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엔 내가 너무도 없어서 비평

대상작품: 방문자 (작가: 이요람, 작품정보)
리뷰어: 드리민, 8월 28일, 조회 15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영혼> 선정작입니다.

https://britg.kr/reviewer-novel-curation/196906

 

“영혼은 이합집산한다.”

 


윤회, 전생과 환생, 그리고 영혼의 구성을 설명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드픽 검색어 큐레이션: 영혼>에서도 다뤘지만, 제 관점에서 영혼은 영과 혼, 그리고 백으로 이루어집니다. 영은 하늘에서 오는 것, 혼은 떠도는 것, 백은 지상에서 오는 것입니다. 윤회, 전생과 환생은 이들이 죽음으로 인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오롯이 똑같은 영, 혼, 백이 지금과 다른 시공간에서 결합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서로 다른 영, 혼, 백이 합쳐지거나 그것들을 구성하는 원자들이 뒤섞여서 이뤄질 수도 있겠지요. 그 과정에서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나’라는 존재는 윤회와 환생을 거치며 서서히 바뀔 수도 있겠지요. 결국 영혼은 영원히 하나의 개체로 존재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고정된 것 없이 변화한다고 해서, 흔적마저 남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나’를 구성하는 영혼에는 전생의 흔적이 남습니다. 흔히 전생의 기억, 인연, 업이라는 것이 이에 해당하겠죠. 관점에 따라서는 무의식적인 습관, 타고난 직감, 트라우마, 특정한 성향과 취향, 계속해서 나타나는 삶의 패턴마저도 전생의 영향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지금의 나로 환생하기 ‘직전의 생’만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한 먼 과거의 전생이 영향을 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21세기 한국에 살고 있는 제가 그리스 신화를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제 전생 중에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사제나 신화 작가가 있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이지요.

게다가 영혼원자론에 그 원자들이 실제 물질 안에서 그러하듯, 영혼을 구성한 상태에서도 움직임을 가진다면, 더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라는 자아는 불변하는 것이고 하나의 개체처럼 보이지만 끊임없이 변화하며 수많은 구성요소의 집합입니다. 우리의 자아는 기질, 성격, 취향, 삶의 패턴, 인간관계와 맥락에 따라 발생하는 페르소나, 타인의 평가, 트라우마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은 끊임없이 성장하고 변화합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나타나거나 사라지기도 합니다. 만약 영혼이 원자 단위로 쪼개어질 수 있고 그것들이 움직임을 가진다면, 자아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의 발현과 변화와 소멸은, 영혼을 구성하는 원자 하나하나의 움직임과 그로 인해 나타나는 전생의 흔적일 수 있는 것이지요.

 

이요람 작가님의 <방문자>는 이정후 여사, 이정후 여사의 딸이자 유명 강사인 우상미가 나옵니다. 동생 순영의 죽음으로 인해 이정후 여사의 흐려진 판단력. 손님이나 객이라는 말도 아까운 방문자들은 좋은 소식인 양 달려들어 이정후 여사의 삶을 파먹었습니다. 파먹힌 자리는 채워지는 일도 없이 순영에 대한 기억을 들이부어 겨우 목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우상미는 우상미대로, ‘나’를 잃고 텅 빈 존재가 되었습니다. 동생인 선영을, 그녀는 사랑했습니다. 자매애나 모성애로 포장하지 않고, 선영을 그냥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선영의 친구를 자칭하는 여울이 등장합니다. 여울은 친언니인 상미보다도 선영에 대해 아는 게 많았습니다. 아니, 이정후 여사와 상미에 대해서도 아는 게 많았습니다. 그리고 선영과 비슷한 점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상미는 여울을 만나며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강연에서 자신의 이야기는 하나도 꺼내지 않던 그녀가, 여울과 만나 어울리기 시작하며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강연에 흘리기까지 시작합니다. 그러한 변화는 그동안 잊고 있던 선영의 대학 친구이자 방송국 기자인 이수희를 끌어들입니다. 수희는 선영의 자살과 관련되었을지 모르는 어떤 파일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여울은 수희를 아는 눈치지만, 애써 무시하는 느낌이 듭니다. 여울은 상미를 위해, 더욱 선영이 흉내를 내려고 합니다. 상미는 그런 여울에게 거부감을 느낍니다.

이수희를 통해 접근한 형사 장현민은, 선영이 일곱 명이나 살인을 저질렀거나 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합니다. 그 증거라고 내민 메모를, 상미는 부정합니다. 선영은 작가였으니 그저 스릴러 소설의 메모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현민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후에는 소설이었다고 수희가 대신 사과하지만, 그 내용은 영혼원자론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상미도 처음에는 소설 내용으로 넘기려고 했지만, 선영에게 영어를 가르쳐줬다는 애쉬가 소설 속 애슐리 스콧임을 깨닫게 됩니다. 상미의 의심은 모두 여울에게 쏠립니다.

그 뒤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많은 것들이 폭로됩니다. 그건 사랑이기도 하고, 질투이기도 합니다. 결과적으로 상미는 여울과 선영, 그리고 그 외에 그녀가 사랑했던 모든 이들과 하나가 됩니다. 텅 빈 존재였던 상미는 그들을, 그들의 영혼을, 혹은 그들의 원자를 받아들임으로써 가득 채워집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동면이 아닌 수면을, 목숨이 아닌 삶을 이어가게 됩니다.

 

위에서 말했듯 자아를 구성하는 것에는 타인과의 관계, 그들의 평가도 포함됩니다. 나의 영혼을 구성하는 것에는 타인의 영혼과의 인연, 혹은 업도 있습니다. 모든 것은 홀로 있지 않으며,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에 자아든 영혼이든 혼자서는 존재할 수 없고, 살아갈 수 없고, 구원하거나 받는 것 역시 그러합니다.

상미는 동면하려고 해도, 삶을 포기하려고 해도 머릿속에 들어온 그들이 그렇게 두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많아서, 내 안에 살아가는 나의 목소리가 너무 많아서 시끄러울 수도 있습니다. 죽은 동생과는 달갑지 않은 형태로 재회하게 된 것도 있고요. 하지만 그동안 내 안에 내가 너무도 없어서 텅 빈 존재였던 상미에게는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들은 상미를 사랑하고, 상미 역시 그들을 사랑하니까요. 상미는 그들을 방문자라고 부르며 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일부로 포용하고 애도합니다. 이를 통해 비로소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고, 그들을 구원하거나 그들로부터 구원받게 되었습니다.

상미처럼 직접적으로 그들과 하나의 몸으로, 혹은 하나의 영혼으로 살게 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건 대부분 심각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연이 좋은 인연은 아니지만, 인연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텅 빈 존재인 것입니다. 그건 자아의 관점에서든, 영혼의 관점에서든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독립적인 사람이 되는 방법은, 다양한 유형의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그들에게 골고루 적절히 의존하는 법이라고 하잖아요.

 

내 안에는 얼마나 많은 목소리와 전생의 흔적이 남아있는지 짚어볼 만한 이야기였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적어주신 이요람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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