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이름의 悲鳴 감상 브릿G추천

대상작품: 앞뜰과 뒷동산에 (작가: 치즈셀러, 작품정보)
리뷰어: 0제야, 23년 10월, 조회 34

‘시골’이라는 장소는 소설 안에서 다양한 기능을 수행한다. 고향을 향한 그리움을 자극하는 매개 또는 바쁜 일상에 지친 사람을 고즈넉하게 품어 주는 공간이 되기도 하고, 가을의 정취와 수확의 충만함을 알려주기도 한다. 도시에서의 힘든 삶을 뒤로 하고 시골에 가 몸과 마음의 휴식을 얻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 만큼, 시골은 공백의 시간을 주는 곳이다. 〈리틀 포레스트〉처럼 여유와 낭만이 있는 마을의 정취를 보고 있자면, 절로 피로가 풀리고 당장이라도 이 복잡한 세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나, 조금은 안타깝게도, 시골은 종종 이와 완전히 상반된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제 시골이 조금씩 ‘미지의 공간’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인의 출입이 없는 마을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새로운 정보에 익숙하지 않은 노인들을 대상으로 한 큰 규모의 사기, 돌아가신 부모님의 유산 분배로 떠들썩한 곳. 으스스한 공포 영화의 배경으로 시골 마을이 등장할 때 그곳은 분쟁과 반목의 공간이며 언제 무서운 사건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은, 폐쇄적인 장소로서 변모한다.

물론 시골은 도시보다 인구 밀집도가 상대적으로 적고 기술적인 발전이 더뎌 방범에 취약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골에는 기술이 주는 안전을 능가할 만큼, 서로를 신뢰하는 공동체가 있다. 시골은 이 ‘공동체’가 어떤 모습이냐에 따라 양면의 얼굴을 지닌다. 누군가에게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밀함의 장소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도한 관심과 불편한 사람들이 똘똘 뭉쳐 외부인을 속여먹을 생각만 하는, 또는 속여먹기 좋은 사람들의 모임이 된다.

실제로 시골에 살아본 사람들이 점점 줄어가고 있기에 시골의 이미지는 콘텐츠의 영향을 점점 많이 받고 있다. 그러나 문화 콘텐츠에서 규정하는 시골의 모습은 극히 제한적이다. 시골 또한 도시만큼 다종다양한 사람이 모여 산다. 조금은 닫혀 있고, 그들만의 신호가 있으며, 덜 발전했을 수 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다른 곳과 다르지는 않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을 몇몇 독자는 소설에서 ‘시골’이 배경이 될 때 그 ‘장소’의 기능을 유심히 살핀다. 또 ‘그렇고 그런’ 시골 중 하나가 배경일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정말 사실적인, 또는 완전히 새로운 공간으로서의 시골이 등장할 것인가.

치즈셀러 작가의 단편 〈앞뜰과 뒷동산에〉는 폐쇄적인 공간으로서 미스터리한 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는 시골을 배경으로 한다. 여느 소설처럼 작은 시골 마을에 찾아온 외부인을 주인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적당한 삶’의 스펙트럼이 이렇게 넓은 줄은 열아홉 살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보통의 삶을 살아온 그녀가 남편의 사업 때문에 이사하게 된 이 작은 마을은 뭔가 이상하다.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무례하고, 아이를 가진 여자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심이 많으며, 심지어 그녀의 몸과 아기를 거리낌 없는 손길로 불쾌하게 만진다.

옆집과도 대화를 나누는 일이 드문 도시 사람들이 보기에 시골 사람들의 관심은 부담스럽다. 마을과 마을 끝으로 소문이 퍼지는 데에 하루가 걸리지 않는 시골 사람들이 보기에 도시 사람들은 지나치게 경계심이 많다. 마을의 테두리를 경계로 안과 밖을 나누는 사람들이 보기에 외지에서 갑자기 들어온 ‘나’의 가족이 마뜩잖았겠지만, 타인과 스스로 거리를 두고 예의와 범절을 깍듯이 배운 ‘나’가 보기에도 초면인 시골 사람들의 행동은 불쾌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모두가 무례하지만은 않다. 주인공 ‘나’에게 박 씨 아줌마는 그나마 나은 사람이었다. 불쑥 그녀의 가슴을 만지며 아기 젖 먹을 때를 가늠해 보거나 쓸데없게 도를 넘는 오지랖을 피우는 경우가 많아도, 가끔은 무례한 아이들에게서 쌍둥이를 구출하기도 하고 마을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아줌마는 쌍둥이 엄마인 ‘나’를 진심으로 걱정한다. 그 마을에는 이상하게도 여자들의 수명이 짧기 때문이다. “내가 자네 이사 왔을 때부터 겁이 더럭 나더라고.” 그리고 박 씨 아줌마는 언니라고 불렀던, 한때 살아있던 아주머니들의 이름을 읊는다.

‘나’는 몰랐다. 암에 걸려 돌아가신 종분 아주머니도, 차 사고로 돌아가신 귀정, 화윤 아주머니도, 친구들을 잃은 슬픔에 술을 진탕 마시고 발을 헛디뎌 돌아가신 윤자 아주머니도, 그리고 마지막 박 씨 아주머니도. 모두 한 가지 이유로 죽은 것이라는 걸. 박 씨 아주머니는 그 아주머니들의 이름을 회령초 앞에서 하나씩 불렀다. 귀신을 부르는 나무라는 그것 앞에서 박 씨 아주머니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중얼거린다. “이게 다 이 재수 없는 나무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고.

그리고 며칠 뒤, 회령초 나무는 박 씨 아주머니의 목숨을 가져갔다.

 

 

어떤 여자들의 목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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