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커튼, 따가운 볕은 아침에 일어나기 어려운 까닭이 아니다.
주인공 유수는 값싸게 소파를 얻는다. 레이지보이, 정가의 10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이다. 유수는 로또에 당첨된 셈 치고 소파를 집으로 들인다. 우체국에서 우편취급국으로 자리를 옮긴 그에게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옮기고 싶었던 건 또 그가 아니다. 옮긴 곳에서 그는 적응하기 어려운데 두 국장 때문이다. 더해, 임신을 했다.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았다. 유수는 복잡하고 떨떠름하지만 남편 라호는 눈에 띄게 기뻐한다. 임신을 하니 직장에서 해고 당했다. 여왕처럼 떠받들겠다고 하던 라호는 유수를 하찮게 여기거나 대개 무심하다. 유수는 유산한다. 이후, 소파에 붙들려 있던 유수는 소름 끼치는 현상을 겪는다. 소파를 폐기하고, 라호와는 거리를 둔다.
구역질
이 소설은 다분히 소파와는 별개다. 이미 유수는 더는 참을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남국장의 시선과 여국장의 방관. 대범하게 굴며 존중하지 않는 라호. 유수가 겪고 있는 숱한 갈등과 내면적 고됨은 전부 박박 긁어내고 닦아낸 채로 매끄러운 벨벳 위에 그가 놓였다. 표면이 거칠기에 섬세해야 했던 손길은 없다. 미끌거리고 유순하고, 부드러운 대처는 그에게는 편치도 않고 바라지도 않고, 심지어 이해 받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구역질이다. 구토는 속시원하게 내뱉지 못하면 내내 메스껍고 불쾌하다. 그런데 임신이라니? 이걸 두고 임신이라니? 유수에게 이건 임신이 아니다. 단지 토해내지 못한 구역질일 뿐이다. 이 구역질을 축하하는데, 그조차 유수에 대한 관심은 아니다. 심지어는 알아내 그녀를 일자리에서 내쫓았다. 집에 주저앉을 수는 없었던 유수인데.
자몽 허니 블랙 티
뽑아둔 밀크 커피 대신 돌체 라떼나 자몽 허니 블랙 티를 원한다고 말하는 건 인간으로서 어렵다. 그렇지만 원한다. 기분은 가라앉았고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내고 싶다. 그러나 라호에게는 비협조일 뿐이다. 라호는 야간 근무를 했고 유수의 기분 전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 그렇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곧바로 유수의 사과를 비꼰다. 심지어 태명은 ‘무’로 짓는다. 무라는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듯이 껄껄 웃는다. 그러므로 유수는 소파에서 구역질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썩어가는 냄새, 손을 씻어내야 한다. 그 앞에서 라호는 다시 유수를 깔보곤 머리를 쓰다듬는다. 둘은 모두 개를 싫어한다. 유수는 말하기도 어려운 네 글자와 일곱 글자, 돌체 라떼와 자몽 허니 블랙 티 대신 밀크 커피처럼, 사람 대신 개처럼 취급 당한다.
수혈
이런 상황에서 유수는 유산을 겪는다. 축하하던 의사는 이번엔 어두운 표정이다. 자기를 그만두게 한 ‘봉긋 솟은 배’ 속에 아이는 없다. 라호는 피 흘린 유수에게 자기 피를, ‘만인의 O형’을 내어주지만 유산의 책임은 유수에게로 돌린다. 자기는 ‘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유수는 태몽을 꾸지 못한 것까지 책임으로 삼는다. 그때부터 유수는 소파에만 산다. 앉으면 안락해서 빠져나오기 여간 쉬운 게 아니다. 처음부터 그를 안아주는 느낌이었다. 남김없이, 모조리. 구역질 나던 순간도 기억나지 않는 것만 같다. 심지어는 구역질 자체가 소파에서는 허락된다. 소파가 허락한다. 임신을 했기 때문에 구역질이 나는 게 아니었나? 하지만 그는 흘려야 할 피 대신 라호에게 수혈 받았다. 밀크 커피 같은 피다.
갈무리
‘소파’는 소파의 문제가 아니다. 현실은 현실이라고 믿을 수 없다. 비현실적이고, 기괴할 정도로 폭력적이다. 소파가 푹 꺼지는 건 봉긋 솟은 배 때문이 아니라 그 위를 훑는 시선 때문이며 관망하는 안경 때문이다. 소파를 구매하며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원치 않는 사라리로의 이동과 라호의 대범하고 성실한 압력 때문이다. 여왕처럼 떠받들겠다며 아래로 숙인 그 몸이 이미 유수를 짓누르고 있다. 절대 도망치지 못하게 꽉 붙들고 있다.
있지만 인정하기 어려운 폭력은 거실 유리창 속 말라비틀어진 노파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너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 속삭이는 검버섯 핀 노인의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것이 안개로 가득한 사라리든, 수상한 폐기물 같은 소파든, 빠져나갈 수 없다면 사람은 결국 그 안에 있다. 유수는 친정으로 돌아가지만 또 꿈꾸게 할 안개가 풍기게 될 것이다.
소설은 이런 면에서 매력이 있다.
의견
이 소설은 비현실과 현실의 경계에서, 노골적이면서도 은근한 시선과 일상적인 압력을 드러낸다. 다만 그 경계를 흐리는 과정에서 사건과 감정이 너무 빠르게 밀려와, 속도감보다 급박함이 먼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유수를 포함한 모든 인물이 일종의 우화처럼 그려지고 있으며 이런 경우, 블랙 코미디의 성질을 갖게 되지만 우스꽝스러운 면이 강조되고 공포스러운 효과는 줄어든다. 현실은 우스우면서 막막해야 한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당연히 이해할 수 없다. 유수 또한 그렇다. 유수에게 주어진 상황 또한 막막함의 수준을 지나치고 있다. 소설이 소파 위에서 유수가 꾸는 꿈처럼 보이지 않으려면 현실적 공포에 대한 섬세한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