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원숙한 독서 경력이 묻어나는, 다양한 리뷰들이 돋보였던 작가님.
이 리뷰를 기억하십니까.
https://britg.kr/novel-review/74509/
6년 전, 존경하는 선생님께서는 제 작품(옛날 계정본)을 리뷰하시며
‘내용이 좀 길다. 장치가 좀 아깝더라도 몇 가지 쳐냈으면 좋겠다.’
라는 내용의 피드백을 해주신 바 있습니다.
6년을 기다렸습니다. 이제 제가 돌려드릴 차례입니다.
(???)
물론 농담이구요.
왜 이런 어그로를 끌었느냐면은,
제가 이 작품을 보고 든 생각이 우연히도 정반대였기 때문입니다.
‘이거 하나만 더해서, 한 번만 더 틀어도 괜찮겠는데?’
이 지점에 관해 리뷰를 써보고자, 마음먹은 결과 자연히 저 옛날 글도 연상하게 되었고
재미로, 그리고 당연히 음흉하게도 제 글도 노출시켜 이중의 홍보 효과를 노릴 겸하여
해당 리뷰를 첨부하고, 이 글을 ‘디스전’이라고 명명하였습니다.
한 번 더 엎드려 말씀드리자면 당연히 농담입니다. (송구합니다…!)
마임맨의 주인공은 마임 예술을 광적으로 추구하는 자입니다.
바닥에 무거운 가방이 존재하는 것처럼 온몸의 근육을 부풀려서 당기는 시늉을 하거나, 벽에 가로막힌 듯 행동하는 거리 예술가입니다.
솜씨가 좋은 수준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감각을 속이는 지경에 이릅니다. 추위도 배고픔도 마임으로 극복합니다. 그야말로 마임의 신이군요.
그러나 오만하고, 스스로 구축한 마임 세계에 집착하느라 닫힌 태도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기를 선망한 동생, 진우가 똑같이 추위와 배고픔을 마임으로 견뎌보려다 얼어죽었음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저 실력 없는 예술가가 도태되었다고만 생각합니다.
그의 예술관은 마임을 신기해하는 어린아이가 다가와 ‘벽’을 시험하려는 걸, 엄하게 (또 마임으로) 밀쳐버리는 장면에서 드러납니다. 마임맨의 마임은 관객과의 소통이 아닙니다. 관객을 지배하는 우월감이었던 것입니다.
이 점에 관하여 스승인 백 노인과 설전을 벌인 그였으나, 끝내 태도를 고치지 않았고, 백 노인을 밀어내 승승장구하며 마침내 자기가 옳다고 증명했다 믿었지요.
여기까지가 설명 구간입니다. 주인공의 품성과 가치관, 과거와 현재 상황을 제시하는 단계.
그다음이 본론인 사건으로 이어지는데요.
본문의 사건은 간단명료하게 종결됩니다.
마임맨은 스스로 만든 벽에 괴상하게도 갇혀버렸고, 밤새 동사해 버립니다.
제가 너무 구조를 단순하게 분리한 감은 있습니다. 설명 구간이라고 해도, 현재 인물상의 묘사와 그의 과거사 풀이는 엄연히 다르죠. 또 현재 인물상의 묘사도 다른 길거리 공연을 무시하는 구간과 스스로 굉장한 마임을 선보이는 구간 등으로 나눠볼 수는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설명 부분이 주인공 마임맨을 묘사하기 위한 목적이고, 글 자체가 길지 않은 단편이라 연속성이 유지됩니다. 그래서 사실상 한 도막으로 취급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빌드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본 사건이 대조되기 마련입니다. 사건 부분이 짧으니까 허무하다, 그런 단순한 주장을 하려는 건 아닙니다. 단편인데 주제부가 짧은 게 당연하죠. 다만 이야기는 그 절정부가, 기존의 빌드업을 얼마나 재미있게 살리느냐에 달렸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작의 절정부에는 ‘요철’이 없습니다.
마임 속에 갇힌, 마임맨의 동사.
주인공이 마임을 현실화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은 초반부터 이미 제시되죠? 그리고 실제 공연 모습에서 근육의 과장스러운 사용으로 재확인됩니다. 최후까지 주인공이 특별히 개심하지도 않습니다. 자신의 벽에 갇힌 마임맨을 사람들이 공연인 줄 알고 방관하였고, 끝내 죽었는데, 그러자 죽을 때까지 예술혼을 불태운 이로 대우해주는 부분이 약간의 함의를 품은 변칙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렇더라도 기존 심상에 변화(반전, 혹은 결이 같더라도 유별난 카타르시스)가 있는 건 아니죠. 주인공이 나쁜 녀석인 만큼 인과응보적 서사가 필연 예상되기 때문에요. 말하자면 현 상태는 평이한 진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방향성 제시를 떠나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미는 것은 월권입니다만,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이 평이함 속에, 마침 전개의 변화구로 삼기 좋은 포인트가 있습니다.
바로 공연 중 쫓겨난 어린아이죠.
마임맨은 상상 속 벽에 갇힌 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 낮에 다가오려던 어린아이와의 재회를 부여해 준다면 어떨까요.
스승 백 노인의 가르침. 즉 진정한 ‘소통으로서의 공연’을 가르쳐 줄 순수한 존재. 멋진 마임에 이끌려 다시 한 번 다가와 줄 존재를 말입니다.
훌쩍 경계를 넘어, 자기를 가둔 상상의 벽을 허물고, 주인공에게 ‘사소한 구원’ 다시 말해 ‘깨달음’을 가져다 줄 은유로서. 어떨련지요?
물론 이는 작품을 구사하는 방식이나 주제의식 등에 비추어 작가님의 기존 의도에 어울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당장 주인공 구원 서사가 되어버리니, 그 자격을 박탈하지 않기 위해서, 주인공을 너무 나쁜 녀석으로 만드는 진우의 죽음 같은 에피소드는 빼도 좋겠지요.
아무튼 인과응보적 톤도 버리지 않으면서, 꽤 괜찮은 감성을 전할 수 있는 한 도막의 변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상은 읽다가 무심코 떠올린 전개로서, 독자 개인의 의견에 지나지 않습니다. 작가님께 무언가 요구하는 것도 아니고 딱히 비판도 아닙니다. 혹여 그렇게 받아들여질까 걱정이 앞서네요. 그냥 제 생각에 이래도 재밌을 거 같다 하는 감상이었습니다.
하나 리뷰 공모에 부쳐 “이렇게 하면 더 재밌어질 것 같다 싶은 의견을 구한다”라고 말씀을 달아주신 만큼, 용기를 품고 한번 써 봅니다.
최후로 말씀드리면 디스전이라는 제목은 정말 농담입니다. 저는 스스로 <짧게 쓰지 못하는 병에 걸린 사람>이라 정의하고 있기 때문에, 해당 리뷰에 200% 공감하였으며 아무런 복수심이 없음을 밝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