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라는 말 보다는 식구(食口)라는 말을 더 좋아합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끊을 수 없는 가족 관계는 든든한 힘이 되어 주기도 하지만, 태어날 때 부터 나의 의지와 관계 없이 맺어지는 가족이라는 관계와, 가족의 가족, 친족과 혈족으로 퍼져 나가는 모호한 관계들은 때로는 우릴 숨막히게 하죠. 그보다는, 식구라는 단순하고도 명확한 정의를 좋아해요. 지금 나와 함께 밥을 먹는 사람, 예전에 함께 먹었던 사람, 앞으로 남은 나날 동안 함께 밥을 먹고 싶은 사람.
관계는 가끔 나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어지고 끊어집니다. 그래서 더 관계라는 말이 마음에 걸려요. 끊어지고 나면 마치 아무 것도 없었던 것처럼, 예전에도 이어지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리니까요. 그보다는 나와 함께 밥을 먹은 날 수 만큼 쌓여가는 단단한 식구라는 이름이 좋아요. 그 사람이 떠나도 함께 밥을 먹은 기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사랑하는 엄마를 떠나 보내고, ‘나’는 엄마와 함께 나누었던 식사를 기억합니다. 엄마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었던 식사를 통해 딸에게 자신의 기억, 자신의 존재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가족이라는 관계는 나에게 발목에 매인 쇠사슬 처럼 달갑지 않습니다. 엄마를 떠난 아빠도, 동전의 앞뒷면 처럼 어긋나던 오빠도. 그리고 자신을 떠난 남자친구도. 엄마가 딸에게 알려주려던, 함께 꿩국수와 만두를 나누어 먹었던 엄마의 식구는 누구일까요. 나는 엄마의 식구를 찾기 위해 꿩국수를 요리하려 하고, 어디선가 나타난 미스터 블랙과 함께 세 가지의 재료를 찾아 나섭니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미스터 블랙과 꿩국수의 재료를 찾는 과정에서, 그리고 맛있게 요리한 꿩국수에서, 내가 찾는 건 결국 식구입니다. 나와 함께 밥을 먹었던 사람, 나와 함께 밥을 먹을 사람. 가족이라는 관계를 버리고 식구를 찾는 과정에서 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 끊어져 나간 관계의 허무함을 극복하고, 흩어져 나를 찔렀던 기억들도 소박하게 제 자리를 찾습니다.
수많은 관계와 관계 속에 상처 입으면서도 우리는 매일매일 무언가를 먹으며 살아갑니다. 한 끼의 식사를 함께 나눌 사람들을 찾는 것, 그 따뜻했던 식사의 기억을 간직하는 게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전부가 아닐까요.
넉넉하게 차려진 한 그릇의 식사처럼 너무나 따뜻하게 상처를 감싸주는 이야기입니다. 후루룩 들이키시고 잔잔히 퍼져나가는 온기를 느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