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처음 읽자마자 생각난 건 그거였어요.
‘앗, 이건 성경을 모티프로 한 단편이겠구나.’
에베라는 이름, 그리고 그 에베에게 붉은 열매를 먹도록 유도하는 주인공. 순수하고 교활한 눈빛…….
뱀.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다시피, 이 단편은 자유게시판에서 브릿G 작가님들이 자발적으로 열었던 ‘뱀 주제 글쓰기 대회’에 달바라기님이 출품(?)하신 단편입니다. 뱀을 주제로 글 쓴다고 해서 분명 성경의 선악과 모티프의 소설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작품이었네요.
하지만, 이것이 성경 모티프라는 것까지는 잘 캐치했지만, 안타깝게도 저는 그 자세한 내용을 잘 모릅니다. 신이 만든 최초의 인간 아담과 이브라는 사람들이 낙원에서 놀다가 금기의 열매 선악과를 뱀의 꾀에 넘어가 먹다가 낙원에서 쫓겨났다……, 정도로만 알고 있어요. (이게 정확한 내용인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 대한 수박 겉핥기식 이해나 틀린 내용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시도록 미리 양해를 구해봅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다고 해야 할까, 좋았던 점은 바로 술술 읽힌다는 점이었습니다. 내용만 보면 이 단편은 SF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겹겹으로 된 설정이나 딱딱한 구성일 거라는 막연한 SF 장르에 대한 이미지와 달리, 이 단편은 마치 우화 같은 느낌이 나서 굉장히 잘 읽혔습니다. 아마 에베 주인에 대한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묘사가 한몫을 한 것 같습니다. 거기서부터 이 소설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이야기에서 무언가의 비유와 상징으로 읽히기 시작됐거든요. 그리고 그것은 사지절단 이후 이야기에서 더욱 짙어져요. (물론, 개인적인 감상입니다.)
재미있는 점은, 어떤 현상에 대한 비유적인 소설을 쓰다보면, 너무 그 비유나 상징에 얽혀 오히려 소설이 꼬이고 읽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게다가 작가의 의도를 감추기 위해 고의적으로 소설을 더 꼬게 되면 ‘이것이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가’를 이해하기 힘들어질 때도 있고요. 반대로 노골적으로 상징을 강조하면서 감상을 방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단편은 그렇지 않고 깔끔하게 읽힙니다. 누구나 성경 모티프라는 것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고 잘 녹아들어 읽기 정말 좋았습니다. 이것은 분명 작가님의 빛나는 재능, 또는 작가님이 노력하셔서 얻은 값진 결과물이고요.
그렇다면 이 소설에서 저는 무엇을 읽었는가…….
우선 흥미로웠던 점은, 성경에서의 인간과 뱀의 역할이 이 단편에서는 역전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에베가 ‘뱀’은 아니지만,) 성경에서는 뱀이 금단의 열매를 먹도록 인간을 유혹한다면, 이 단편에서는 반대로 ‘나’란 인간이 에베에게 금지된 호르몬을 섭취하도록 유도하죠.
더 재미있는 점은 이 주인공 ‘나’는 그 벌로 사지가 절단당한 채 기어 다니면서 동물들을 유혹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즉, 인간이었던 주인공이 뱀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저는 처음에 추측했던 것과 달리, 제목 ‘뱀을 위한 변명’에서의 뱀이 에베가 아니라 주인공을 의미하는 것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뱀을 위한 변명입니다.
사지절단 이후 ‘뱀’이 된 주인공이 다른 이들을 유혹하는 이야기는, 비록 제가 잘 모르지만, 성경의 내용 거의 그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어렴풋이 캐치한 내용들은, 에베의 후손 여덟 명(여기서 단위를 ‘명’이라고 한 것은 오타인지 의도적인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을 제외한 모든 동물을 휩쓸어버린 대홍수. 신적 존재인 에베의 주인에게서 태어난 사랑과 자비의 아들은 예수를 의미하는 것이겠죠. 12명의 제자 중 하나를 은화 30개로 유혹하는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아마 유다에 대한 이야기일 것 같네요. 아, 집사 마이클은 천사 미카엘을 의미하겠군요. 이브를 에베로 바꾼 것과 같은 걸까요.
아, 이럴 줄 알았으면 성경 공부 할 걸 그랬습니다……. (눈물)
(그리고 지금 다시 찾아보니까, 뱀이 처음부터 땅을 기어 다니게 된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게 한 죄로 저주 받아 땅을 기어 다니게 되었다고 하는군요. 아…….)
다시 돌아와서, 이 단편은 성경에서 유혹하는 역할을 하는 뱀을 위한 단편이라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어째서 다른 이들을 유혹하는 역할로 등장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단지 그 본질이 사악해서가 아니라, 나름의 양심적인, 그러나 위선적으로 보이는, 그런 행동에 대한 저주 때문이라는 것을, 이 단편에서 주인공은 밝힙니다.
성경 이야기는 여기까지 해야겠습니다.
(제 밑바닥이 다 드러나 아예 텅텅 비어버렸습니다…….)
결국 에베의 주인은 신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울 거라는 인상과 달리 이 세계의 신은 자비도 없고, 지배욕이 강하며, 극단적입니다. 주변의 자원을 전부 끌어 써서 만든 거대한 집과 낙원은 그의 탐욕의 상징입니다.
바로 인간처럼.
성경에서 신이 어떻게 등장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에베의 주인의 본질은 신보다는 인간의 본성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에베를 비롯한 생물체에 대한 애정을 보이지 않습니다. 애정보다는 소유욕에 가깝습니다. (애초에 이들을 창조해낸 건 에베의 주인이 아니라 회사지요.)
마치 자연을 지배하려는 인간의 모습과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학기술을 등에 업고 전지전능에 가까운 힘을 얻게 된 인류가 본능에 충실하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만의 낙원을 짓는 대신 그 주변에는 텅 빈 황무지뿐이겠죠, 마치 그의 집처럼. 실제로 이 세계의 주인은 인류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으며, 지금도 자연은 조금씩 깎여가고 있죠.
하지만 그 인류 사이에서는 그의 아들(예수)과 같은 존재가 태어날 거라는 믿음도 있습니다. 사랑과 자비를 가진 존재, 인류 지배 하의 자연을 구원해줄 존재. 뭐랄까, 마치 돌고 도는 사이클처럼 느껴지네요.
그 사이클을 역으로 올라가보면, 어쩌면 우리를 창조한 신 역시 우리와 같은 탐욕스러운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는 (불경스러운) 질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지배욕이 강한 신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만든 cage 속에서 우리들이 살고 있는 건 아닌지. 그리고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될 예정’이라는 말처럼, 서서히 자멸해가는 인류를 켈켈거리면서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에, 잡설이었습니다, 넘어갈게요.
읽으면서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군더더기가 느껴지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이야기, 거기에 한층 명확해진 이야기의 모티프와 메시지. 그것을 파고드는 즐거움도 있었고요.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