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자화상 감상

대상작품: 내 얼굴은 어디에 (작가: e이, 작품정보)
리뷰어: 라이트, 18시간 전, 조회 8

주인공의 하루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낯설 정도로 익숙한 풍경을 본다. 회사라는 전쟁터에서 그는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춰 ‘농담하는 가면’, ‘피곤한 가면’, ‘완벽주의의 가면’을 갈아 쓴다. 그에게 가면은 단순한 사회적 장치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방어기제다. 하지만 그렇게 자신을 지키려는 노력은 어느 순간, 자신을 갉아먹는 고통이 된다.

그는 늘 효율을 계산하고, 실수를 감추며,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킨다. 일터에서 쓰는 가면은 곧 일상이 되고, 집에서도 그 가면은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혼자 밥을 먹는 순간조차 예절을 지키며, 누가 보지도 않는데 스스로를 통제한다. 그것은 이미 내면 깊숙이 길들여진 ‘가면의 습관’이다.

거울을 보지 않는 이상, 나는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다만 얼굴의 근육과 감정으로 내가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화를 내고 있는지만 알 수 있다. 결국 나는 타인을 통해서만 나를 인식한다. 그들의 표정 속에서, 그들의 반응 속에서, 나의 얼굴을 본다. 그렇기에 문제는 언제나 타인이다. 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그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그들에게 속하기 위해서 나는 나를 버리고 인위적인 표정을 만들어낸다.

<내 얼굴은 어디에>는 이처럼 가면을 통해 우리 사회의 일상적인 가식을 정교하게 비춘다. 우리가 마주하는 사람들조차 모두 가면을 쓰고 있다면 그 삶이 얼마나 퍽퍽하고 메마를까. 진심이 사라진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엇에 기댈 수 있을까. 상황에 따라 가면을 쓰고 벗는 일,  그 반복 자체가 이미 하나의 노동이고 피로다.

“그가 실은 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본다. 가면을 벗지 못하는 건 사회가 강요한 생존의 기술일까?, 아니면 이미 익숙해져버린 자기 기만일까?


〈내 얼굴은 어디에〉는 그 물음 앞에서 우리 모두가 이미 잃어버린 ‘진짜 얼굴’의 부재를 아프게 비춘다.

목록
이전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