대로 받지 못 했고한국 정부는 베트남에서의 양민 학살에 제대로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2015년에는 베트남 참전 군인들의 단체가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양민학살과 집단 강간 피해자들의 증언을 방해하며 반대시위를 하기도 했습니다그들은 베트콩이 민간인으로 위장했기에 베트콩을 죽인 것이지 민간인을 죽인 건 아니었다고 했지만 한국군은 여성과 아이들도 죽였지요. (베트남 정부가 베트남은 승전국이기 때문에 한국 정부의 사죄를 원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죽거나 강간당한 베트남 개인에게는 사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박정희 정부가 한일 협정을 하고 박근혜 정부에서 위안부 합의를 했더라도 일본이 피해자들에게 사죄해야 하는 것 처럼요.)

전쟁은 잔인하고 참혹합니다인간성을 말살하지요전쟁영화의 스펙터클이 아니라 공포가 군인들의 현실입니다전쟁의대의가 어떻건 전쟁에서 일반 병사는 총알처럼 소모될 뿐입니다작품 속에서 이를 반복적으로 생생하고 처절한 묘사를 통해 전달합니다이 작품의 배경이 가상의 전쟁이었다면 그 주제를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그러나 충분한 사죄와 배상이 이루어지지 않은 지금, 우리도 피해자였다고만 하는 것은 또 다른 기만과  잔인함이 아닐까요.

이우근 군의 편지 전문은 아래와 같습니다.

 – 어머니께 보내는 편지

서울 동성중학교3년 학도병 이우근 

어머님! 나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그것도 돌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명은 될 것입니다. 저는 명의 특공대원과 함께 수류탄이라는 무서운 폭발 무기를 던져 일순간에 죽이고 말았습니다. 수류탄의 폭음은 저의 고막을 찢어 놓고 말았습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에도 제 귓속은 무서운 굉음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어머님!괴뢰군의 다리가 떨어져 나가고,팔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너무나 가혹한 죽음이었습니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도 사람이라고 생각하니더우기 같은 언어와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하고 무겁습니다.

어머님!전쟁은 왜 해야 하나요.이 복잡하고 괴로운 심정을어머님께 알려드려야내 마음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저는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지금 저 옆에는 수많은 학우들이죽음을 기다리고 있는 듯,적이 덤벼들 것을 기다리며뜨거운 햇볕 아래 엎디어 있습니다. 저도 그렇게 엎디어 이글을 씁니다. 괴뢰군은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언제 다시 덤벼들지 모릅니다. 저희들 앞에 도사리고 있는 괴뢰군 수는 너무나 많습니다. 저희들은 겨우 七一 뿐입니다. 이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무섭습니다. 어머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님!어서 전쟁이 끝나고 “어머니이!” 하고 부르며 어머님 품에 덜썩 안기고 싶습니다. 어제 저는 내복을 제 손으로 빨아 입었습니다. 비눗내 나는 청결한 내복을 입으면서저는 한 가지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어머님이 빨아주시던 백옥 같은 내복과제가 빨아 입은 그다지 청결하지 못한 내복의 의미를 말입니다. 그런데. 어머님, 저는 그 내복을 갈아입으면서, 왜 수의를 문득 생각 했는지 모릅니다.

어머님!어쩌면 제가 오늘 죽을지도 모릅니다. 저 많은 적들이 저희들을 살려두고그냥은 물러갈 것 같지가 않으니까 말입니다. 어머님, 죽음이 무서운 것은 결코 아닙니다. 어머니랑, 형제들도 다시 한번 못 만나고 죽을 생각하니,죽음이 약간 두렵다는 말입니다. 허지만 저는 살아가겠습니다. 꼭 살아서 돌아가겠습니다. 왜 제가 죽습니까, 제가 아니고 제 좌우에 엎디어 있는 학우가 제 대신 죽고 저만 살아가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천주님은 저희 어린 학도들을 불쌍히 여기실 것입니다.

어머님 이제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되군요. 어머니, 저는 꼭 살아서 다시 어머님 곁으로 달려가겠습니다. 웬일인지 문득 상추쌈을 재검스럽게 먹고 싶습니다. 그리고 옹달샘의 이가 시리도록 차거운 냉수를벌컥벌컥 한없이 들이키고 싶습니다.

어머님!놈들이 다시 다가 오는 것 같습니다. 다시 또 쓰겠습니다. 어머니 안녕! 안녕! 아뿔싸 안녕이 아닙니다. 다시 쓸 테니까요….. 그럼…. 이따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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