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 못해 쓰는 작가의 마지막 이야기: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공모(감상)

대상작품: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 (작가: 이영도 출판, 작품정보)
리뷰어: Wishrain, 2일 전, 조회 29

1. 7년의 기다림 끝에 귀환하심 우리의 작가님

『오버 더 초이스』 이후 7년, 이영도 작가의 신작이 드디어마침내기다리고기다리고기다린끝에 도착했습니다. 한국 판타지 문학의 거장이 내놓은 이번 작품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닌, 판타지 미스터리 심리극에 가깝습니다. 특유의 철학적인 주제 의식과 촌철살인의 대사, 그리고 독자의 예상을 비트는 전개는 여전하지만, 이번에는 ‘추리’라는 형식을 빌려 작가와 독자, 그리고 창작의 윤리에 대해 더욱 깊이 파고듭니다.

2. 기묘한 줄거리: 심장이 뚫린 채 4년을 쓴 작가

이야기의 시작부터 강렬합니다. 대문호 ‘어스탐 로우’는 누군가의 흉기에 심장을 찔려 살해당합니다. 하지만 그는 즉사하지 않?고 기이하게도 죽은 몸으로 무려 4년 동안 생을 유지하며 자신을 죽인 범인을 지목할 임사전언(Dying Message)을 집필합니다. 그것도 단 한 줄의 메시지가 아닌, 무려 9권 분량의 대하 장편소설로 말이죠.

소설은 어스탐 경이 이 ‘임사전언’의 완결을 앞둔 시점에서 시작됩니다. 어스탐의 유산 관리인으로 지명된 ‘더스번 칼파랑’ 백작과 늑대인간 ‘사란디테’가 이 기묘한 유??고의 비밀을 밝히고 진범을 찾기 위해 파견되면서 본격적인 추리극이 막을 올립니다.

3. 주요 감상 포인트

① 익숙하고도 반가운 세계관의 확장
이 작품은 이영도 작가의 단편 시리즈인 ‘더스번 칼파랑과 사란디테 이야기’와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오버 더 호라이즌을 읽으셨던 독자분들께는 나름 익숙하실 듀오인 칼파랑과 사란디테가 사건의 중심에 서서, 냉?철한 논리와 야??성적인 직관으로 사건을 파헤치는 모습이 코믹하면서도 매력적으로 그려집니다. 특히 기존 단편에서 보여주었던 두 캐릭터의 케미가 장편이라는 형식에서 더욱 빛을 발합니다.

② 작가와 독자, 텍스트에 대한 메타적인 질문
이영도 작가는 전작들에서도 종종 ‘이야기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져왔지만, 이번 작품은 그 주제 의식이 정점에 달해 있습니다.
“범인을 잡기 위해 소설을 쓴다”는 설정 자체가 아이러니하며, 작중 인물들은 끊임없이 ‘글쓰기’와 ‘읽기’, 그리고 ‘검열’과 ‘해석’에 대해 논쟁합니다. 살인범을 잡는 추리물인 동시에, 작가가 독자에게 보내는 거대한 질문지(그리고 신작좀 그만 조르라는 대답지)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챕터 말미마다 삽입된 희곡 형식의 구성은 이러한 메타픽션적 성격을 더욱 강화하며 독특한 리듬감을 부여합니다.

③ 특유의 유머와 지적 유희
심각한 살인 사건을 다루면서도 이영도 특유의 유머 감각은 잃지 않았습니다. 인물들이 주고받는 만담에 가까운 대화들은 텍스트의 밀도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책장을 빠르게 넘기게 만드는 원동력이 됩니다.

4. 총평: 가장 ‘이영도다운’ 방식으로 쓴 미스터리
『어스탐 경의 임사전언』은 범인을 찾는 ‘후던잇(Whodunit)’의 재미도 훌륭하지만, 그 과정에서 작가가 쌓아 올리는 논리의 탑을 구경하는 재미가 더 큰 작품입니다.

 

더스번 칼파랑 경과 샤란디테의 우당탕탕 킬링타임용 판타지를 기대하셨던 분이라면, 예상보다 다소 복잡한 철학적 논쟁에 당황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가 세상을 어떻게 반영하고, 또 어떻게 왜곡하는가에 대해 고민해 본 독자라면, 혹은 이영도 작가 특유의 ‘지적인 수다’를 그리워했던 팬이라면 이 책은 올해 최고의 선물이 될 것입니다.

 

 

이 책을 추천드리고 싶은 분들은?

-이영도 작가의 ‘더스번 칼파랑 & 사란디테’ 단편들을 재밌게 읽은 분

-전형적인 판타지보다는 색다른 설정의 미스터리 추리물을 선호하는 분

-창작과 비평,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즐기는 분

 

한 줄 요약:  “심장이 멈춘 뒤에도 펜을 놓지 못한 작가의 집념, 그 끝에 기다리는 것은 범인인가, 아니면 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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