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라는 괴물이 나의 꿈이 되기까지…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신의 사탕 (작가: HY, 작품정보)
리뷰어: 후더닛, 17년 9월, 조회 91

 옛날에 유행했던 괴담이 생각났습니다. 버스 앞좌석에 앉은 소녀의 뒷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말을 걸었는데, 갑자기 뒤통수의 머리카락이 좌우로 열리면서 얼굴이 나타나 대답했다는.

 주인공 소녀 케이가 음악 시간에 앞자리에 앉은 봉봉의 뒤통수에 있는 머리카락이 모세 이야기에 나오는 홍해처럼 좌우로 갈라지며 프랑의 얼굴이 나타났을 때만 해도 그런 공포 괴담인 줄로만 알았는데,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소설, 완전 카멜레온이더군요. 국면마다 모습을 휙휙 바꾸고 장르를 넘나듭니다. 처음엔 괴담 나중엔 신체 강탈 이런 식으로 말이죠. 음식은 퓨전된 좋아하지 않는 저입니다만, 이런 장르의 퓨전은 정말 좋아합니다. 그것도 자연스럽게 뒤섞이면 아주 좋아 죽습니다. ‘신의 사탕 감히 그런 쾌감을 주었다고 말해야겠네요

소재가 비록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솜씨에 따라 보기만 해도 군침이 좔좔 도는 작품으로 태어날 있다는 것을신의 사탕 보여줍니다. 마디로 말하자면 작가의 연출이 좋다는 것이죠. 저는 특히 초반의 연출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보통 이런 장르의 이야기 진행은 봉봉의 뒤통수에 프랑이 나타났을 , 케이를 비롯한 같은 아이들 모두는 공포에 젖게 마련이고 어떻게 하면 갑자기 나타난 프랑이란 괴물체를 제거할 있을까 생각합니다. 프랑과 몸인 봉봉 또한 괴물이 되어 격리되고 고립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구요. 그런 봉봉에게 케이는 유일한 친구가 되어 아이들의 공포와 적대에 맞서 함께 프랑이 초래한 문제를 해결해나가게 것입니다. 공식처럼 굳어진 전개입니다.

 하지만 소설은 처음부터 그런 공식을 무시합니다. 프랑을 친구들이 공포에 젖기는 커녕 거꾸로 환영하며 오히려 정상적인 존재인 봉봉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 프랑을 힘들게 한다면서 마구 학대까지 가하니까요. 이런 예상을 빗나간, 어긋난 반응이 제겐 신선함으로 다가왔습니다. 상식적으로 얼른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인지라 절로?’ 하는 의문이 솟았고 그것이 다음에 나올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잔뜩 불러일으켰습니다. 감히 말하건데, 저는 작품의 성공이 초반의 수에서 나왔다고 하겠습니다. 독자들이 흔히 예상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역발상에서 나온 연출이 결정적으로 소설을 아주 읽을만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말이죠.

 그러나 절묘한 수를 두었다고 해서 수만으로 이기는 바둑은 없습니다. 이기려면 수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도록 뒤에서 받쳐주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그런 반응을 나타내는지, 이유를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럽게 설득할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아마도 신체 강탈 테마는 그렇게 해서 나오게 것이 아닐까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명백하게 비정상으로 보이는 것을 정상으로 받아들이고 환호까지 하는 것은 그들 역시 실은 비정상인 존재라는 것만큼 독자를 납득시키는 것도 없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괴담의 테마가 역발상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꽃으로 만개하는 과정이었다면 뒤이은 신체 강탈 테마는 독자의 의식이라는 대지에다 설득이라는 뿌리를 단단히 내리는 과정이라 있겠네요.

 사실 이런 장르적 변환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장르란 저마다 날의 크기가 다른 톱니바퀴와 같기 때문이죠. 서로 맞물려 돌아가게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억지로 맞물리게 하려다 개의 톱니바퀴 모두가 망가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그런데신의 사탕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작가의 솜씨를 느낍니다. 무엇보다 소설이 괴담과 신체 강탈이라는 개의 톱니바퀴를 맞물리게 있었던 것이 저는 주요 인물이 모두 여고생이라는 설정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인물의 설정을 바로 거기에 맞췄다는 저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입니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중간 단계에 있는 청소년만큼 자신의 모습에 대해, 그리고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대해 신경쓰는 존재도 없습니다. 자존감이 아직 단단히 뿌리내리지 못했기 때문이겠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지는 않을까 불안하고 그만큼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과 닮은 존재와 자신을 동일시 하려는 욕망도 강합니다. 작가는 이런 불안과 욕망을 원재료로 삼았습니다.

원재료의 맛을 살리는 것을 애초의 목적으로 하고 맛이 보다 살아날 있도록 괴담과 신체 강탈을 양념으로 사용했습니다. 이처럼 장르는 다르더라도 저변에 흐르는 의도는 하나로 굳건했기에 개의 톱니가 어긋나지 않고 맞물려 돌아간 아닐까 합니다. 더구나 우리 역시 언젠가 그런 청소년이었던만큼 그런 불안과 욕망은 누구나 공감할만한 것이었기에 공감이 또한 접착력 좋은 아교가 되어 개의 톱니를 훨씬 자연스럽게 이어준 같습니다. 독자의 공감만큼 작품의 자잘한 허점을 감추기에 좋은 것도 없으니까요. 깊이 공감하게 되면 작품이 가진 웬만한 약점은 눈감아 주는 우리 독자의 미덕 아니겠습니까? 물론 그런 미덕을 이끌어내는 것도 작가의 솜씨입니다만.

  작품에서 말하고 싶은 바를 어떻게든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작가의 친절에서 나온 것이겠지만, 마지막에 설명이 많이 들어간 것이 살짝 아쉽습니다. 달라진 자신의 모습에 대한 케이의 동경은 살리면서 다른 독자가 상상할 있는 여지로 남겨 놓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물론 이런 아쉬움은 앞서도 말했듯, 어디까지나살짝입니다. 누군가에겐 이런 연출이 좋을 수도 있겠죠.

여하튼 읽을만한 소설인 틀림없습니다. 신선한 이야기를 찾으셨다면 말없이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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