짙은 고동색을 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표면.
혀 끝에 올리면 쌉싸름한 맛과 조화를 이루며 사르르 녹아드는 달콤함.
추울 때 전해주는 한자락 따뜻한 온기까지.
바로 초콜릿이다. 초콜릿은 카카오 콩을 카카오매스와 카카오버터에 설탕, 바닐라빈 등의 다양한 재료를 첨가해 만든 음식으로, 고체형으로 굳혀 먹거나 액상형으로 마시거나 가루를 내어 디저트 및 음식 재료로 사용하는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보통은 디저트로 많이들 활용되고 있지만.
한조각 입에 넣으면 사르르 녹아들며 전해지는 다디단 맛 덕택에 초콜릿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사랑받는 음식이다. 특히 이런 초콜릿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들을 쇼콜라티에라고 부르는데, 시에나 초콜릿 하우스의 주인인 시에나가 이에 해당한다.
<해 질 녘의 초콜릿 하우스>에서 가리키는 초콜릿 하우스는 ‘시에나 초콜릿 하우스’다. 유동인구가 많은 역 근처에 위치한 이곳에서는 매일매일 주인인 시에나가 초콜릿을 직접 만들고, 직원인 이온이 판매와 접객을 담당한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디저트 가게인 것처럼 보이지만, <시에나 초콜릿 하우스>에는 은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바로 자기 시간과 공간을 잃고 헤매는 미아들을 찾아 원래의 시간대로 돌려보내는 것. 제피로스가 미아들의 이야기들을 병에 담아 가져오면, 이온은 그걸 바탕으로 그네들을 구출하고 시에나는 그런 미아가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고 실천하는게 또다른 업무다.
이렇게 보면 도대체 왜 제목에 초콜릿이 들어가는 것인지 어리둥절할지도 모른다. 단순히 주인공들이 초콜릿 하우스에서 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그러나 작품을 감상하다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손님이 초콜릿을 사러 온다거나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플에 초콜릿 모양 아이콘이 등장한다든가 어떤 원소가 반작용을 일으키면 초콜릿 가게가 생긴다든가 하는 식으로 <해 질 녘의 초콜릿 하우스>에서는 다양한 곳에서 초콜릿과 연관된 장치가 등장한다. 정작 초콜릿을 먹고 마시는 장면은 많이 묘사되지 않았지만, ‘초콜릿’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읽는 내내 즐거웠다. 이건 내가 초콜릿을 열렬히 좋아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연인지 의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라, 민, 시아의 이야기들은 모두 지치고 힘들고 우울하다. 그들이 정처없이 방황하다 도착한 곳이 바로 작고 아늑한 초콜릿 가게이고, 그곳에서 따끈한 초콜릿 음료 한 잔을 마시며 다시금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스토리는 따뜻하고 정감있지만, 어떻게 보면 진부하다. 그렇지만 난 그런 진부한 이야기를 매우 좋아한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다보니 시니컬하고 냉소적인 태도보다는 따뜻하고 온정적인 태도가 좀더 보탬이 된다고 체감하게 되는 걸. 버겁고 힘에 부치는 날은 누구든 살다보면 필연적으로 겪게 된다. 그런 날에 따뜻하고 달콤한 초콜릿으로 위안을 얻고 다시 살아갈 원동력을 얻는다면 꽤 나쁘지 않은 일 아닌가?
보라, 민과 시아의 이야기와 이온, 케이, 시에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액자식 전개 방식은 꽤나 재미있었다. 태엽을 찾은 걸로 끝난 이야기가 내심 아쉽긴 했지만. <시에나 초콜릿 하우스>에서 벌어지는 다른 따뜻한 스토리를 더 읽고 싶은 아쉬움이 길게 남았기 때문이다. 어떻게보면 깔끔하게 마침표를 찍은 작가님 덕택에 더더욱 그런 미련이 남는 지도 모르겠다.
언젠가 찬바람이 불어오면 따끈한 초콜릿을 한 잔 타서 다시 이 작품을 읽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