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라진 세상을 본 적 있나요? 비평 브릿G추천

대상작품: 평범한데 정체불명 (작가: AppleBox,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5월 21일, 조회 34

이 소설 <평범한데 정체불명>을 읽게 된 이유는 2가지다. 일단 소개글이 마음에 들었다.

– 첫사랑이 나오는 꿈을 꾸었다. 기분이 더러웠다.

딱 2문장으로 이뤄진 이 소개글은 곧 이 소설의 첫 문장들에 해당된다. 다음으로는 제목에 끌렸다. 4자, 4자로 구성되어 안정감 있어 보이는 것도 좋았지만 평범함과 정체불명이라는 아이러니함이 붙으면서 호기심이 생겼다.

첫사랑이 나오는 꿈은 기분 더러울 수 있다. 첫사랑이라는 게 꼭 좋기만 한 기억은 아니니까, 사람에 따라 다를 뿐… 그렇다면 이러한 평범한 서사를 가진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사건을 만나 변화하게 되는 이야기인 걸까, 기대하며 읽었고 결말까지 전반적인 스토리라인은 그 기대를 충족했다. 다만,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그것은 아래에 서술하겠다.

우선 재밌는 부분부터 짚어보자.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에 이 세상에서 ‘사랑’이 없어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인공인 ‘나’는 바로 그날 이별을 경험한다. 사랑이 없어진 세상에서는 ‘누구도 결혼하지 않고, 연애하지 않으며, 사랑하지 않는’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사랑이 사라진 세계에선 시위가 잦아지고, 묻지마 폭행이나 집단 따돌림과 같은 사회 문제가 지속적으로 생긴다.

잠깐만. 이거 되게 기시감이 느껴지 않나.

그렇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닮아 있다. 다소 황당무계한 ‘사랑이 사라진 세상’이라는 설정을 흥미롭게 결말까지 따라 잃게 만든 힘은 바로 이것, ‘공감 가능한 세계관 설정’에 있었다. 건국 이래 가장 ‘개인 위주인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당장 밥벌이하고 집안을 건사하고 아이들 키우기에 바빴던, 성장주도의 사회가 막을 내리고 그들의 자녀이자 손자녀인 우리가 세상을 이끄는 ‘이른바 일꾼’이 된 순간부터 마주하게 된 건 ‘저성장’이었다. 부모 세대보다 못 살게 된 첫 번째 세대가 되었고, 사회 진출이 늦어지고 ‘성장’에 대한 기대감이 낮아지면서 자연스럽게 포기하는 것들이 늘어났다.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 하여 3포세대라 불렸던 우리는 이제 취업, 내 집 마련, 건강, 외모 관리, 인간관계 등 여러 가지를 포기한 세대라 하여 N포세대로 불린다. 사랑만으로 살기엔 척박한 현실 속에서 결혼이나 부모가 될 미래가 없는 1인 가구로서의 미래… ‘개인 위주의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을까.

현실의 우리는 이러한 결혼, 출산 포기로 인하여 도래하게 될 ‘저성장, 저출산’의 시대를 이미 맞이했다. 어쩌면 국가 소멸의 위기까지 만나게 될지 모르나, 막상 타개책은 없는 현실과 달리 소설 <평범한데 정체불명>에서는 나름의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바로 ‘인간에게서 사랑을 되살리는 실험’을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실험에 참여하는 ‘피실험자’이자, (후에 밝혀지지만)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다.

흥미로운 설정, 공감 갈 만한 세계관과 주인공의 상황, ‘색다른 전개’까지 재밌다고 생각했지만 애석하게도 이 뒤의 전개는 아쉬웠다.

주인공은 실험에 참여해 ‘누군가와 사랑’하기 위한 실험 과정을 거치다가 갑작스럽게 ‘테러’를 당하고, 외려 그 테러 단체의 일원(자신을 공격한 자)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전개는 괜찮다. 사랑이란 보통 ‘사고’처럼 찾아드는 것이고, ‘갑작스러운 상황’의 두근거림이 사랑의 설렘으로 착각되기도 하니까. 무릇, 착각과 오해에서 사랑이 피어나기도 하는 법이다.

문제는 이 두 사람이 ‘왜 사랑하는 가’에 대해서 독자인 내가 납득하기 어려웠다는 점이다. 또한, 주인공이 ‘이 세상을 살릴 주요 인물’이라는 점이 느닷없이 밝혀지는데 그 내용을 뒷받침할 만한 서사나 근거가 이 소설 내에서는 충분하게 보여지지 않았다.

즉, 흥미로운 설정과 재치 있는 시작, 결말까지 끌고 가는 지구력은 있되, 스토리를 결말까지 끌고 가는 ‘요소/설정들’의 설득력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굴러가나 다소 의문스럽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아니 왜? 쟤는 왜 저렇게 행동하지… 와 같은 의문들이 끝없이 쌓여가다가 결말과 만났다.

– 나는 어째서 중요한 인물이 되었나? (그 이유가 무엇인가)
– 실험을 주도하는 자의 이야기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 나와 류현은 느닷없이 왜 사랑에 빠진 걸까
– 이 세상에서 ‘사랑’이란 무엇인가
– 너무도 갑자기 사랑이 되돌아온 것 아닐까 (조금 더 위기나 곡절이 있으면 어땠을까)

이러한 질문들이었는데, 개인적인 의견이며 읽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 내가 잠시 멈추어서 메모했던 구절을 잠깐 소개하겠다.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약간 서글픈 목소리로 류현이 입을 연다.

“하지만 네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다정하구나, 너.”

주홍색 가로등에 불나방들이 날아들었다. 큰 것과 작은 것, 느린 것과 날쌘 것들이 모두 한데 섞여들어 어지러운 무도회가 열렸다. 그 광경이 내게는 어딘가 더러워 보이기도, 한편으로는 덧없이 찬란해 보이기도 했다.

다정하다는 말에 잠시 멈추었다. 몇 번을 곱씹어보다가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더러워 보이기도 덧없이 찬란해 보이기도 한 세상… 이 세상은 딱 그런 모양일 것이다. 아름답고 추한 것이 습자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한 것처럼, 인생이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인 것처럼. 어쩌면 사랑이란 ‘다정함’에 지나지 않는 게 아닐까.

누군가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씨앗 한 줌 정도… 이 생각을 하면서 나는 결말을 다시 만났다. 결말은 다정하다. 해피엔딩이다. 시작과 결말이 좋은 소설이라, 더 아쉽게 느껴졌는지도…

아쉬운 마음을 남기더라도 다른 분들이 읽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거나, 혹은 사랑과 다정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 266매라 다소 길게 느껴질 수도 있는 분량이지만 가독성이 좋아 빠르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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