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들지 않는 곳. 서늘하고 건조한 곳. 적막한 가게 한 구석에서, 붉고 동그란 열매가 가장 아름다울 때 은수는 몇 번이고 드라이 플라워를 만든다.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많다. 원한다면 언제든 들여올 수 있다. 그러나 은수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다. 은수가 손에 쥔 바로 그 열매, 고르고 골라내 단 하나뿐인 하이페리쿰이 영원히 손에 남기를 원했다. 오직 은수만의 ‘변치 않는 사랑’을 손에 쥐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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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남짓 함께 지내며 지수는 은수와 두 번의 가족사진을 찍었다. 길다면 길고, 생판 남이었던 은수와 그토록 가까워진 것을 생각하면 짧다고도 할 수 있을 시간이었다. 두 장의 사진을 찍는 동안 지수의 눈에 비친 은수는 빠르게 달라졌다.
처음에는 그저 고마운 사람이었다. 세나를 구해주었고 지수가 여의치 않을 때면 기꺼이 시간을 내어 세나를 돌봐주었으니까. 게다가 눈치가 빠르고 센스도 좋아 지수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적절한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첫 번째 사진을 찍고, 지수는 은수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삶 깊은 곳까지 들어왔다는 걸 깨닫는다. 사진을 계기로 지수의 부모님을 만나게 된 뒤로는 더더욱 가까이 밀착해 온다. 지수의 부모님이 마치 자신의 부모님인 것처럼, 세나가 자신의 딸인 것처럼, 은수는 지수의 삶의 영역에 자신을 완전히 겹쳐 놓으려 한다.
가족처럼 가깝고 어떻게 보면 가족이나 다름없는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건만, 지수는 돌연 불안에 휩싸인다. 어쩌면 은수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곁에 머물거나 가족의 일부가 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세나에게 ‘우리 딸’이라고 속삭이는 은수는, 혹시 지수의 자리를 대신하려는 건 아닐까?
두 번째 가족사진에는 지수가 없다. 아버지 생신을 기념해 모인 자리에서 은수는 늘 그랬던 사람처럼 자연스레 앉아 있었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제안에 아무렇지도 않게 지수의 자리를 대신한다. 부모님, 동생 부부, 세나, 그리고 은수. 누가 빠졌는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자연스러운 가족사진이다.
지수가 느껴왔던 작은 위화감과 불안이 한순간에 이어지며 명백한 불쾌함으로 돌아왔다. 타인과 삶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 없는,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대체한 순간을 목격한 것이다. 타이어가 사라지면 스페어 타이어가 그 자리를 대체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처럼 보인다.
이때 하이페리쿰의 꽃말이 하나 더 제시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처음 은수를 찾아갔을 때, 그는 하이페리쿰의 꽃말이 ‘변치 않는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지수와 은수의 처지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은수의 순수한 면모를 보여준다고 여긴 요소였다. 그리고 지수는 가족 모임에서 두 번째 꽃말을 떠올린다. ‘당신을 버리지 않겠어요.’ 지수는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에 은수가 따라오는 것을 원치 않았으나 실상은 두 사람의 위치가 역전될 수 있다는 것을 빨간색 하이페리쿰 열매를 보며 깨닫는다. 지수의 가족들 사이에 섞이고 싶다는 은수의 바람은 역설적이게도 지수에게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신호로 비춰진다.
가족들 사이에 녹아든 은수를 보며 지수는 비로소 은수가 원한 게 무엇이었는지 깨닫는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한 은수가 간절히 원한 건 가족이었다. 은수가 지수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기에 상황은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은수는 지수가 원하지 않는 걸 알았지만 가족들을 만나는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함께 지내는 내내 말 한 마디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지수는 은수가 원하는 것을 손에 넣을 기회였다.
모임이 끝나고 지수는 즉시 은수를 밀어냈다. 그대로 끝날 관계라 생각했지만, 세나의 죽음과 함께 은수라는 이름은 결코 지워지지 않을 흔적으로 남았다. 원하는 것을 손에 넣지 못한 은수의 복수였을까?
마지막 장면에서 지수의 상상 속 은수는 묻는다. 처음 만났던 그날, 세나가 이미 죽었다면 어땠겠느냐고. 세나의 죽음이 원망에 찬 복수였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은수가 세나의 죽음마저 기회로 삼으려 했다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은수가 원하는 것은 가족의 형상이지, 지수나 세나가 아닌 것이다. 끔찍한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은수는 타인의 감정을 들여다보기를 멈춘 듯하다. 곁에 있는 사람을 마치 도구처럼 쓰고 치워버리는 은수는 지수가 안다고 믿었던 은수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느껴진다. 지수가 빈 껍데기처럼 남겨지는 결말은 썩어버린 열매를 내다버리는 손길에 가깝다.
가족의 형태는 고정되어 있지 않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자립할 수도, 노인이 되어 다시 돌봄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가족 구성원간의 관계는 다른 어느 관계나 그렇듯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러나 은수는 변하지 않는, 고정된 가족의 모습을 원했다. 그 안에 담긴 게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이미 두 번째 가족사진에서 보여주었다.
지수가 갑갑함을, 나아가 두려움을 느꼈던 것은 은수가 보여주는 애정 속에 무엇이 빠져 있는지를 알았기 때문이다. 은수는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지만 가족의 행복이 우선은 아니다. 하이페리쿰 열매는 은수의 손에서 서서히 마르다가 곪아버렸다. 지수는 터놓기 어려운 갑갑함을 앓다가 끝내 텅 비어버리고 말았다. 은수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드라이 플라워나 조화처럼 잘 만들어진, 가족의 외양을 닮은 물리적 증거를 원했던 건 아닐까. 은수의 의중을 짐작만 할뿐인 지수의 시선 속에서, 타인의 삶을 모방하며 침범하던 손길은 한 인간의 뿌리를 잡아뜯는 파괴적인 행위로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