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작품을 영업하거나 소개하기보다는, 작품을 읽고 난 개인적인 감상을 서술하는 데에 주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줄거리를 요약한다든가 하는 부분은 생략할 것이기 때문에, 작품을 읽지 않은 분들께는 잘 이해가 되지 않거나, 조금은 불친절한 리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먼저 제가 이 작품을 어떤 관점에서 읽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감상은 다른 독자나, 작가의 의도와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작품 초반에서 ‘마음’과 ‘몸’은 긴장 관계를 이룹니다. 주인공인 남희는 본능을 억누르고 살을 빼기 위해 노력합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마음으로 몸을 지배하려 한다’고 볼 수 있겠죠. 트레이너도 ‘복근을 볼 생각이 있냐’고 말합니다. 운동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바프를 찍거나 복근을 만들기 위해 본능을 이겨내야 하는 ‘수단’이라면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구조일 겁니다.
그런데 별리라는 인물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도) 그 긴장을 무너뜨리고, 경계를 섞어 놓습니다. 마음으로 몸을 강제하는 식의 운동을 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지니게 마련인 ‘나’와 ‘타인’의 거리감마저도 없습니다. 경계심 없이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고 금세 친구가 됩니다. 별리는 그런 자신의 경계 없는 상태를 ‘마몸’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축약합니다.
트레이너나 남희가 별리에게 이끌린 근본적인 포인트는, 몸이나 마음 어느 한쪽이 원인이라기보다는 그걸 구분하지 않으려는 태도 자체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 말은 몸도 아니고 마음도 아니라는 건데요. 몸과 마음이 서로 저항하는 긴장 상태를 허물어버리는 그 굴곡점 자체에, 여자든 남자든 인간으로서 거부할 수 없는 치명성이 있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작중에서 별리의 정체가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도, 별리가 실존 인물이라기보다는 그런 태도, 즉 ‘마몸’이 인격화된 소설적 장치였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그렇다고 ‘마음과 몸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 장땡이다’, 이런 단순한 주장으로 귀결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피팅룸에서 몸을 섞는 모습이라든가 꽃뱀 사기라든가 하는 자극적인 사건이 나오기는 합니다만, 그게 다소 충격적일 순 있더라도 뭐가 옳다, 그르다 결론을 내리진 않습니다. 대신 거기서 비틀거리는, 그럼에도 거기에 이끌리는 남희의 모습을 비추면서 이야기가 막을 내리는데요. 뭔가 시원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이야기라기보다는, 찝찝한 질문을 남기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표현 면에서 말씀드리고 싶은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서두가 조금 급하게 느껴집니다. 처음 두 문장을 보겠습니다.
일주일 중 가장 신나는 금요일 퇴근 후. 하지만 남희는 살이 찐 것을 죄송하게 여기며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있었다.
첫 문장에서 ‘가장 신나는’이라는 감정 표현으로 독자의 공감을 사고 호기심을 자극하며 이야기를 출발하는 것은 좋은 시도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 첫 문장은 완결된 문장이 아닌, 짧은 구절로 끝납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에 ‘하지만’이라는 역접의 접속사로 시작하는 문장이 나옵니다. 말하자면, 신나는 마음이 충분히 들기도 전에, 죄송한 감정으로 넘어가는 게 조금은 흐름이 급해보이고, 독자 입장에서 안정적으로 이야기에 발을 들이는 데에 약간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 이런 급격한 전환이 의도하신 것이었다면 효과적인 방법이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조금 더 완만한 출발은 어떨까 조심스레 말씀드려 봅니다.
이후 이야기에 들어서고 나서는, 작가님 특유의 리듬감을 따라 80페이지라는 길이의 분량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의 속도감 있는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초반부에 독자를 이야기 속으로 초대할 때에는 조금 더 충분한 호흡을 가질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시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