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딸을 낳을 당시 아내가 여러가지 이유로 자연분만이 어려워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로 인해
세상에서 가장 먼저 제 딸아이를 본 사람은 저였습니다.. 생전 처음 만난 딸아이는 눈을 감은
체 빨갛고 뽀얀 피부를 보여주더군요, 울지도 않고 새근새근 편안해보였습니다.. 간호사님께서
간단하게 아이가 건강하다는 말과 함께 인사치레인지는 몰라도 자기가 신생아를 받아본 중에서
가장 피부가 이쁘고 편안하게 태어난 아이라고 칭찬을 해주시더군요, 전 마냥 신기했습니다..
사실 뭔가 드라마틱하게 감동의 쓰나미가 가슴속에서 막 차오르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져야되는
상황이라고 생각되지만 현실은 그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10개월동안 엄마의 배속에서 꿈틀
거리다가 막 세상에 나온 아이, 두근두근거리는 맥박이 피부에서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모습으
로 새근거리며 눈을 감고 있는 아이, 어떤 상황이든 나와 아내의 모든 것을 물려받은 체 세상에
나온 아이는 저로서는 마냥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사실 힘겹게 아이를 가지고 어렵사리 아기를
낳은 분들에게는 저의 이런 말이 정말 말같잖은 이야기일 수도 있습니다.. 오해는 말아주세요,
하여튼 탄생이라는 존재의 생명적 가치는 단순한 표현으로 그려낼 수 없는 아주 거대한 확장적
세상의 근원입죠, 거창하긴 합니다만 인간은 그중에서도 가장 상위의 포식자의 기준에서 여태껏
세상의 근원의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은 스스로를 창조의 주체라고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느님의 기준에 맞게 만들어진 아담과 이브의 모습이
사탄의 선악과로 인해 본능과 죄악의 감성을 가지고 그들만의 에덴에서 추방되었지만 이들에게서
태어난 우리는 여전히 창조주를 대신하는 존재라는 인식이 있는 것이죠, 인간은 자연에 순응하던
시절을 잊고 자연을 거스르며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위해 생태계를 파괴하는걸 쉽게 여깁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또는 인간 중심의 세상에 대한 목적을 위해 동물을 수단으로 이용하죠,
인간은 그런 존재입니다.. 하지만 인간은 그럼에도 자연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는
존재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세상은, 하느님이 창조한 이 세상은 삐걱거리면서도 그럭저럭 자정
작용을 해나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많은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을 미래에 투영한 소설이나
미디어 작품들에서 인간들이 스스로 행하는 잘못에 대한 경각심을 만들어 미래를 희망적으로다가
만들어볼라꼬 노력하고 있능거 아잉가 싶습니다.. 그랄라믄 자연을 보호하고 지키기 위한 파리 기후
협약같응거또 잘 지키고 나라마다 결속도 다지고 해야되는데 이노무 또람푸라는 머리스타일도 지랄
맞은 인간은 또 탈퇴하고 같잖은 욕심을 부리고 있네요, 말이 갑자기 딴데로 새버렸습니다.. 지송,
이러나 저러나 인간의 미래는 나름 희망적일 수도 있다는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들게 만든 작품은
뱀을 소재로 한 독특한 미래관을 그린 대단히 종교적이고 철학적 메타포가 담긴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미래의 황폐해진 세상에서 인간들이 삶은 극단적을 변모하여 빈부의 격차로 인해 부자들은
자신들만의 에덴을 만들어 살아가는 공간을 보여주죠, 여기에서 부자들은 황폐해진 세상의 메마른
현실속에서 그들의 감정의 만족을 위해 자연에서 생겨난 동물의 기준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유전조작
의 인공적 애완동물을 선택적으로 만들어내어 위안을 얻곤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에베라는
한 인공적 동물은 어느 부자의 요구로 만들어진 것이죠, 가늘고 길며 투명한 피부에 교활한 눈을 한
동물을 원했고 그래서 에베는 ‘나’로 인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이 부자는 이 에베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고 ‘나’를 부르게 됩니다.. 소설속 나는 황폐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인공적 낙원의 모습으로 보여지는 부자의 거대한 저택으로 가게 되죠, 그리고 그동안 자신의
회사에서 창조한 새로운 동물들이 그 저택의 우리속에서 대부분 부자의 만족을 위해 갇혀 있음을 알게
됩니다.. 부자는 ‘나’에게 내가 창조한 첫번째의 뱀과 에베가 자연스럽게 우리속의 안락함에 적응하고
살게끔 훈련시키길 원합니다.. 그렇게 자리를 비운 부자의 공간속에 갇힌 동물들은 있는 그대로의 삶과
생존에만 적응된 애완용이죠, 이들은 생식기능이 제거되어 그들 자체만의 삶만으로 그들의 주인을 기쁘
게 만들 용도로 창조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창조한, 아니 에베를 창조한 ‘나’로서는 에베가 원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불만족을 그냥 넘겨버릴 수가 없어 일을 저질러버리고 맙니다..
그리고 이 뒤로는 정말 엄청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대강 느낌은 왔습니다만 단순한 디스토피아적 SF
소설의 단순함을 넘어서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이며 암울한 현실적 미래의 모습을 담고 있죠,
전 솔직히 어렵게 깊이 들어가지 않고 읽었습니다.. 뭐 대단한 메타포적 세계관을 그려냈셨다손 치더라도
저로서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소설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웠으니까요, 사실 작가님께서 의도하신
세계관까지 제가 따라잡을 깜냥은 안되는지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소설적 이야기로 미루어보건데 아하,
제가 종교를 가지고 있진 않지만 이 이야기는 흔히 아는 창조적 세계관에 기인했구나는 정도의 짐작만
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독서였구요, 뱀이라는 사악한 이미지의 동물적 속성을 작품속에서는 또다른 독창적
존재감으로 선보여주셔서 나름 흥미로웠습니다.. 초중반과 중후반의 급변하는 흐름이나 ‘나’라는 존재와
에베로 그려진 뱀의 형상을 가진 존재와의 매치나 애완동물의 주인으로 그려지는 부자의 모습과 그의
아들의 모습등도 일종의 비유적 느낌으로다가 깔끔하게 그려질만큼의 형상화된 이미지가 아니라 조금은
복잡하게 얽힌 듯 어색하게 다가왔지만 뭐 어떻습니까, 그래도 전 재미있었습니다..
많은 것을 따질 깜냥이 안되면 독자로서 그냥 문장에서 그려지고 보여지는 이야기와 줄거리의 재미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흔히 아는 이야기의 차용적 발상도 나쁘지 않네요, 이런 느낌으로다가 좀 더 구
체적이고 개연성을 갖춘 중편소설 한편 집필해보셔도 좋을 듯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