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집단을 탈출하면 행복할까요?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달길 (작가: 천휘린아, 작품정보)
리뷰어: 이유이, 1월 10일, 조회 36

사업가냐, 사기꾼이냐 둘의 차이를 알기 위해 딱 하나의 질문만 하면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 사람, 정직한가?”이다. ‘정직함’이란 참 손에 잡히지 않는 불투명한 감정이지만, 복합적인 것들을 내포한다. 뻥을 치더라도 ‘일말의 근거’가 있는가, 양심에 가책을 어느 정도 느끼는가, 자신의 불찰 혹은 실수가 타인에게 해를 끼쳤을 때 어떻게 반응하는가, 남탓과 내탓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가 등 그 사람 내부에 있는 ‘양심의 기준’을 알아보는 척도니까. 종교인과 사이비 교주 역시 마찬가지다. 이 땅에 태어나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외엔 모든 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나름의 진리’를 추구하며, 그 깨달음을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한다는 ‘본질’은 같지만, 정직의 측면에서는 다르다. 아무리 자기세뇌를 강력하게 하고 있더라도 본인은 알 것이다. 내가 사이비 교주인가, 종교인인가… 사실 나는 그래서 사이비 종교 관련 이야기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많이 접했는데, 주로 피해자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기에 나도 그 다큐를 보면서 은연 중에 생각했던 것 같다.

“어떻게 저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믿었지? 대체 무슨 심리였을까?”

그 교주의 말이, 따스한 속삭임이 그 사람이 가장 연약한 ‘마음’의 한 부분을 건드렸을 거라는 걸 생각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사람은 생각보다도 강하지만 동시에 연약한 존재라서 마음 안에 ‘스위치’를 정확하게 건드려 버리면 일순간 허물어버린다는 걸 깨닫고 부터다. 그 ‘스위치’를 건드린 사람을 온전히 믿게 된 사람을 누가 탓할 수 있을까. 이 소설 <달길>이 좋았던 건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술된 소설이어서다. 정확히는 사이비 집단에게 납치되어 세뇌 당한 어린이 중 하나인 혜진이 화자로, 방을 함께 쓰던 언니 하나가 ‘증발하듯’ 탈출한 데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본인은 마녀이며, 거울로 ‘달길’을 열 수있는데, 아직 혜진이 어려서 힘들지만 언젠가는 할 수 있게 된다는 다소 허무맹랑한 말과 함께 주문을 알려준 뒤 상황은 급변한다. 사이비 집단이 발각되어 갇혀 있던 어린이들이 일시에 풀려난 것이다.
외부의 입장에서는 가정으로 돌아간 어린이들에게 해방과 행복만 있으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은 현실’을 씁쓸하게 보여준다. 관련 다큐가 뜨거나 기사가 보도될 때마다 혜진은 학교를 옮겨야 했다. 혜진 외 다른 어린이들의 상황도 녹록치 않았다. 훈육하는 선생들이 말한 대로 따랐을 뿐인데, 세상은 그들을 안쓰럽게 보았고, “혜진”이라는 개별 자아가 아닌 피해자 중 하나로 뭉뚱그려서 인식해서다. 사이비 사례 뿐 아니라 여타 사건들의 피해자 역시 이와 유사한 피해를 겪기에 나는 글을 읽으면서 마음이 무거워졌다. 특히 밀실 같던 종교 시설을 증발하듯 떠나버린 언니에 대해서 반복적으로 묻는 사람들과 그들에게 “그녀는 마녀였다”라는 말 외에는 할 수 없던 혜진의 상황이 피해자를 취재하거나 지켜보는 사람들과 피해자 간의 관계를 딱 보여주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이 소설 <달길>의 장점은 사이비 종교를 피해자의 시선으로 다루면서 동시에 그들에게 가하는 사람들의 2차 가해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다소 묵직하게만 쓰여질 수있는 이 이야기에 달길과 마녀라는 ‘판타지’가 더해지면서 ‘숨통’을 틔어준다. 바로 그래서 개인적으로 아쉬웠던 점은 달길이 서두와 결말에서 설명적 대사 혹은 설명으로만 보여진다는 점이다. 조금 더 에피소드가 되거나, 장면화되는 부분이 있다면… 조금 더 이 부분에 이야기를 더 할애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이야기에 양념처럼 판타지가 살짝 뿌려진 느낌이라면, 판타지가 이야기와 버무려져서 조금 더 잘 녹아났으면 좋겠다고나 할까. 일상을 살아가면서 혜진이 ‘마녀’로서의 자신을 조금이라도 자각하는 부분이 보여도 좋겠다. 지금의 혜진은 ‘마녀의 자질이 있다’라고 들은 것 외에는 아주 평범해 보인다.
연약해진 마음의 틈을 비집고 사이비 교리가 뿌리 내린 순간에는 잘 몰랐다고 이야기했다. 피해자들은 하나 같이 그 순간의 ‘찬란했던 행복’을 기억한다. 조금 더 지나서 ‘실체를 알아챘을 땐’ 너무도 멀리 와서 돌아갈 수 없다고 느끼거나, 혹은 ‘자신이 잘못한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서’ 자기세뇌를 극심하게 한다고 하던가. 가해자가 나쁜 것이지, 피해자가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걸 모두가 알아봐줬으면 좋겠다. 출퇴근길에 사람들에 둘러싸여 틈틈이 읽었는데… 그래서 더 마음이 애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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