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풍선 + 이나경 작가의 단편소설 네 편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ŏ_ŏ ;)ノԅ(ᴗ͈ˬᴗ͈❁) (작가: 이나경, 작품정보)
리뷰어: 주렁주렁, 17년 8월, 조회 173

* 본 리뷰는 말풍선 + 이나경(이하 이나경) 작가의 브릿g 소설 중 [말풍선 컴필레이션 01. 빨간 맛 (Red Flavor)], [(ŏ_ŏ ;)ノԅ(ᴗ͈ˬᴗ͈❁)], [사랑손님과 나], [다수파] – 총 네 편의 단편을 대상으로 합니다.

 

브릿g에 가입하고 읽어본 단편 중 제일 눈에 들어온 건 이나경 작가의 단편들이었다. 사건의 재미는 차치하고 문장을읽는즐거움이 빼어난 인상이었다. 특히 눈에 들어온 건 소설의 첫 단락이다.

 

1. 소설의 시작

다수의 작가가 묘사로 첫 문장을 시작하는 것과는 달리 이나경 작가의 소설은 캐릭터들의 행동으로 시작한다. “누님은 오늘도 길목을 막아서며, “첫닭의 울음소리에 욱은 눈을뜨고, “여름방학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학교 밖에서 주인공은 그 애를 발견한다. 막아선 길목을 돌파할지, 눈을 떴으니 제일 먼저 뭘 할지, 그 애를 발견했으니 그냥 지나칠지 가서 말이라도 걸어볼지, 독자는 계속 읽어봐야 다음 행동을 알 수 있고 캐릭터와 함께 움직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소설의 이야기 속으로 바로 진입하게 된다.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것이다

이나경 작가의 글은 상당히 유려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이는 문장 자체가 유려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넘어가는 부분 또한 크다고 본다. 그의 캐릭터들은 계속 말하면서 행동한다. 또한 캐릭터가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사건의 실체가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캐릭터의 손이 유독 눈에 들어온다.    

 

2. 얽히는 손(手)

 “나는 그녀를 잡은 손에 힘을 쥐었어요. 그쪽도 꼭 쥐더군요. 더 이상 말은 필요치 않았어요. 그것으로 충분했지요. (…) 처를 잡은 손도 미끌미끌하여 하마터면 놓칠세라 더욱 세게 쥐었어요. 나는 이미 두 번 다시 그 손을 놓치 않으리라 다짐했지요.”

나는 어째서인지 손에 힘이 풀려 들고 있던 봉지를 떨어뜨렸다. (…) 그 애는 내게 다가오더니 미처 뿌리칠 겨를도 없이 팔을 당겨 자기 팔에 엮었다. 그늘에 오래 있었는지 그 애 살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그런다고 어디 사정을 봐줄 위인이던가. 도리어 소매를 더욱 팽팽히 당긴다.

손에 힘을 주자 그쪽도 꼭 쥐며, 뿌리칠 겨를도 없이 그 애 팔에 내 팔이 엮이며, 내 소매는 인정사정없이 잡아당겨진다. 이는 주인공 혼자서 할 수 없다. 상대가 있어야만 손이 엮이거나 잡아당겨질 수 있다. 함께 맞잡은 손은 언젠가 풀릴 것이며 엮인 팔짱은 풀릴 것이고 팽팽한 소매는 느슨해질 것이다. 누구도 이 손을 계속 고정된 상태로 유지할 수 없다.  

저승으로 아내를 데리러 간  [(ŏ_ŏ ;)ノԅ(ᴗ͈ˬᴗ͈❁)]의 남편은그것으로 충분했지요라고 말한다. “두 번 다시 그 손을 놓치 않으리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이 손은 고정된 상태로 유지될 수 없다. 누구도 그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부부가 손을 놓을 수밖에 없게 되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손을 놓고 제 갈 길 가기? 아님 손을 놓고 서로의 손으로 상대방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포옹하기

이 부부는 부부이기에 처음부터 자발적으로 함께 손을 꽉 잡는다. [빨간 맛]의 소녀는 팔이 당겨져 엮인다. 여름방학의 갑작스러운 팔짱, 학교 밖에서보인그 애가 아니라 학교 밖에서 그 애를 본 것은 그날이처음인 그 애한테. 이 소녀는 학교 밖에서 그 애를 본 날이 오늘이처음이란 것조차 알 정도로 관심이 많고, 그 와중에 그 애의 살을시원하다고까지 느낀다. 찌는 듯한 여름에. 하지만 빨간 맛 속 소녀의 손은 자발적으로 엮인 건 아니었다. 소녀가 자신의 첫사랑을 완성하려면 그 애의 손과 엮어야 하지만 소녀의 손은 계속해서 그 애에게 전화를 하거나 컵빙수를 먹는 용도로만 쓰인다. 때문에 그녀의 환상 속에서 손은 이렇게 묘사된다.

” 

[사랑손님과 나]의 주인공는 누님에게 소매를 잡아당겨진 후 이런저런 일을 겪다가 내심 마음에 둔 태화를 찾아간다. 둘은 학교에서 포크댄스 파트너이기에 아마도 이미 손을 잡아본 적이 있겠다만 그때까지의 손은 그냥 손이지 둘의 마음이 담긴 손이 아니다. 그래서우리는 애매한 거리를 유지한 채로 마주 서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영부영 헤어졌다.”고 말한다. 아직 이 둘은 손까지는 엮지 못한다. 그러다 이야기가 흘러가자 이번에는 태화가를 찾아온다.

태화가 내 손을 잡아끌었다. 태화는 콧노래를 흥흥거리며 가곡을 불렀고 나는 반강제로 몸을 움직였다. 부엌에서 석찬을 준비하던 누나도 방에서 인형놀이를 하던 옥희도 어느새 나와서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캐릭터들의 손이 엮이듯이 우리는 작가의 소설들에 엮여 함께 저승길을 왕복하기도 하고, 일제치하에서 포크댄스로 원을 그리며, 컵빙수 집에 앉아 서걱거리는 얼음을 스푼으로 뒤섞어 보기도 한다. 첫 단락으로 독자를 훅 끌고 들어가는 작가가 축조한 이 허구의 공간은 상당히 굳건하며 때로는 안전해 보이기까지도 한다. 또한 마법 같다. 마법처럼 순식간에 이나경 작가의 세계로 끌려들어가는 느낌이다. 하지만 이 마법은 [다수파]에 가면 깨진다

 

3. 다수파

브릿g에 가입하고 이나경 작가의 빨간맛으로 시작, 작가 이름으로 검색해 눈에 보이는 순서대로 읽었다. 보이는 목록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읽다 보니, 아마 다수파가 초기에 올린 작품인지 마지막에 읽었다. 아마 내가 다수파를 제일 먼저 읽었다면 이후 작가의 다른 단편들은 안 읽었을 듯하다. 내 마음은 다수파와 엮이지 못했다.  

다수파가 여타 단편과 다른 점은 현실을사용했다는 점이다. 이 현실은 그리 멀지 않은 비극적 사건을 가리킨다. [사랑손님과 나]에서도 약간은 위태롭긴 했다만 시대가 지금과 많이 떨어진 과거이고 주인공이 사건의 관찰자 역할이었기에 위화감이 덜했다. 그러나 다수파는 현실을 꽤나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연상이 안 될 수가 없도록 쓰여진 글이다. 전체적인 내용은 늘 다수파에 속하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로, 그는 어쩌다 자신의 능력을 알게 되고 그 능력으로 부수입을 올리기도 하고 결혼을 하고 딸을 둔 보통 남자이다. 그러다 소설 말미로 가면 이 판타지에 현실이 개입한다.

이 순간 다수파는 몇 년째 창작물에서 자주 보이는, 딸의 변고를 겪어버리는 평범한 아빠였던의 이야기로 도식화된다. 변고를 겪은, 가장 당사자라 할 수 있는 딸은 소설 밖으로 튕겨져 나간다. 게다가 이 소설은 처음부터 화자가 딸이었다. 이 갑작스런 화자의 부재 자체가 현실에 대한 은유로 볼 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봤다. 생각해보고, 생각해보고, 또 생각해봤는데도 내 결론은 여전히 당사자인 딸의 구멍이 너무 크며 너무 생략되어 있고 현실의 비극을 사용한 이상 피해 당사자인 딸을 다루는 다수파의 방식에 이입을 못하겠다 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현실을 사용하면 안 되나? 아닐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진 현실이라면 가능한가? 모르겠다. 역사적 비극은 제단 위에 올려놓고 애도만 해야 하는 걸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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