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의 강점 공모(감상) 공모채택

대상작품: 거미집 짓기 (작가: 이외, 작품정보)
리뷰어: 적사각, 1월 18일, 조회 35

 엽편은 그 길이가 가지는 가능성 혹은 한계 때문에 작가가 의도적으로 뚫은 구멍의 목적을 상상해야 한다. 본작 ‘거미집 짓기’ 도 그러한데 엽편의 한계보다는 가능성 때문에 흥미진진하게 읽었다. 필자는 읽으면서 필자 나름대로 많은 부분을 채우면서 읽었다. 이것이 작가가 그린 그림인지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이야기 결말까지 다루기 때문에 리뷰를 읽기 전에 작품을 먼저 읽고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엽편이라 금방 읽는다!

 

 

 필자는 제목과 작품을 잇기를 좋아한다. 매번 리뷰 때마다 쓰지만 본작 ‘거미집 짓기’는 작품에 등장하는 ‘엔티티’의 모습과 행동을 ‘거미’와 자연스럽게 연관 짓게 되었다. 고요를 짜내거나 접붙이는 행동, 망가진 함선에 자리를 잡고 웅크리는 모습은 일전에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다리가 긴 거미가 실보다 얇은 거미줄로 거미집을 짓거나 먹이감을 거미줄로 돌돌 감싸는 모습이 떠올랐다. 작가님이 엔티티의 모습을 거미로 상정했을지 궁금하다.

 엔티티는 교만의 고리에서 고요를 이어 붙이는 일을 한다. 필자는 고요를 이어 붙인다, 는 표현이 어떤 의미일까 생각했다. 필자의 얕은 지식으로는 우주는 공기 같은 매질이 없기 때문에 (공기를 통해 파동으로 전달되는) 소리를 낼 수도 들을 수도 없다고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주 공간은 원래 고요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엔티티가 고요를 잣고 이어 붙인다고 하니 왠지 우주가 고요한 이유가 엔티티에게 있는 것처럼 느껴져 재미있었다.

 엔티티는 난파한 탐사선과 그 안에서 생존자를 발견한다. 엔티티는 살아있는 인간을 보는 게 처음인 것처럼 보이는데 그만큼 엔티티가 있는 곳은 인간이 살아서 도달하지 못하는 험지처럼 보인다. 통신에서도 ‘블랙홀’을 언급하는 걸 보면 인간이 여러 번 시도했지만 절대 들어갈 수 없는 곳인가 보다.

 엔티티는 도움을 청하는—소리를 지르는 인간을 구하기 위해 행동한다. 탈출정을 셰이커처럼 마구 흔드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습에 필자는 충격을 받았다. 필자가 보기에 엔티티는 ‘악한’ 존재가 아니다. 본능에 따라 고요를 잣고 이어 붙일 뿐이다. 오히려 이 행동은 인간—다른 생명체를 살리려는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선한 의도로 한 행동이 선한 결과로 반드시 돌아오지 않는다, 는 당연한 진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런 일은 일상에서도 일어난다. 예를 들어 뒷사람을 위해 문을 잡고 그가 빠져나왔다고 생각해서 문을 놓았는데 바람이 세게 불어 뒷사람을 강타한다면 문을 잡아준 의도와 반대의 결과를 얻게 된다. 엔티티의 순진한 얼굴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혼자 남은 엔티티는 망가진 함선 위에서 다시 고요를 잣는 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필자는 본작을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우연히 인간이 우주 탐사를 하다 교만의 고리에 빠지고 엔티티와 조우하는 이야기를 엔티티 시점에서 그렸다고 받아들였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이면을 다큐멘터리처럼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작품 소개를 읽으니 작품이 조금 다르게 읽혀졌다. 작품 소개를 보면 탐사가 아니라 침략, 이라는 설명이 있다. 이걸 읽고 나니 엔티티는 모르지만 인간은 수차례 엔티티가 있는 공간을 차지하려고 시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작품 내에서 순진하게 행동하는 엔티티의 모습과 처절하게 구조 신호를 보내는 인간의 모습이 더욱 대비되었다. 순진한 아이와 나쁜 의도를 숨긴 어른의 만남처럼 바뀌어 보였다.

 이렇게 생각하니 엔티티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인간은 왜 엔티티가 있는 공간을 탐사—침략하려는 건지, 우주 개발 및 탐사라는 순수한 과학적 목적인지 소설 속 세계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목적인지 탐사에 성공한 인간에게 엔티티가 사냥을 당할지 어느 인간이 엔티티와 마음을 교류하고 그를 살리기 위해 인류를 배신할지 필자는 전혀 알 수 없지만 이런 저런 상상을 할 수 있어 즐거우면서 작가님이 상상한 뒷이야기가 있다면 풀어주셨으면 하고 바라본다.

 필자의 얼토당토 않는 해석과 상상은 재미로 봐주셨으면 좋겠고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었는지도 궁금하다.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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