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한 배우를 슈퍼스타반열에 올린 영화 시리즈가 있다
비록 우리나라에서의 흥행성적은 죽쒀먹은 수준이었으나 월드와이드 흥행이 엄청났던 덕에 꽤나 화제가 되었던 <헝거게임> 시리즈가 그 주인공이다
당시 한참 외서에 관심이 많았다
헝거게임이 속해있는 장르에 특히 꽂혀 있어 신간 리스트를 꿰고 다니고 어떤 책이 어떤 평을 얻고 있는지 어느 작가가 요새 떠오르는지 등등을 촘촘하게 기억하고 다닐 정도로 관심을 쏟곤 했는데, 영화와 동명인 원작은 특히나 좋은 리뷰가 많아 읽기 전 많은 기대를 했던 게 기억이 난다
텁텁 모래냄새가 날 것만 같은 가난한 마을, 억센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주인공, 그리고 스피디하게 꼬리의 꼬리를 무는 문장
책을 처음 읽으며 독특하다고 생각했던 점은 바로 ‘~한다’와 같이 현재형으로 갈무리되던 문장의 형태였다
최초의 시도는 물론 아니었겠지만 보통 읽던 책들이 과거형의 모습을 취햇던 것에 비해 다소 특이한 느낌을 주는 화법이었기에 신선하다고 느꼈던 것이 기억난다
듣던 대로 책도 꽤 재미있었다
속도감이 있었고, 갈팡질팡하는 주인공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었고, 주어진 상황을 어떻게 타개해나갈지 상상하는 즐거움도 있었으니까
단순히 한 시리즈의 위상으로 끝맺음되는 것이 아니라 이 책 덕분에(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해리포터, 트와일라잇의 영향을 받아 시장에 마구잡이식으로 쏟아져 나오던 영어덜트 신작들의 키워드에 ‘여주인공’. ‘액션’, ‘어드벤처’가 유행처럼 딱지붙곤 했었던 게 개인적으론 흥미로웠다
하나의 작품이 거대한 문화 트렌드의 흐름 위에 기억할만한 포인트를 찍는 그 과정을 지켜본다는 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지
<마지막 마법사>의 리뷰란에 밑도 끝도 없이 <헝거게임> 이야기를 지루하게 늘어놓는 이유가 무엇인고 하면,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헝거게임>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생각해본 적도 없던 과업을 떠안게 된 여성, 개인 차원에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의 부담감, 그리고 무너져가는 세상…… 그렇다, 재미있을 요소는 이것저것 다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마지막 마법사>였다
그러나 ‘이 글을 흥미롭게 읽었는가?’라고 묻는다면 글을 읽은 이후의 시점 입장에서는 선뜻 예스를 외치기가 어렵다
초반부의 좋았던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흐릿해지고 주인공에 대한 이입도는 하향곡선을 그린다
차려놓은 잔칫상 구색은 분명 괜찮음에도 그 많은 요소들이 자아내는 하모니가 어째 내 귀에는 별로 달지가 않았다
사람마다 입맛이 제각각이지 않느냐 따져묻는다 치면 그거야말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이라 하고픈 그런 미묘한 느낌이다
가장 아쉬웠던 점은 주인공에게 몰입이 되지 않았던 점이다
반드시 인물에 몰입을 해야만 이야기를 진행시킬 수 있는 독자 타입은 아닌데, 세나라는 인물은 세나 그 자체로 극중에 존재한다기보다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누군가 한 차원 밖에서 조종하고 있는 인형인 듯 여겨졌다
주하 역시 종이인형같다는 인상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세나의 믿음직한 연인이자 하나의 독립적인 캐릭터라기보단 세나라는 주요인물에게 이런 인간미가 있음을 나타내기 위한 카드로 쓰인, 그리고 필요한 경우에 쏙쏙 가져다 유용하게 써먹고 또 때가 되면 판 밖에 잠시 세워두는 그런 종이인형 말이다
이렇게 인물에 대한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다보니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의심을 품게 되고 자연스레 몰입도가 떨어진다
그래서인지 차라리 아예 이야기가 더 길어져서 주어진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캐릭터의 숨결을 좀 더 설득력있고 자연스레 표현할 수 있었담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랬다간 또 꼼꼼하게 짜둔 호흡이 흐트러질 수 있으니…^^
이래저래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나름의 재미있는 설정, 갈기갈기 찢긴 마법사의 시체를 활용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 이 작품에 대한 기억이 꽤 오래 가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